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버들 Nov 22. 2023

임신일기 04. 임신초기-1 임신발표



임신발표,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그대



기적처럼 온 아기를 그냥 발표하긴 아쉽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둔 것도 아니고 어떤 재밌는 이벤트를 해줄까하다가 보물찾기가 떠올랐다. 좁은 집이지만 곳곳에 작은 선물을 숨겨두고 마지막에 아기 초음파 사진을 짠하고 보여주면 놀라겠지? 상상만으로 재미나서 남편이 오기 전에 부랴부랴 카드들을 만들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초코와 베스킨라빈스 아몬드봉봉을 페이크 선물도 사두고 메시지를 작성해갔다.

혼자 재미있어서 카드를 쓰면서 발을 동동 굴렸다. 남편이 신나고 재밌어하면 좋을텐데!

그 당시 남편은 9시가 넘어야 집에 도착했었다. 나는 어린왕자의 여우마냥 남편이 9시에 온다면 8시부터 입이 근질근질하고 있었다. 퇴근한다고 전화 오는 남편에게 무덤덤하게 웃음을 참으며 전화를 받느라 애썼다.


통화를 끊고 카드와 선물을 위치에 모두 가져다 놓고 불을 모두 꺼두고 핸드폰도 무음으로 해두고 안방 구석에 최대한 쭈그리고 있었다. 남편이 계단 올라오는 발소리에도 웃음이 터질 것 같았는데 용케 잘 참아냈다.

삐리리 도어락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왔다.


현관문 앞 스툴 위에 둔 카드를 읽었을 것이다.

남편은 미션을 수행했고 첫 번째 선물로 페레로로쉐를 획득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두 번째 카드도 발견했을 것이다.

이번 미션도 역시 수행했고 두 번째 선물인 아몬드봉봉을 획득했다

그리고 냉동실에 있는 세 번째 카드도 발견했을 것이다.

나는 대망의 피날레를 기다리며 신이 나서 언제 날 찾으러 올까! 하며 혼자 매우 신나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바보가 못 찾은 걸까? 아님 같이 놀려주려고 벼르고 있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당하지 않으려고 몸을 더 쭈그리고 숨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적막과 어둠이 계속 있었다.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참지 못하고 안방에서 나와서 못 찾았니? 하고 놀리려다 남편이 털썩 앉아 어깨를 들먹이는 것을 보고 내가 놀랐다. 집 불을 다 켜고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다가가니 남편이 앉아 울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목메이는 걸 누르면서 여보 고마워하고 다시 울었다. 왜 울어? 하니, 너무 좋아서 너무 기뻐서 너무 고마워서 모르겠어 그냥 자꾸 눈물이 나 하고 대성통곡을!

난 반추해 보았다. 내가 저렇게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났었나? 아니다. 아이가 생긴 게 너무 기뻐서 팔짝 뛰었던가? 아니다. 이 일이 너무나 감사해서 다행이고 겸손했나? 그것도 아니다. 난 기분이 좀 묘했다. 어리둥절했고, 임신한건가? 싶었고, 금주를 해야 할 것만 같은 희한한 끌림이 있었다. 그런 남편을 보니까 저렇게 행복해하다니 나도 함께 감동이다 싶은 마음이 조금 들었고, 나 이상한걸까? 싶은 생각은 많이 들었다.

 

