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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Nov 08. 2023

임신일기 02. 임신준비



준비와 계획과 결과의 상관관계는?




그리고 임신을 결심했다.


지병이 있던 터라 다니던 병원에 가 내 상태와 약중단에 대해 상담했는데, 약은 적어도 4개월 이상 중단한 상태에서 임신계획을 세워야 하고 임신 중에는 검사가 어려우니 출산 후에 추적검사를 꼭 요한다는 말이었다.

병원을 나오면서는 혼자 결심했다. 6개월 동안은 임신 시도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의사선생님은 4개월을 말씀하셨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좀 더 여유기간을 두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임신준비기간에 뭘 해야 하는지 검색을 하고 엽산을 사고 남편도 먹으라고 주고 열심히 먹었다.

술은 안 먹는 게 좋았겠지만 너무 좋아하는 마당에 같이 열심히 먹었다.

엽산은 신체에, 술은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고 혼자 다독이면서.

더불어 운동도 했다. 운동을 아예 안 하는 편은 아니었고 PT 다니던 것 조금 기억하고, 요가했던 것 조금 기억하고, 필라테스했던 거 조금 기억하고, 온 기억을 모아 모아 근육이 어디가 움직여야 하는지 떠올려서 운동도 주기적으로 열심히 했다. 운동하기 싫은 날엔 나가서 달리거나 산책을 했다.

음식도 조절하고자 했다. 남편 혀에 마비가 오더라도 좀 더 집밥을 열심히 해 먹으려고 했고 저녁이나 낮에 술 먹은 걸 만회하고자 아침에는 건강식이랍시고 토마토를 포함한 야채나 과일, 삶은계란을 챙겨 먹거나 간단한 한 그릇 요리들 (이라고 말하면 거창하고, 간장계란밥, 미역국에 밥말기, 우거짓국에 밥말기 등)을 먹었다.




이 때는 몰랐다.

이런 것들이 사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내 마음에 위안이었을 뿐 진짜 임신이 되거나 되지 않는 것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좋게 생각해 보자면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술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있던 중이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두고두고 읽으려고 임신 관련 책도 사서 미리 읽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애썼다.

쓸데없이 잡생각이 많아 걱정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최대한 단순하고 나에 집중하고자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때 꽤 평화로운 자신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회사 업무도 자택이었고, 남편은 퇴근이 늦어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나는 그런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한, 반대로 혼자 있기만 하면 안 되고 사람을 만나서 교감도 해야 되는 까탈스러운 성향인데 꽤 충족되는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오래 지나 자세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건 아닌데 과거 미화인지 봄바람에 연두색 풀 이파리가 살랑거리고 구름이 느리게 이동하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가는 새가 예쁘게 지저귀는 그런 풍경이 떠오르는 시간들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계절이었던 것 같다. 첫 임신시도가 6월~7월초쯤이었으니 싱그러운 초여름께였을 것이다. 그전엔 벚꽃이 만개하는 따뜻한 봄날이었고, 그전엔 연초가 있고 설날이 있는 설레는 새해였을테니 미화를 해도 좋을 시기였겠다.




그렇게 약도 끊고, 운동도 제법 하고 엽산도 열심히 챙겨 먹고 건강식도 챙겨 먹고 술도 열심히 챙겨 먹다 보니 6개월이 지났고 대망의 첫 계획의 날(?)이 다가왔다. 으른의 밤 묘사는 생략하도록 한다.

이런 때가 다가오면 설레고, 기다려지는 날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생리주기가 다가올수록 긴장되고 걱정이 되었다.

걱정은 양면이었다. 임신이 될까봐도 걱정이고, 임신이 안될까봐도 걱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한 감정이다. 임신이 되면 되는대로 두렵고, 안되면 계획하고 가지려고 하는데 잘 안돼서 더 늦으면 나에게 아무런 선택지도 없을까 봐, 이번 달은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니까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걱정으로 그저 혼자 미루는 것이다) 아니면 다음 달에 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다음 달은 누가 약속해 준 것도 아닌데 태평하단 생각도 드는 것이다.

어떤 날은 평화롭게 이런 생각을 지켜보다가도 어떤 날은 그 생각에 빠져 허우적대며 혼자 지쳐버리는 날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집에 오면 동물적인 직감으로 집의 온도와 습도와 조명이 오늘따라 이상한 걸 감지하고 떡볶이를 자꾸 사왔다. 덕분에 함께 평온하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도가 일렁이는 날들을 지나고 지나 생리예정일이었다. 나는 원래 주기가 매우 일정한 편은 아니라서 이틀정도 더 있어보았는데 대자연이 찾아오지 않았다! 매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약국에 가서 테스트기를 사왔고 아침 소변이 정확하다는 말을 기억해 내서 숨겨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남편 몰래 테스트기를 해보았다. 이 때 가슴이 엄청 요동친 걸로 기억하는데 여름이라 땀도 함께 요동쳤다. 그리고 난 아무 느낌도 나지 않은 채로, 정말 아무렇지 않았는데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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