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관의 VIP 고객이었다.
아내를 만난 후 우리는 수많은 영화를 관람했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까지 우리는 거의 매주 영화를 보러 갔었고, 영화를 보고 난 후 집에서도 영화를 봤다. 지친 아내가 잠든 후에도 나는 혼자 공포영화를 또 봤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영화를 보고 또 봤을 것이다. 드라마는 잘 보지 않았다. 다음 편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흐름을 기다리기에는 나는 성격이 급했고, 그렇게 기다렸다가 실망하는 일에 쉽게 분노했다.
우리의 영화 관람은 큰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지만 아이를 갖기 시작하면서 한 순간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찾아온 아이였기에 아내는 임신과 동시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산부인과 갈 때를 제외하고는 먼 거리 외출은 거의 없었고, 특히 영화 관람처럼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자리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임신 초기 아내는 거의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임신 중기에는 어마어마한 입덧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출근할 때, 아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냉장고 밖으로 꺼내어 놓아야 했다. 아내가 냉장고 문을 열 수 없었으므로. 김치는 냄새도 맡을 수 없었고, 아파트 밖에서 희미하게 나는 담배냄새에도 아내는 정말 괴로워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은 갈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는 많은 냄새를 아내는 견뎌낼 수 없었다.
임신 후기에 우리는 배트맨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입덧은 멈췄고, 아기는 안정적이었다. 영화 한 편쯤은 출산을 앞두고 보러 가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음향이 문제였다. 배트맨이 등장할 때마다 엄청난 중저음이 영화관이 울려 퍼지곤 했다. 둥둥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아내의 배는 뭉쳤다. 처음에는 다소 불편한 정도였는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이러다가 애가 나오는 거 아냐?
결국 영화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는데 배가 너무 뭉치자 우리는 농담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아직 예정은 남아 있었고, 다들 큰아이는 예정보다 늦게 온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안심했고, 아이는 그다음 주에 예정보다 빨리 태어났다.
큰아이 출산 이후에는 영화관에 갈 수 없었다.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었고, 아이도 다른 사람 손에 고분고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재우고 둘이 작은 방에 앉아 영화를 봤다. 그것도 아내가 아이를 재우다가 함께 잠들지 않는 날에만 볼 수 있었다.
큰아이가 성장하자 우리는 다시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었다. 단, 애니메이션만. 둘 중 한 명이 아이를 데려가고 나머지는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건 배신이었다. 서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랬다.
그래서 둘째 아이를 임신할 때까지 우리는 공주나 동물을 보면서 함께 웃었다. 나쁘지 않았고 애니메이션 수록곡을 모두 외울 수 있었으며, 딸에게 각종 드레스를 사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겨울 작은아이 출산을 몇 주 남기고, 우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다시 극장을 찾았다. 재미있게 몰두해서 봤고, 아내의 배는 뭉치지 않았다. 우리는 큰아이 출산 전에 보았던 영화 이야기를 하며 웃었지만 여유가 있었다. 아직 예정일은 여유가 있었으므로.
그리고 아내는 정확히 일주일 후 예정보다 빠르게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어두운 영화관에서 오로지 영화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없는 시간을 노려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았다. 어떤 방해도 없이 아내와 둘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좋았고, 무던한 나와는 다르게 장면 장면마다 반응하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영화를 보러 가서 영화와 아내를 번갈아가면서 보곤 했었다.
오늘은 네 가족이 모두 모여 집에서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보았다. 둘째가 태어나기 일주일 전에 봤던 그 애니메이션을.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그때 태어났던 아기가 이제는 성장해서 한 시간이 훌쩍 넘은 영화 한 편을 모두 보고 심지어 그 노래를 흥얼거렸던 것이었다.
오늘은 저녁 내내 그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아내에게 사인을 보냈다. 아이들이 잠든 후에 영화를 보자는 사인을. 큰아이는 이제 뭔가 눈치챈듯하지만 별로 상관하지 않았고, 둘째는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씰룩거리느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바람소리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욕조에서 오래도록 장난치며 목욕을 했고, 나는 욕실에 앉아 그런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까지 아이들은 물에서 나오지 않았고, 결국 꾸중을 들으며 밖으로 나왔지만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자러 들어갔고 나는 집안일과 함께 남겨졌다. 빨리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아내와 함께 볼 영화를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무사히 아이들에서 나에게로 귀환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