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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Nov 29. 2023

임신일기 05. 임신초기-2 태명



너의 태명은



무슨 말도 안 되게 술을 옴팡지게 마신 사람마냥 토를 했다. 음식을 먹으면 토를 했다. 먹지 않으면 괜찮은 것도 아니었다. 빈 속이면 숙취상태에서 배에 타고 있는 듯한 울렁거림이 계속 있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잘못했다고 이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그러면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살겠다고 누군가와 계속 딜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괴로웠다. 입덧이라는 게 티비에서 보던 것처럼 귀엽게 우웁하는 구역질이 아니었다. 위장이 비틀리며 구웨에에엑하는 구토가 치밀고 올라왔다.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기에게 영양이 가야한다는 생각에 뭐라도 먹을라치면 이제는 냄새에도 구역질을 하는 지경이었다.


입덧약을 먹는 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병원에 가 처방을 받아 입덧약을 먹었다. 그러나 약을 먹었어도 음식을 먹는 일엔 큰 차도가 없어서 일단 입에서 받아들이는 음료와 과일로 식사를 했다. 우연히 편의점에서 발견한 음료였는데 그 음료덕에 입덧 기간을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덧은 실로 다이어트 효과가 대단했다. 이 주도 안되어서 몸무게 2kg이 빠졌다. 그래도 다행히 잘 먹지는 못하는데 체력이 떨어지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안 그래도 저질체력인 내가 여기서 체력이 더 떨어지면 병원신세를 져야할지도 몰랐다. 그동안 실감하지 못했던 임신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동시에 겨우 이런 일 하나로도 괜히 아기를 원했나하며 기분이 왔다갔다했다. 아기를 갖고서도 이 고민을 계속 할 줄은 몰랐다. 아기 갖기로 한 게 잘한 걸까 괜찮을까 하는 고민. 남편은 안쓰러워하고 음료수를 박스로도 주문해주었지만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속상해했다.




그 날 밤은 일요일이었는데 다음 날 남편도 출근해야하고 나도 좀 지쳐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즈음부터 배가 계속 땡겼다. 5주차에 병원에서 아기가 아기집 지어놓은 것을 초음파로 확인했기 때문에 아기가 튼튼하게 지어놓은 집을 확장하는건가? 궁금해하면서 살살 아픈 배를 감싸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아침이 되어 남편은 출근을 하고 나도 처리해야 할 일을 일찍 시작하고 있었는데 배가 갑자기 찢어지듯이 아프더니 생리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확인해 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몸이 갑자기 벌벌 떨렸다. 병원에 전화를 했다. 피가 비친다고 지금 내원하면 진료를 볼 수 있는지 물었는데 오전 진료는 꽉 차서 볼 수가 없고 오후 2시에 예약을 잡아줄 테니 오라고 했다.


남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화하려다가 별거 아닌데 괜히 걱정시키는 걸 수도 있잖아? 하면서 병원에 다녀오면 연락해야지 했다. 사실은 무서웠다. 남편에게 말하면 진짜 아기가 갈까봐 내가 너무 눈물이 주르륵 흐를까봐 겁이 나서 차마 연락을 하지 못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피는 조금씩 계속 흘렀다. 벌벌 떨리는 몸이 진정되자 시간이 안 간다고 느껴져서 집에서 나가야 하는 시간에 알람을 맞춰두고 처리해야 할 일에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 시 반쯤이었나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가달라고 하고 가만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남편이라면 이게 별 일이 아닐지라도 그 상황에 자신이 없었거나 몰랐다면 서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목을 잘 가다듬고 남편에게 전화했다. 목을 잘 가다듬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펑펑 울면서 아기가 가려고 하나보다고 무섭다고 말했다. 남편은 어리둥절해서 처음엔 뭔지 모르다가 갑자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지금 병원으로 본인도 오겠다고 했다. 집과 병원과 남편의 직장 모두 가까워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병원에 접수를 하고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오지 않았다. 당연히 늦을거라고는 생각했다. 하던 일도 있었을 거고 사장님에게 이러이러해서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얘기를 해야 했을 거고 본인도 놀란 마음을 진정시켜야했을테니까. 남편이 오지 않은 사이에 난 진료실에 들어갔고 초음파를 하더니 의사선생님은 피가 고여있던 게 나온 것 같다고 처치를 해주었다. 아기는 잘 있다고 너무 걱정말라고 안심도 시켜주었다. 이것 좀 보세요 아기 심장 뛰는거에요. 잘 있죠? 진짜 괜찮은거죠? 네 잘 있어요. 걱정마세요. 버들씨가 너무 놀랐나부다. 괜찮아요.


처음 듣는 아기 심장소리였다. 엄청 빠르고 우렁차게 뛰고 있었다. 집도 그 사이 더 크게 잘 지어놓고 있었다. 점 같던 아기는 강낭콩 같은 모양을 하고 잘 자라고 있었다.

임신을 하고서도 평소에는 내가 아기를 원했는지도, 이 아기를 잘 키울지도 모르겠고 자신감도 전혀 없었는데 이 날 알게 되었다.




내가 아기를 원하든 원치 않았든 아기가 와주어서 기적이라고 느꼈고 아기가 떠날까 봐 이렇게까지 겁나하는 엄마라면 나한테 이 아기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아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기를 만나기 전부터 난 이미 우리 아기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잘 키울지 모르겠지만이라는 자신감 같은 여유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 잘 키우려고 반드시 애써야하는 책임감도 함께 크게 다가왔다.

너무 놀라기는 했지만 이 경험을 난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할 것이다. 나중에 아기를 키울 때 이 때 아이를 잃을까봐 얼마나 두려웠는지 떠올리면서 얼마나 귀한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는지 얼마나 다행인지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다음 진료는 2주 뒤인 9주차에 진료를 오기로 하고 차분해져서 진료실을 나가니 남편이 앞에 앉아있었다. 남편도 운 것 같았다. 놀랐지? 괜찮대 고여있던 피가 나온 거래. 나도 놀라서 너무 울어가지고 미안 하고 멋쩍게 웃자 남편은 눈물이 그렁해져서 진짜 괜찮대? 하고 몸에 힘이 쭉 빠진 사람처럼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나는 아기도 괜찮고 나도 이제 배가 그렇게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앞으로 혹시나 혹시나 이런 일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꼭 말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를 집에 데려다주고 남편은 일하러 갔다.




전화가 한 10분에서 20분 간격으로 왔다. 괜찮다고 육천번을 말하고 그럴거면 퇴근을 해라라고 핀잔도 주고 일해야되니까 그만 전화하라고 안 받을거라고 협박도 했다. 전화가 오지 않으면 카톡으로 계속 뭔가 얘기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대 와 같은 검색으로 얻은 정보를 나에게 보내주었던 것 같다. 나는 괜찮아졌는데 남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남편은 그 길고 긴 업무시간을 잘 버티고 집에 돌아와 처음 이벤트했던 초음파 사진을 보더니 울컥했다. 아기 잘 지키자며 그동안 고심했던 아기 태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맞춤으로 잘 와서 찰떡이라고 할지, 하늘이 내린 호랑이 (아기가 태어나면 호랑이 띠가 될 것이다.)니까 하랑이라고 할지 그 밖에 여러 이름을 초음파 사진을 보며 불러보더니 처음 집을 지은 것을 본 날의 초음파 사진에 이름과 인사를 함께 적었다.


딱풀아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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