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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Jul 31. 2020

괴로움 뒤엔 새로운 시작이 있다


우정이란 무엇일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나는 학창 시절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믿을 수 있는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사귈 거라 결심했다.


그리고 그런 지인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20여 년의 시간 동안 친언니처럼 생각했다. 함께 하면 즐거웠고 위안이 됐고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그러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인의 간곡한 부탁으로 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빌려줬고, 그녀는 1년 안에 원금과 이자를 갚겠다는 말을 지키지 않았다.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다.


옛말에 '돈거래는 가족들과도 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그 말을 하면 당당히 내 친구들은 그러지 않는다. 나도 그런 사람 안 된다는 말을 내뱉었던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이 말이 나에게 진실로 다가올 줄이야....  

2년 3년이 지나도 그녀는 돈을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난 큰 결심을 했다. 그녀와 소송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무료 변호 상담실을 3-4군데 돌아다니며 상담을 했다. 천만 원은 소액사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민사소송은 3개월이면 판결이 날 거라 했다. 변호사 선임 없이 혼자서도 가능하단 조언을 들었다.


한 곳에선 형사고소를 하면 압박감이 생겨 돈을 받는 게 더 수월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사기를 칠 생각으로 돈을 빌린 게 맞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찰이 쉽게 받아주진 않을 거란 이야기도 들었다.


당시 난 배신감에 절망하고 인간관계에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경찰서를 찾았다.  생애 처음으로 경찰서를 방문하려고 하니 심장이 떨렸다. 입구 앞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본인 확인을 거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서 바라본 경찰서는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웅장해 보였다. 심장은 두근거림으로 나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담당부서의 형사팀장과 이야기를 하며 사건 접수를 요청했다.  나는 또다시 절망했다. 경찰은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 마치 큰 사건이 아니라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대했고, 귀찮아하는 마음이 역력해 보였다. 그러면서 돈을 빌려준 당시 사기를 치려는 의심 정황은 있으나 증거가 없다며 고소장을 받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그 증거를 경찰이 아닌 당사자인 내가 확인해서 가져와야 한단 말인가?


나는 경찰과 말다툼 끝에 고소장을 접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거짓말이라는 증거를 모으고, 통장 내역을 뽑아 자료를 만들어 경찰에 제출했다.  그 과정들은 나를 너무나 지치게 했다. 내가 믿었던 이야기들이 거짓이란 걸 알아가며 지인을 믿었던 내 마음은 한 번 더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할 때도 증거들을 내밀며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하려 노력했고, 다행히 꼼꼼하게 놓치는 것 없이 조사를 마칠 수 있었다. 조사를 담당한 경찰관 역시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주며 마음이 아팠겠다며 공감해 주었다. 그렇게 형사고소를 마쳤다.



이와 동시에 민사소송을 준비했다. 는 내 돈을 받기 위한 직접 접인 절차였다. 법원에 들어설 땐 경찰서에서의 심정과 달리 마음이 가벼웠다.


'그래, 이 소송만 이기면 되는 거야'


계좌이체 내역이 있기 때문에 질리 없는 싸움이라고 확신했다. 접수도 순조롭게 해결됐다.


하지만 결과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녀는 법원에서 보낸 등기를 받지 않고 시일을 늦췄고, 말도 안 되는 반론서를 제출해 기간을 늘렸다. 그런 행동들 하나하나가 나에겐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자신이 빌린 돈 조차 갚지 않으려 하다니.....  이런 사람을 좋아했던 내가 너무 싫었다. 자괴감과 스트레스에 쌓여 매일매일 예민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마주치면 소리 지르고 싶었다.


'대체 무슨 심보인 거야!!! 인간답게 살아!!!!'


라고 말이다. 그렇게 울분이 쌓여가던 끝에 법정에 서게 됐고, 그날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변호 대리인이란 변호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면 내 돈이나 갚지...  


변호사는 조정을 통해 합의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렇게 되기까지 6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형사 고소한 것 역시 검찰로 넘어가 사기죄로 기소가 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나의 연락을 받았다.


'형사고소 취하하면 400만 원 먼저 줄게'


미안하단 소리도 없었다. 이 무슨 기가 차는 소리를 하는지... 내 정신력의 한계를 시험하려고 하는 것인가.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난 더 오기가 생기고 끝까지 가보자는 결심이 다시 섰다.


그 당시 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를 지배했다.




민사, 형사에서 모두 승소를 하고, 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 또한 힘든 시간 끝에 받은 결과였지만 말이다.

양심이란 없는 사람에게 돈을 받아내는 건 쉽지 않았지만 깨달은 바도 있다.


돈거래는 절대 하지 말 것!!

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


내 뒤통수를 친 그녀의 행동도 화가 났지만 그로 인해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싫어지는 절망적인 경험은 더 끔찍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내 곁에서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으로 또 다른 길을 새롭게 걷기 시작했다.

나의 사건 과정을 토대로 소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전자책을 작성해 판매를 시작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이런 길이 열릴 줄이야. 나를 괴롭게 하던 사건이 새로운 시작이 되어줬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공부가 됐다.


끝이 보이면 또 다른 길이 열린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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