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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Nov 01. 2023

임신일기 01. 임신할 결심



나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크게 없었다.


연애를 하면서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어떨까? 하는 가벼운 상상이나 우리가 결혼하면~과 같은 가정법 놀이는 재미있게 했다. 유치할수록 재미있는 것이 연애 아닌가!

그렇다고 딱히 비혼주의도 아니었지만 결혼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좀 나이가 차고 난 후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압박이 들어올 때면 나는 서른다섯살이 되면 결혼할 것이라고 얘기 해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그 나이쯤 하면 좋을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왜 그 나이인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러다 서른두 살에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연애하는 중에도 크게 결혼생각이 없었고 그때 남자친구도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1년 반쯤 만난 어느 날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아가듯 자연스럽게 서로 결혼하자! 의기투합하여 정말 내 나이 서른 다섯 봄에 아름다운 남성과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에 대해서도 그랬지만 나는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해서도 큰 의견이 없었다.


가능하면 낳지 않고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것은 결혼과는 다르게 막연한 것이 아니라 여러 이유를 댈 수 있다.

가장 첫 번째는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몰랐고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무서운 압박감이 있었다.

그리고 첫 번째에 버금가는 큰 두 번째 이유는 경제적인 것으로 넉넉하게 시작한 결혼생활도 아니거니와 우리 부부의 노후, 더불어 양가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지자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밖에도 아이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고, 낳은 후는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가 없으니 더 두려웠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리길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었고, 결혼 얘기를 하면서 나의 입장을 얘기해보기도 했지만 설득이 되지는 않았다.

어떤 두려움인지 이해는 하지만 우리가 잘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남편은 내게 얘기해 주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내가 완전한 딩크를 원했다면 결혼을 하면 안 되는 것이었겠지만 절대 안 낳을거야는 또 아니었다.

아이를 갖고,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해서는 결혼 초부터 아이 없는 삶 60%, 아이를 낳고 함께 하는 삶 40%의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늘 저 퍼센티지로 생각을 했고, 남편은 아이 있는 삶을 원하면서도 내가 어느 정도 긍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여전히 엄마가 될 자신은 없지만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 행복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퍼센티지가 조금씩 들쭉날쭉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서른여섯 봄날부터 생리양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평소 오일 정도 생리기간이고, 그 후는 팬티라이너로 삼사일 가량 지나야 끝나는 생리기간이 이틀이면 생리가 거의 끝나기 시작했다.

완경이 시작된 건지 몸이 어디가 좋지 않은 건지 덜컥 겁이 나서 여성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노화였다.

이러다가 완경을 하냐는 질문에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라고 했다.

생리통도 매우 심했던 나는 생리를 안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완경할까 봐 왜 겁부터 났을까?

완경을 일찍 하면 여성호르몬 변화 때문에 몸이 힘들게 되는 것도 그랬지만 더 이상 아이를 원하냐 아니냐 하는 선택의 문제는 꿈도 꿀 수 없게 되는 것도 겁이 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랬다. 낳을 수 없는 것과 낳지 않는 것은 나에게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 후로 계속 고민했다. 낳을 수 없을 때 아이를 원하게 될까 봐? 아이를 완벽하게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가끔 낳아서 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는데.. 등 별 고민을 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늦봄-초여름께에 다시 병원을 찾아 나는 산전검사를 했다. 혹시 노산(만 35세 기준)이어서 아이를 원하면 미루기보다 빨리 가져야 하는지 몸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다고 의사선생님께 상담을 했더니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검사결과는 큰 이상이 없었고 다만 풍진항체, A형간염항체가 없어서 주사를 맞기로 하고, 비타민D 수치가 적으니 섭취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계획임신을 생각 중이시면 엽산을 미리 복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임신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51%, 49%로 마음이 왔다갔다했다. 고민인지 망설임인지 잘 모르겠는 감정의 시간들이 흘러갔다.




오랜 기간 동안 앓고 있던 지병이 있어 1년에 한 번씩 추적검사를 하고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마침 정기진료일이 되어 병원에 갔다.

