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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n Africa Jul 21. 2022

지긋지긋한 곱슬머리

solo leveling_3 내가 케냐로 가야 했던 또 다른 이유 

그녀들 : 오늘 하루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보세요. 특히 햇살님은 "화"가 많으니, 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한번 알아차려 보세요. 알아차린다는 것은 내가 화가 나는 순간, 그 화에 끌려가지 않고 "내가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나는구나, 내가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 화를 내려놓는 거예요. 


햇살 : 저 그렇게 아무 때나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 아니에요.!! 

화가 날 이유가 있으니,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으니 화가 나는 거죠. 제가 뭐 이유도 없이 화를 내겠냐고요!! 


그녀들: 어? 지금 발끈한 거 같은데? 제가 햇살님을 오해하고 비난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니 살짝 화가 올라온 거 맞죠? 상대방에게 소리치고 욕하고 하는 것만 화가 아니에요. 오늘은 이런 사소한 감정의 오르내림을 한번 알아차려 보세요.  


햇살: (못마땅) 아무튼 알겠어요. 한번 알아차려 볼게요. 전 그럼 이만 필라테스 하러 다녀올게요. 


비뚤어진 몸을 교정하기 위해 등록한 필라테스 학원으로 향해 가는데 학원 가까이에 도착하자 빗방울이 후드득 쏟아진다. 서둘러 학원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갔다. 




탈의실에 들어가 비에 젖은 옷을 빠르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서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카락이 곱슬곱슬 부스스하게 사방으로 뻗어있다. 

이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화가 확 올라왔다. 


해안 도시라 습도가 높은 곳, 통영에서 장마철을 지내는 동안 곱슬머리인 내 머리카락은 본연의 내추럴함을 마음껏 드러내며 곱실거리는 중이다. 

케냐에서 지내는 몇 년 동안 나는 내가 심각한 곱슬머리라는 사실을 잊은 채 지냈다. 

케냐의 나이로비는 일 년 내내 평균 기온 25도, 습도 60%를 유지하는 선선하면서도 건조한 천상의 날씨를 가졌다. 비가 많이 오는 우기철에도 몇 시간 소나기처럼 비가 퍼붇다가 비가 그치면 1~2시간 안에 땅이 바싹 마를 정도로 건조해진다.  

건조한 날씨라 수분 크림을 많이 발라줘야 하는 단점은 있었으나, 한국의 여름, 그것도 장마철 여름처럼 덥고 습하고 끈적거리는 날씨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기에 몇 년간 내 머리가 이렇게 곱슬거린 걸 볼 일이 없었던 거다. 


제멋대로 부스스하게 이리저리 뻗은 내 머리카락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중고등학교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 곱슬머리에 심각한 컴플랙스를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때는 교칙상 머리카락을 묶지도 못하도록 해서, 귀밑에서 떨어지는 똑 단발머리를 유지해야 했었다. 같은 단발머리라고 해도 친구들의 머리카락은 찰랑찰랑하게 예쁜 직모였고 내 머리카락은 구부정하고 촌스러움을 주는 곱슬머리였던 것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때만 해도 곱슬머리들에게 유일한 희망 "스트레이트 파마"란게 있었는데, 이 파마는 한번 할 때마다 엄청난 머릿결 손상을 주면서도 효과는 단 1~2주밖에 가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창피한 내 곱슬머리를 단 하루, 단 한순간이라도 감춰보고 싶어서 시간만 나면 또 용돈만 생기면 독한 스트레이트 파마약을 머리에 바르고 납작하고 긴 플라스틱 판을 머리에 붙여놓곤 했다. 

독한 파마약은 머리카락에 영양분을 모두 빼앗았고 1~2 주 후에 내 머리카락은 다시 힘을 잃은 채 구불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곱실거리는 앞머리, 짧은 다리, 통통한 종아리와 허벅지, 한껏 솟은 어깨에 구부정한 자세. 납작 동글한, 왠지 우울하고 억울해 보이는 화장기 없는 얼굴. 

학원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검은색의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내 뒤로 

날씬하고 늘씬한 몸매를 컬러풀한 레깅스와 탱크톱으로 뽐내며 몇 명의 회원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지나간다. 

왜지 모를 창피함과 함께 다시 한번 뜨거운 화가 확 하고 올라온다. 


거울 속에서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주눅이 들어 우울하고 불안했던 어린 시절의 나, 외모로도 성격적으로도 너무나 평범했던 나,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으나 방법을 몰라 답답해하고 속상해하던 내가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나를 참 많이 미워했고, 스스로를 부족하고 못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나에게 화를 냈었나보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만 그랬던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을 뿐,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를 계속 미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가 계속 부끄러웠고 못마땅했기에 이런 내 모습을 숨기려 애쓰고 때로는 과장해서 괜찮은척 했던 건 아닐까? 

또 이런 나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던 현실 속에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러다 갑자기 소름이 쫙 끼친다. 

"혹시 이런 모습이 보기 싫어서 내가 그렇게도 간절히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건가?!!






