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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Jan 04. 2021

욜로 하다 골로 가서 짠순이 결심하다.

나를 돌보기 시작하다 

제목 그대로다. 20대~ 30대 초반의 나는 그야말로 뒤를 생각하지 않는 욜로족이었다. 욜로가 전 재산 탕진은 아니었을 텐데, 그 당시 나는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참 많은 것을 했다. 맛집이란 곳은 가격에 상관없이 다녔고, 여행을 즐기고, PT를 하고, 화장품을 미친 듯이 사고, 참으로 여러 가지를 가지가지했다. 


잠시 나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우리 집은 형편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정도는 아니었지만, 학창 시절 가족여행을 간 적도 흔한 외식을 한 적도 손에 꼽혔다. 단칸방, 반지하에 살면서 늘 돈을 아끼며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게 항상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해보면 나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많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내 꿈은 일 년에 한 번 여행 가는 것이었고,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는 것이었다. 집에 대한 로망도 차에 대한 로망도 없었다. 어쩌면 꿈꾸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일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고 돈을 모으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부모님께 생활비를 작게나마 드리는 거였다. 돈을 모으면 가전제품을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 더 월급이 올랐을 때부터 나는 나에게 돈을 펑펑 쓰기 시작했다. 지금이 지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너무 즐거웠다. 돈을 쓰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였나? 립스틱을 여러 개 사고 매일 다른 립스틱을 바르고 또 립스틱을 사고... 

음식도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먹고, 술도 엄청 마셨다. 그리고 우정이라는 핑계로 많은 곳에서 계산을 했다. 그 결과는 엄청난 카드 비용이었다. 당시에는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프리랜서인 나는 일을 쉬는 텀이 점점 늘어났고, 일을 시작했다가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쉬게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운이 안 따라 준다고 한들 결국 내 삶이었다. 문제는 그때도 내 소비가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을 좋아하던 나는 언제나 누굴 만났고, 그 결과는 카드값이었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한 행동이지만 주변인들이 역시 돈이 많다며 내 행동을 당연시 여기는 모습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다. 가난하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충격이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모아 놓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을 때였다. 

그때서야 내상을 입었나 보다. 말 그대로 욜로 하다 골로 간 거다. 여전히 일은 12개월을 꽉 채워하는 게 아니었고, 나는 연차가 쌓여 불러주는 곳도 적어졌다.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실이 다가왔다. 내 묏자리 비용은 마련해 놔야 하는데. 아니, 우리 가족은 부양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줄이고, 만나도 더치페이를 위주로 하고, 필요한 것만 구매를 하고, 특히 먹는 것과 커피에 들어가는 돈을 최대한 아끼려고 노력했다. 쉽지 않았다. 사람을 영원히 안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 번 나가면 2-3만 원이 깨지는 건 현실이었다. 그래도 더 노력했다. 예를 들어 밥만 먹고 헤어진다거나, 차만 마시고 헤어진다거나 최대한 시간을 빗겨 만나면서 아낄 수 있는 돈을 아꼈다. 


점점 카드값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다. 기뻤다. 그리고 조금씩 쌓이는 통장의 돈을 보는 것도 기뻤다. 

아직은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짠순이 짠돌이들의 생활에는 발끝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지만, 내 나름대로 돈을 아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돈을 쓰는 재미보다 아끼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이런 태도가 영원히 쭉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인간의 상황이란 변하니까. 

하지만 일단, 올해는 모으기로 결심한 돈이  모일 때까지는 멈추지 않을 거다. 더 공부하고 공부해서 아낄 생각이다. 지금까지 펑펑 썼으니 이제 그럴 때도 됐다.



욜로라는 말을 찾아보니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여 소비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나와 있다. 


더 들여다보면 속뜻은 ‘멍청한 짓을 합리화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어느 기사에서 봤다. 옥스퍼드 사전에 그렇게 올라왔단다. 욜로를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하느냐에 대해 무엇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가치관과 환경이 다르니까. 


하지만, 나는 욜로를 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혹시 모를 내일의 나를 위한 대비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가 되기 때문이다. 미래의 내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 위해서 일단 대비를 하고, 그 선 위에서 즐기는 것은 어떨까 싶다. 


앞으로, 멍청한 짓은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올바른 욜로를 즐길 생각이다. 지금을 사는 건 중요다. 다만, 어떻게 살 아가냐의 문제이다.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해서 그리고 지금의 나를 위해서 조금 현명한 짠순이가 되어 보기로 했다.  쪼잔한 짠순이 말고, 민폐 짠순이 말고, 현명한 짠순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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