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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Dec 06. 2023

임신일기 06. 임신초기-3 : 임신에 대한 후회


후회가 어디 임신뿐이랴




딱풀이는 무럭무럭 자라 벌써 임신 초기 마지막에 가까운 11주가 되었다. 이젠 배로 초음파를 할 수 있고 11주에는 많은 검사를 한다. 뇌모양, 코뼈, 목투명대를 확인하는 검사를 하고 내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산전검사를 진행한다. 나는 노산으로 아기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추가로 루나스캔이라는 니프티 혈액검사도 했다.


다행히도 초음파로 검사한 아이의 뇌 모양, 코뼈, 목투명대는 괜찮았고, 니프티 혈액검사한 것도 모두 저위험군이 나와서 안심이 되었다. 다만 산전검사에서 갑상선항진증(임신중에 일시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함)때문에 두 달 뒤에 다시 검사를 하기로 했다.


떨리는 검사와 걱정하던 결과를 확인하고보니 갑상선항진증을 제외하고는 다 괜찮다는데 어째서 내가 느끼는 내 몸은 괜찮지가 않은가!

대체로 무기력했다. 물에 적셔진 솜마냥 몸이 축 처졌다. 미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구토가 치미는 입덧도 계속이고, 입덧이 좀 나았다 싶은 날엔 잠을 못 자서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는가하면 어떤 날엔 동면하는 곰마냥 하루종일을 넘어서 자기도 하고, 어떤 날은 기분이 상향하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지구 끝까지 올라갈 것 같았으며 어떤 날은 내 머리 위에만 먹구름이 쫓아다니듯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원래도 평정한 성품은 아니지만 이런 오락가락하는 컨디션 때문에 더더욱 계획하거나 하고 싶던 일을 내가 원하는 때에 해내기가 어려웠다. 작은 취미나 산책도 몸이 좋지 않으면 그저 집에 누워 속이 울렁거리지 않게, 머리가 최대한 울리지 않게 천천히 돌아눕거나 내 신세가 왜 이런가 눈물을 또르르 흘리며 청승을 떠는 등 어쨌든 누워있기가 최선이었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회사일이 많이 없는 시기라 일이 거의 주어지지 않기도 했고 뭔가 할라치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몸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넉다운을 외치며 드러눕기 일쑤였다. 뭘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말 그대로 삶의 낙이 없는 지경이었다.


이 무렵엔 몸무게가 4킬로그램이 빠져있었는데 4킬로그램엔 살, 근육뿐 아니라 체력도 함께 있던 모양이었다. 누워있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움직이며 일어나지 않으면 현기증이 나서 주저앉는 게 안전했다. 음식을 먹기 전에는 잘 들어간다고 양을 임신 전에 먹던대로 먹거나 조금이라도 속도가 빠르면 변기가 어서오게 마음껏 게워보시지 하고 반기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다.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자는 것도 내 맘대로 되는 날이 거의 없었다. 힘내보자고 다짐을 해봤자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마음먹은 것은 마음으로 끝났다.

몸과 정신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해도 몸이 정말 너무나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고 몸은 따라주지만 마음에 일어나는 것이 없다면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기간이었다. 눈물이 그렇게 많이도 났다. 맘대로 안되거나 몸이 안 따라주면 다 짜증이 나고 힘들고 누군지 모를 혹은 어떤 무언가를 원망했다. 아무 탓할 일이 없는데도 그저 혼자서 트집 잡아서 불같이 화를 내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감정이다.


후회가 밀려드는 날이 많았다.

겨우 이런 일로도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괜히 갖기로 한걸까 고민을 하는데 낳고 나면 더 하지 않을까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자격이 없는데 괜히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건가 이런 고민은 고민 자체로도 이미 생긴 아이에 대한 거부인가 싶어 죄책감이 들었다. 아이가 생긴 일을 모두 축복이라 생각하고 나에게 축하해주고 세상에서 이렇게 중심인적이 있었나 싶게 많은 배려도 받고 따스한 마음도 나누고 행복해하는데 나는, 아니 나만 힘들고 그저 행복하기 힘들다니.

심지어 이런 고민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왜냐면 가장 가까운 남편과는 이런 고민을 나누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남편은 가정이 꿈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는지 내가 이런 고민을 나누려고 어떤 마음인지 얘기하면 입덧이나 임신증상이 힘들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거나 그저 마음이 상해서 나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결국 내 고민은 고민을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사실 고민을 한다고 해서 이제와 아이를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몸과 마음이 힘든 와중에도 내 시간을 보내고 육아책을 읽거나 맘카페에서 육아고민을 읽고 있노라면 아이를 갖고, 낳고, 기르는 일이 아주 힘들지만 달달한 시간도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간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를 느끼기도 했고, 아이 없이 늙어가는 삶은 내가 겪을 수 없겠지만 둘만의 삶을 짧게라도 살아봤으니 이제 아이 있는 삶으로 나와 함께 늙어갈 남편을 상상하면 마음에 행복이 가득 차오르면서 이미 감사해지기도 했다 그런 날은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이 샘솟기도 해서 중고로 구입한 전자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악보를 잘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훌쩍 가있었다. 낮에 치던 피아노는 해지는 모습을 보게 해주기도 했다. 이 무렵 전 같았으면 술을 마셨을 시간이었을텐데 다른 많은 일을 하기도 했다. 남편과 보드게임을 하며 아군에서 적군으로 만나는 체험도 하며, 기억력이 좋지 않아 읽고 또 읽어야 하는 내 뇌를 위해 육아책도 빌려 읽고, 지금은 다 엎고 새로 쓰는 임신일기지만 그 당시 나름의 임신일기를 쓰고 연재를 이렇게 하면 재밌을까? 혼자 상상도 하는 시간도 갖고, 나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도 되어주었다. 활동하지 못하는 날은 그저 누워있어야하기 때문에 많은 생각도 할 수 있었다. 누워있어도 힘든데 직장에 출근해서 일하는 임산부들은 얼마나 힘들지 안쓰럽고 그 상황을 열심히 버텨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겐 너무 대단하고 멋진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난 자택이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아찔해지면서 갑자기 회사에도 감사해지는 것이었다.


여러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이미 알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가끔 아이 없는 삶을 살아볼 기회를 놓친 건 아닐까 후회하지만 실은 나는 이미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고 살 준비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기를 낳고 기르면 어떤 마음이 될지 아이가 커서는 또 어떨지 내가 늙어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임신 초기인 그 때는, 그리고 아직까지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할 순 없을지라도 적어도 더 후회하는 선택과 덜 후회하는 선택에서 나는 덜 후회하는 선택을 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안다.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을 때 내가 이미 딱풀이를 사랑하고 있던 것처럼 아마 아이가 없는 삶이 그리워질 때가 올 순 있어도 아이가 없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후회 속에서도 덜 후회할 수 있는 내 나름의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임신에 대한 일이 후회냐 덜 후회하는 일이냐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순간에도 영원한 물음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이나 남편인 타자때문도 아니고, 임신한 상황이나 육아하는 상황인 순간때문도 아닌 그저 나에 대한 물음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더불어 그 일을 후회로 만들지 덜 후회하는 일로 만들지는 어느정도는 내가 하기 따라 달라질 것이기에 그 시간을 잘 보내며 배우며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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