그럼 왜 하필 나는 아프리카 케냐를 나의 도피처로 선택했을까? 

새로운 기회의 땅 아프리카, 내가 사랑하는 케냐 커피, 커피 농부들과 함께 공존하는 삶, 내가 의식으로 생각했던 이런 이유가 전부가 아니었던가? 


내 무의식 속의 숨겨져 있던 내 마음을 보고 나니 어렴풋이 답이 보였다. 

케냐에는 내 곱슬머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곱슬머리를 가진 케냐인들이 살고 있다.

(케냐인들은 내 머리카락을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케냐에선 내 머리카락이 아름다워 보인다. )

케냐에는 덩치가 크고 뚱뚱하고 특히 하체가 풍만한 케냐인들이 살고 있다.

(케냐인들에 비해 나는 아주 날씬한 편이며 내 하체는 뚱뚱한 축에 끼지도 못한다.) 

케냐에는 아주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케냐에서 나는 상류층이 사는 동네에서 가정부와 운전사를 두고 상류층의 삶을 누리며 살고 있다. ) 

케냐에는 검은 피부의 흑인들이 살고 있다. 

(하얀 피부를 가진 나는 케냐에서 어딜 가든 관심을 받았고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뭐지? 왜 이렇게 딱딱 들어맞는 거지? 

난 결국 내 무의식에 숨겨진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케냐까지 가야 했던 거였나? 

어릴 적 내 콤플렉스를 극복하거나 없애기는커녕 내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나보다 더 못하다고 여겨지는(순전히 잘못되고 어리석은 내 생각 T.T. ) 사람들을 속에서 찾아들어가 위안을 받고 그 속에서 우월감을 느껴왔단 건가? 


한국에서 나는 비굴했고, 케냐에서 나는 교만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그 콤플렉스 덩어리에서 한 발도 더 나아지지 못했던 거였다. 




그녀들: 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미워하세요? 자기 자신이 이렇게 미운데, 남편, 자식, 친구나 동료들은 얼마나 미워하며 살았겠어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힌 채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때론 교만했다가 때론 비굴했다가 이런 반복적인 삶을 살았군요.  

자존심은 굉장히 낮은 에너지 상태예요. 이런 상태의 사람은 자기 인생에 분노, 욕망, 두려움, 슬픔, 무기력, 죄의식, 수치심 같은 더 낮은 에너지의 사건만을 자꾸 끌어당기게 돼요. 이러니 햇살님의 인생에 행복이나 풍요, 기쁨, 사랑 등이 찾아올 리가 없죠.


햇살:...


그녀들: 자신을 좀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 곱슬머리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작고 뚱뚱한 체형도 아무 문제없어요. 가난하고 부유한 것도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모든 문제는 햇살님 스스로 만드는 것일 뿐.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아무 문제가 없어요. 세상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을 해 보세요. 햇살님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햇살:...(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인데...) 노력은.. 해 볼게요. 

그런데 정말 충격적이에요. 내 무의식이 나를 케냐로 이끌었다는 것이.. 그리고 어릴 적 내 콤플렉스를 내가 아직도 가지고 살고 있어서 지금까지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에요. 

이젠 내가 정말 자존심이 세고 교만한 사람이란 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녀들: 정말 좋은걸 깨달으셨네요. 순간순간 이렇게 자신에게서 올라오는 감정에 깨어 있어 보세요. 

우리는 흔히 자신이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힘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잠재력, 즉 무의식에서 비롯된 잠재력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어요. 햇살님이 묻어두고 모른척했던 아주 많은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부정적인 감정은 놓아주는 연습을 해 보세요. 무겁고 낮은 에너지의 감정들을 놓아주고 내려놓아야 햇살님의 의식은 가벼워지고, 높은 에너지 상태로 업그레이드될 수가 있어요. 그렇게 자신이 레벨업이 이 되어야 내 인생의 레벨도 올라간답니다. 


햇살: 네. 정신이 번쩍 드네요. 계속해서 올라오는 내 마음을 관찰해 볼게요. 

지금까지 나의 교만한 마음 때문에 상처 받았을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그녀들: 그래요? 그럼 지금 그 사람들을 향해, 또 자기 자신에게 호오포노포노를 해보세요. 생각날 때 마다, 화가 올라올 때마다 호오포노포노를 하는 겁니다. 


햇살: (어색 어색) 나의 어리석음과 교만으로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미안합니다. 이런 나를 용서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현재 나의 상태 

수치심 50 % : 내가 저렇게 교만한 콤플렉스 덩어리였다고? 부끄러워. 

두려움 10% :  내 인생이 이렇게 무의식에 이끌려 계속 반복되는 건 아니겠지? 

자발성 30% : 이번엔 자존심 따위 버리고 내 결점을 기꺼이 바라보며 진짜 달라질 테다! 

용기 10% : 난 할 수 있어. 이렇게 계속 나를 미워하고 내 주변 사람들까지 미워하며 살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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