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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월 Mar 13. 2020

어른의 길목에 서 있다

생존을 위한 인생 정리중입니다


 병원을 다니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왜 나는 아직도 14세에 상처받은 일에 갇혀 있는 걸까?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학창 시절의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어른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어떤 고민이 생겨도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에게 터놓지 못했다. 그저 늘 밝게 웃으며 활기차고 착한 나를 연기했다. 그리고 나의 고민을 꺼내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시기였다. 청소년들은 모두 다 그럴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엄마의 병명을 차마 밖에서 이야기하고 다닐 수 없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 심장에 칼날이 꽂히는 일이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주치의로부터 받은 냉정한 시선은 의사에 대한 환상을 깨부쉈고, 엄마의 병을 아는 친척들조차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간혹 있었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엄마와 이모들과 함께 외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당시 외할머니 댁에는 외숙모와 사촌오빠들도 살고 있어서 자주 놀러갔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따라가지 말걸 그랬다. ‘엄마가 걱정돼도 혼자 보낼 걸’ 나는 이 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말았다.      


 온 가족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자꾸 졸음이 와 엄마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웅성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하지만 온 몸으로 느껴지는 안 좋은 기운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그 때, 외숙모의 칼날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에게 미쳤다고 하는 소리가...


마치 내 뇌를 가로지르는 듯 한 말이었다. 나는 귀에 꽂히는 그 말에 움직일 수 없었다.    

  

 ‘나도 알아요. 우리 엄마 미친 거. 그런데 아파서 그런거잖아.

 가족인데 그런 말을 딸이 있는 앞에서는 더더욱 하면 안 되잖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대들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눈이 뒤집혀서 싸우면 결국 우리 엄마아빠 욕 되게 행동이니까.      


다행히 방 안에 있던 사촌오빠가 나와 외숙모에게 화를 내며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고마웠다. 그래도 나는 한참 눈물을 참으며 엄마 무릎에 잠자는 시늉을 했다.    

  

그 후로도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어른이 딸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그 순간 어른이 나는 무서워 졌다. 그 동안 내가 생각했었던 좋은 어른들의 모습을 나는 주변 어른에게 볼 수 없었던 거다. 그 뒤로 어른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렸다. 난, 어른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혹 매체에서 진정한 멘토와 어른을 만나 마음 깊이 성장한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처럼 용기 있게 어른을 마주하기에는 내가 받을 지도 모르는 상처가 두려웠다. 그저 꽁꽁 숨어버린 나를 찾아주길 간절히 바랄뿐이었다.      


상냥하고, 웃음이 선하고, 언제나 당당한 어른이 내 앞에 나타나 나를 포용하고 이끌어주길 바랬다. 나에겐 간절한 꿈이었지만 꿈은 그저 꿈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속에 나만의 어른을 만들었다. 내 마음속 어른 A는 이성적이고, 친절하고, 너그럽고, 나에게 설명할 때도 차근차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힘이 들거나 고민이 있을 때 마다 A를 찾아 상담을 했다.      


 엄마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내뱉은 험한 말들을 들었을 때는 ‘엄마가 그러는 건 진심이 아니라 아파서 그런 거야. 그동안 혼자 속으로만 앓으셔서 힘드셨나봐. 그걸 이제야 풀어내서 그래서 마음과 달리 너에게 상처를 주셨네. 그렇지만 누구보다 널 사랑하는 걸 알지?’ 라며 날 위로해줬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면 ‘괜찮아. 잠시 다른 곳으로 피해있자. 사람들 속에 있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A는 늘 다정히 나를 다독여줬다.      


 그래서 나는 늘 A에게 진짜 괜찮은지, 나는 계속 웃을 수 있을까 질문도 하고 울고 싶지 않다며 징징거리기도 해왔다. 물론 나도 안다. 그저 내가 만든 허상의 인물이란걸.   

   

그럼에도 A를 통해 나는 내가 되고 싶고, 보고 싶은 어른의 형태를 만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웠다. 다분히 웃겨 보일 수 있지만 A를 통해 나는 때론 상처를 치유하고, 때로 내가 살아가야할 세상에 대한 답을 얻었다. 그리고 내가 꿈꾸던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다만, 어른이 되보고 나니 어른이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낀다. 어른도 어른이 처임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방황하고, 좌절하고, 내 위의 어른이 있기를 바라는 그저 어린어른이란건 알게됐다.    

  

학창시절 당시 내가 만난 어른들도 그런 어른들이겠지?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있다.       


나도 하루 빨리 어린어른이 아닌 진짜어른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 인생을 먼저 책임지기 위해 일도, 독서도, 마음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어른이 된 지금 누군가를 다정히 포용하기 위해선 내 자신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알게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 고민을 놓지 않을거다.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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