주치의는 결혼을 했는지 물었고 임신계획이 있는지도 물었다.

정확하게 답변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데 현재는 임신가능성이 있는지 물으셨고, 피임하고 있어서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답변했다.

선생님은 지금 먹는 약은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환자분은 아직은 약을 좀 더 꾸준히 드셔야 하기 때문에 계획임신을 하셔야 하며, 계획할 때 이 약은 적어도 4개월 전에 복용을 중지하고 임신 시도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앞으로 몇 개월은 꾸준히 더 먹어야 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제적이지만 좀 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건가 하고 정신 나간 것 같지만 마음에는 안도감이 생기기도 했다.


집에 도착해서 남편이 퇴근하길 기다려 그가 집에 오자마자 말을 시작했다. 여성병원, 정기진료로 간 병원 일에 대해 말했고 내 생각도 말했다.

남편은 아이 갖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좋을만한 여러 가정들도 하고, 내가 걱정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도 시키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이렇게만 얘기했으면 마음이 삐뚤어져서 뭐야 결국 애기를 원하기 때문에 저러는 거야? 하고 괜히 화가 났을 텐데 (36살의 반항은 답이 없다)

지금은 일단 약 잘 먹고 몸 잘 보살피면서 지내는데 집중하고 무리하지 말라며 다독여주었다. 마음이 좀 편해졌다. 갈대마냥 나부끼는 서른여섯 살의 마음…


그 후 다음 정기 진료일이 되었다. 가을이었고, 선생님은 상태를 물으면서 임신 계획은 어떻게 되냐고 물으셨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병원에 갔는데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내년에 가져서 서른여덟 살에 낳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럼 내년 2월쯤에 약을 끊고 임신준비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갑자기 머리가 파파박 굴러가더니, 서른여덟 봄에 아이를 낳으려면 서른일곱 여름쯤에는 가져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려면 선생님이 권고하신 4개월 이상의 텀은 생기지만 불안감이 높고 넉넉한 게 좋은 나는 이번 겨울에 약을 끊는 게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6개월 이상 텀을 두고 몸에 쌓인 약 성분들이 빠져나가길 기대하면서.

선생님은 지금 있는 증상은 사실 아예 없어지진 않고 통증이 1에서 10이면 2,3 정도만 돼도 양호한 거라고 하셨고 마침 내 상태가 몇 달째 그랬다. 물론 중간중간 많이 아플 때도 있었는데 대체로 많이 좋아진 상황이었다.

결국 선생님과 상담하여 매일 먹는 약은 한 달 정도 더 먹고 약을 중단했을 때 다시 심한 증상이 생기면 먹을 수 있는 약을 챙겨주었다.

더불어 다시 심한 증상이 계속 나타나는 게 시작되면 지금까지 했던 치료를 다시 시작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 시켜주셨다.

그전에 먹던 약의 효과를 제로로 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수도 있다고.

좀 겁이 났는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러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싶었고, 그때는 51%가 아이를 원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얘기했고 내년부터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자고 얘기했다.

남편이 드디어 마음이 정해졌구나 잘 생각했어! 우리 잘할 수 있을 거야! 나도 더 잘할게!! 하며 나는야 세상에서 제일 기쁜 남자!!!! 가 될 줄 알았는데

잠자코 들으며 입에 든 밥을 씹기에 바빴다. 왠지 나는 실망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하고 채근하자, 잠시 생각하던 남편은 아니 근데 약 빨리 끊는 거면 몸에 무리 가는 거 아니야?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좀 더 먹는 게 나은 거 아니야?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 엄청 아프기도 하는데.. 하면서 고민하는 남편을 보고, 아이를 원하지만 나와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진심으로 원하는구나.

그러면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멋진 천사와 함께 더할 나위 없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구나.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구나!! (이런 말 근처에 가는 말도 안 했음) 하고 어쩌면 당연한 것을 보고 필요이상으로 감동하고 매우 사랑스럽게 보이더니..

마음에 불이 켜졌다. 52%


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이건 알 것 같다. 난 정말 철없는 엄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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