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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삶 Nov 10. 2024

상주로써 갖춰야할 눈치

책임감


이번 화는 상주, 특히 나와 같은 손주의 포지션인 분들의 시점에서 하면 좋을 것/안 좋을 것을 느끼게 되어 쓴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한 인물을 관찰한 것에서 시작하여 든 생각이므로, 장례식 자체의 과정이라 보기는 어렵다. 조금 샛길로 샌다는 점을 미리 고백한다.



할아버지 장례식이니만큼, 나의 부모님들의 지인들이 많이 찾아왔다.

부모님들이 테이블에 앉아 지인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인사해야하는 동안

손주들은 상대적으로 아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각자 해야할 일을 찾아 했다.


부조함 앞에 앉아있거나, 신발을 정리하거나

필요한 음료수를 가져다 드리거나

영정사진 근처에 상주로써 앉아있다가 얼른 일어나서 손님 오셨다고 부모님을 찾아오던가.

각자 각각의 역할을 알아서 눈치껏 했다.



할 일에 비해 손주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 써있는 일들은 누군가가 꼭 해야했기 때문에, 아는 분이 거의 없기도 하고 눈치가 빠릿한 손주들이 했다.


눈과 귀가 360도 트여 할 일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한편,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시킨 일도 자리를 종종 비우고, 손이 많이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게 동생이었다.



신발을 정리하라고 했더니, 나름 열심히 한다고 집게를 여러번 왔다갔다하다 떨어뜨리는 모양이나

앞에 앉아있으라고 했더니 외롭다며, 허리 아프다며 다른 곳으로 새는 것.

탄수화물 안먹는다며 육개장만 퍼먹더니 혼자 배탈이 나 약을 사러 사라지는 것.

같이 잔 사람보다 느릿느릿 장례식장에 도착하는 것.

옷 갈아 입으라고 했더니 고작 1박에 캐리어를 들고 와, 캐리어를 펼쳐서 정리하느라 늦는 것.



나도 상주고 그아이도 상주였다. 다른 더 어린 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그 아이만 유독 튀었을까?

내가 동생을 더 잘 알고, 잘 보이고, 날카롭게 보아서?


아니었다.



동생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어필했다.

장례식에서 그게 두드러져보였을 뿐이다.



그럼 왜 그럴까? 왜 눈치를 보지 않고, 책임감이 더 없어 보일까?




곰곰히 대화해보고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월급”이 아니었을까 싶다.



동생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정기적인 월급을 받으며 사회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아르바이트, 대학원생 조교 활동 등으로 돈을 벌어봤지만

정기적인 월급이나 직장이 아닌 파트타임 잡으로는 ‘눈치와 책임감’을 배우기엔 부족했던 것 같다. (기본적인 눈치가 있는 사람은 알아서 길러졌겠지만 말이다.)



그럼 왜 월급이 눈치와 책임감과 연결될까?


직업을 선택하고, 월급을 받게 되면 그에 따른 책임감과 어느정도의 눈치력을 기르게 되며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잠시 참을 줄도 알고 눈치보며 정도껏 행동하는 것이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하고싶은 대로~ 막! 하지 않는다.  

이렇게 어느정도의 불편함은 견디고 자신의 월급, 역할에 대한 책임감은 지는 자세를 기르게 된다.


꼭 그 과정을 거쳐야만 눈치와 책임감이 길러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냥 타고나기를 잘 갖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동생은  그 과정을 아직 못 거친 듯 하다.

그래서일까?

항상 어딘가가 불편해요, 이게 필요해요. 이거 하고싶어요. 라고 눈치 안보고 말한다.

불편함을 견디고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눈치껏 행동하는 것보다, 그렇게 사는 게 훨씬 이득이며 편할 것이다.


그러니 장례식장에서도 자신의 허리 아픔, 배 아픔을 해결하고, 편리함을 쫓으며 다닌 행동이 눈에 띄었다. (조용히 했으면 아무도 눈치 못챘을 텐데)




동생에 대한 갑갑한 마음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장례식장에서는 너무 눈에 띄어서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쟤가 저정도로 자신만 보느라 눈치를 안보는 타입이었나.


“월급 안 받아봐서 그래. 사회생활 하면 으레 다 배우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라고 배우자가 말했다.


과연 그럴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기의 욕구와 니즈가 중요하고, 참지않고 다 찾아다니고 요구하는 저 행동패턴이

사회화가 될까.

부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멀리 딴 길로 샜지만,

어쨌든 손주이자 상주인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눈에 띄는 단독행동보다는 상황의 필요에 맞게 눈치껏 행동한다면 장례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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