그 날 밤부터 남편은 갑자기 나의 호위무사가 되어 좁은 집에서 이동할라치면 조심!이라고 외치고 뭐라도 집안일을 할라치면 무리하면 안돼!를 외치고 뭔가 들려고 하면 내가 할게 무거워! 라고 했다. 내가 들려던 것은 베개였다. 베개가 무겁다는 예비 아빠로서 너무 신나고 흥분한 남편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진 않았다. 난 마침 오늘따라 어쩐지 베개가 10키로 쌀포대 같더니만 고마워라고 대꾸했고 남편은 뿌듯해했다. 그리고 남편은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고이거나 눈물이 흘렀다. 그러면서도 호위무사 노릇을 놓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 듯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이를 낳아서도 저렇게 기뻐하고 같이 육아한다면 나도 같이 행복하고 아이는 그 행복과 사랑을 먹고 잘 자랄 것만 같은 희망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걱정인형이다. 다음 날 남편이 출근하고나서는 남편의 모습과 내 마음이 자꾸 비교가 되어서 기분이 점점 가라앉았다. 52%가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던 거라 내가 이렇게 기쁘지가 않은걸까? 뭔가 잘못된건가? 뱃속에 아이가 이런 내 마음이 느껴져서 자신은 사랑받으며 엄마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할까봐 걱정이 되자 슬퍼지면서 나는 왜 고작 이런 사람이지, 고작 이런 엄마가 되려나 하면서 눈물이 났다. 조용하게 흐르던 눈물은 혼자 감정의 골을 파고들어 오열로 이어졌고 계속 울게 되었다. 진짜 저런 감정인 든 것도 맞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더 격해졌던 건 아마 내가 나보다 더 격해진 호르몬의 노예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나름 울음을 그쳐보겠다고 넷플릭스를 틀어 드라마를 보는데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또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마침 튼 것은 [디어마이프렌즈]였다. 엄마아빠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더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그러면서 희한한 지경에 이르는데 그것은 자책이었다. 이렇게 울어도 되나 싶을만큼 울고나니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숨을 고르게 쉴 수 있게 되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뭐 해? 남편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눈물이 또 주륵 흘렀다. 난 남편 이름을 울부짖으며 또 울기 시작했다. 남편은 놀랐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마음이 그냥 마냥 슬퍼 자꾸 눈물이 나. 나 좋은 엄마 될 수 있을까 남편은 아이 생겨서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데 나는 사실 막 그렇지는 않거든? 남편에게 고해성사인지 넋두리인지 주접인지 모를 얘기를 한창 쏟아놓자 다행히 또 마음이 진정되었다. 남편은 그런 걱정하지 말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재밌는 거 보고 있으라고 얘기해 줬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안심도 시켜주었다. 통화를 끊고 나도 좀 진정이 되고 나니 너무 울어서 그랬는지 지치고 졸렸다.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배도 고프고 뭔가 행동할 수 있을만한 에너지도 좀 돌아서 밥도 챙겨 먹고 청소를 하는데 아까 한 짓이 너무 웃기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이게 친구가 말하던 별 일 아닌데 호르몬 때문에 울게 되는 일인가 싶었다. 걱정인형에게 호르몬 자극은 너무 가혹하다.




갑작스럽지만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간식도 챙겨 먹고 오늘 처리해야 하는 회사일도 하며 시간을 보내니 금세 해가 넘어갔다. 맘카페도 가입하고 임신상태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도 해보았다. 친구랑 수다도 떨다 보니 남편이 퇴근해서 왔다. 익숙한 냄새, 파블로프의 개마냥 이름만으로 내 입에 침이 가득 고이게 하는 냄새. 남편은 성실하게도 떡볶이를 사왔다. 내가 뭔가 안 좋으면 떡볶이만 생각나? 하고 웃으니 남편도 같이 웃으며 등 뒤에 있던 작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고맙다고 내가 더 열심히 하겠다고 더 잘하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꼬옥 안아주면서.


진심으로 남편에게 고마웠다. 불안정한 나를 늘 받아주고 늘 떡볶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꽃도 사주면서 나를 위해주는 마음이 정말 진심으로 고마웠다. 난 조금 감동한 마음을 가지고 고마워라고 말하고 건네준 것을 받았다. 남편이 씻을 동안 먹을 준비도 해두고 꽃도 꽃병에 꽂아두고 앉아있으니 남편도 다 씻고 나와 옆에 앉았다. 행복한 저녁이 아닐 수 없었다. 떡볶이를 한입 가득 넣어서 씹었다.

그러나 호르몬은 내 맘 같지 않았나보다. 나는 변기와 한 몸이 된 듯이 있었다.


그렇다. 먹고 싶지도 않지만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입덧이 시작되었다.

이전 03화 임신일기 03. 임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