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화장을 하고, 선산에 평장으로 모셨다. (평평한 땅으로 하며 비석같은 것을 세워둠)
보통은 선산에 관 그대로 매장을 하여 봉분을 만들어 산소로 관리하는데,
지난 외삼촌 장례 때 화장을 하고 평장을 하자고 해서 했고, 할아버지도 같은 곳에 모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되었나보다.
화장을 하게 되면 과정은 다음과 같다.
지난편 ‘입관’ 에서 마지막으로 고인을 만나고 관을 묶은 뒤, 마지막 날 화장터로 향할 때 운구차에 관을 싣는다.
장례지도사님이 예약해주신 화장터에 도착하면, 여섯 명정도 되는 인원이 화장장 카트같은 곳에 관을 올려놓는다.
이 때 고인과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직원들은 각각 정해진 호실로 관을 옮겨둔다.
화장장은 오전/오후 등 타임에 따라 예약을 하게 되어있는데 우리가 간 곳은 한 타임에 6-8분의 화장이 진행되었다.
각각의 조그마한 실 너머로 화장칸에 들어가는 관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며, 이때 의자에 앉아서 영정사진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다른 층에 가서 쉴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시간 남짓 걸리기 때문이다.
한시간 후, 화장이 끝났다는 것이 화면을 통해 나오면 내려간다.
곳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간 곳은 다 태워지고 남은 유골을 보여주고 그 것을 잘 빻아서 주신다.
(나는 그 유골을 보는게 참 싫었다. 그리고 유골이 빻아지는 기계소리도 기괴하다고 느꼈었다.)
그렇게 가루가 된 유골은 유골함에 담겨 미끄러지지 않도록 끈을 달아 상주의 목에 한번 더 걸게 된다.
이후, 유골을 각각 납골당에 모실 수도 있고 우리처럼 선산에 모실 수도 있는 것이다.
한번도 매장을 하여 산소를 만드는 과정을 본 적은 없다.
다만 지난번 선산에 평장을 처음 만들었을 때, 터를 닦아 새로 잔디를 깔고 나무를 자르는 작업을 오래 했던 기억이 났다.
산소를 만드는 것은 아마 더 오래 걸릴텐데…
어떻게 다른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 장례를 치뤄봤던 남편에게 물어봤다.
매장을 선택했을 때는
운구차가 바로 장지로 간다. 장지 인근에서 관을 내려서 장지로 걸어가는데, 이때 꽃상여들이 준비된다고 한다.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꽃상여와 함께 곡소리를 내며 장지로 향한다.
장지에는 미리 산소 자리에 관이 들어갈 자리가 마련이 되어있고 관을 내려놓는다.
관을 내려놓고 나면 흙을 조금씩 돌아가며 덮는다고 했다.
(화장을 할 때도, 유골함을 열어 남는 부분에 흙을 채워 드렸었다.)
어느정도 흙이 덮이고 나면 인부들이 봉분을 만들어 준댔다.
두 가지를 모두 듣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매장은 참 감정적으로 더 힘들겠다. 였다.
대부분의 과정은 거의 똑같지만 화장은 장소의 변화와 관의 형태 변화 때문에 한 번씩 슬픔의 감정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안 슬프다는 게 아니라 잠시 환기되는 순간이다.
운구차에서 나와서 화장장이라는 제 2의 장소를 향했다가 다시 제 3의 장소인 장지로 향한다.
장소가 바뀌는 만큼 중간 중간 기다리는 시간도 발생한다.
이렇게 장소의 변화를 겪고 관의 형태와 고인의 형태가 변하면서 슬픔의 감정 중에 환기가 한 번씩 되는 것이다.
매장은 장례식장에서 바로 장지로 향한다. 게다가 고인이 그대로 담겨있는 관의 형태에 변화가 없다.
그대로 고인이 거기에 머무르기에 장례식 내내 느꼈던 슬픔이, 입관 때 느꼈던 슬픔이 그대로 남아있는 관이 보인다.
그리고 그 관 그대로 매장하며, 흙을 덮을 때는 내 손으로 고인을 묻는 것이다.
중간에 어떠한 직원이나 기계의 개입이 없이 내가 내 손으로 고인을 묻기 때문에 훨씬 더 깊이 관여하게 되고 슬픔의 감정도 지속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죽으면 무조건 화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내 죽음 후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했다.
슬퍼할대로 슬퍼하고 감정을 털고 다음 인생을 살아나갔으면 한다.
게다가 매장 후 산소를 관리하며 힘들 모습을 생각하니 화장이 역시 더 낫다 싶었다.
화장과 매장의 과정에 대해 보거나 다 듣고 나니, 내 스스로 달라진 인식도 있다.
왜들 그렇게 벌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산소를 왜 애틋하게 여기는지 비로소 이해가 된 것이다.
그간 친척들의 성묘나 벌초에 참여한 적이 어릴 때를 제외하고 거의 없기에, 도대체 왜 산소를 만드는 것이며 왜 매해 명절때 차례를 지내는데 산소도 가야하는지 당최 이해가 안되었었다.
하지만 매장의 장례 과정을 들어보니 고인과 계속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당연히 느끼겠다 싶었다.
관 그대로 묻었으니 당연하다. 그대로 산소 아래에 고인이 계시기 때문에 애틋할 것이다.
그러니까 1년에 한 번은 꼭 방문하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했고, 벌초를 함으로써 잘 관리하고 싶은 거구나.
너무나 어리석지만 산소 아래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이제서야 인식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저 자연으로 돌아갈 존재가 있을 뿐 너무 의미부여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겠지만.
매장의 과정을 직접 겪은 사람들에 감정이입해보니 산소는 참 애틋한 것이었겠다.
그럴 수도 있지
가족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나는 매장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땅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지구의 관점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에너지와 감정, 살아감을 생각한다면
나를 화장을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