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는 그렇게 쿨한 남편은 아니다.
아내는 그만 무료항공권 이벤트에 당첨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경솔하게도 서울에 가서 머리도 하고 잘 다녀오라고 쿨한 남편인양 말해버렸다.
잠시 뒤, 정신을 차렸지만 너무 즐거워하는 아내의 얼굴을 앞에 두고 다른 말은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슬쩍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는 2박 3일은 어떠냐고 물어봤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큰아이는 '문제없음'이라고 답했고, 작은아이는 별로 귀담아듣지 않고 노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사실 아내에게는 개인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아침에 눈뜰 때부터 아이들과 씨름하고, 내가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잠깐 개인적인 업무를 보기도 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을 계속 돌봐야 하는 아내는 사실 개인적인 시간이 거의 없기도 했다. 심지어는 잠드는 순간에도 아이들이 모두 엄마에게 몰려가 버리니. 사실 지금은 개인적인 시간을 주어도 아이들 책이나 공부를 검색하거나 다음 주 아이들의 일정을 돌보는 등 개인적으로 시간을 사용하지도 못할 터였다. 모처럼 서울에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머리도 하고 한가하게 시간도 보내고 나면 조금은 여유를 되찾지 않을까, 저렇게 설레고 즐거운 표정은 오랜만에 본 것이라서 아무래도 다른 이야기로 흥을 깰 용기는 도저히 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많이 컸고, 밥도 잘 먹고, 잘 씻고, 잘 자기 때문에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는데 문제는 없었다. 단지 중압감이랄까 부담이랄까 하는 두려움이 문제였다. 큰아이는 아기 때 엄마가 없으면 엄마를 찾으며 울곤 했다. 엄마 대신 아빠가 눈앞에 있으면 더 큰소리로 울었다. 그래서 가끔 아내가 없을 때, 잠든 아이와 둘이 집에 있으면 아이가 빨리 깨지 않고 조금 더 오래 잠들어 있기를 아무도 모르게 빌곤 했다.
하지만 엄마가 곁에 없으면 아이는 항상 예정 시간보다 일찍 눈을 떴고 한참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이를 달래야 했다. 가끔, 아이를 달래다가 인내심이 바닥이라도 나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으니, 그때 내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오곤 했다.
그때는 몰랐었다. 아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꼭 안아주기만 하면 되었을 텐데. 왜 우는지, 아이의 진심을 알 수 없었고, 아이가 조금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어딘가를 가기 힘들어진다. 블로그나 여러 매체에 임신 상태로 혹은 갓난아기를 데리고 해외여행 다니는 부부들이 등장하지만, 그리고 그런 부부들이 등장할 때마다 아내에게 용기 없음에 대해 비난받곤 하지만, 사실 아기를 데리고 먼 길을 가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것은 겁이 많은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와 둘이 살 때는 떠나는 일에 큰 부담이 없었다. 아내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해서 금요일 퇴근 후, 강원도로 갑자기 떠나기도 했었다. 꼬막이 먹고 싶어서 벌교에 갔다가 보성에서 목욕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가져가야 할 것도, 해야 할 일도 많다. 기저귀, 먹을 것, 옷도 필요하고 무리한 일정도 삼가야 한다. 하루에 갈 수 있는 관광지는 하나나 둘, 낮잠도 제 때 재워야 하고, 먹을 때도 아이를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난 후에야 부부가 이야기할 시간이 생긴다. 간단하게 먹을 간식을 식탁에 차려놓고 아내를 기다리지만, 너무도 길었던 하루에 아내는 그대로 아이들과 잠들어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 가끔 엄마들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혼자만이 잠드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이라면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잠시 가족과 떨어지는 시간을 주고 싶기도 하다. 아마 나에게는 인내의 시간이 되겠지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아내가 없는 아이들과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집안일을 한다는 핑계로 아이들과의 교감을 아내에게 미룬 것도 사실이므로. '아빠가 나에게 해 준 게 뭐야?'라는 말을 듣는 일은 반드시 정말 나쁜 아빠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아주 조금 나쁘거나 무관심한 아빠들도 들을 수 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행동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행동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충분히 있으므로.
또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없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루 일정을 정말 느슨하게 알고 있고 느슨하게 실행하며, 어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엄마의 지시를 고의로 망각하기 잘하는 아빠와 함께라면 엄마와 함께하는 세심하고 알찬 하루는 아니겠지만, 나름 색다른 주말을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오롯이 아빠 자체와 만날 일이 사실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특히 우리처럼 항상 네 명이 꼭 다니는 집은. 아이들에게도 아빠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대단한 인내와 체력과 배려심이 필요하겠지만.
아내가 집에 없는 동안 하루의 식단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다가 함께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다가 그만 졸아버렸다.
큰아이는 오늘 소풍을 다녀왔다. 도시락을 비우고 버스를 탔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루의 소감을 말했다. 둘째 아이는 누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씻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혼이 났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이 지나고 있다. 의미 없이 홈쇼핑 채널을 돌리다가 그만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주말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주말이 될 것이다. 기대 반, 걱정 반, 그리고 아내의 설렘을 함께 느끼며 잠들 것 같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