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일기, 우리 집 동물기.

by 지승유 아빠

사실 아이들 빼고 꾸준히 무엇인가를 키워본 적이 없다.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는 일 년 남짓 함께 생활하다가 마당이 있는 잘 사는 집으로 보냈다. 그전에 강아지를 키우던 집은 세 들어 살긴 했지만, 강아지가 뛸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주인 할머니는 이미 두 마리나 개를 키우고 있었고, 그 집에서는 강아지를 키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에 이사 가야 하는 집은 강아지가 뛰어놀 공간은커녕 우리가 거주할 공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으므로 강아지를 계속 키울 수는 없었다. 강아지를 보내야 하는 것에 불만을 표출해보기도 했지만, 그 어린 나이에 생각했을 때도 지금 생각했을 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다른 집으로 이사 간 다음에는 고양이를 주워다 키웠었는데 그 아이는 크면서 점점 집에 들어오는 빈도가 낮아지더니 어느 날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실에서의 안정적인 삶보다는 야생의 거친 삶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게 딱 두 번. 막연하게 다른 집에 다 키우는 애완동물을 왜 그렇게 키우기 어려웠을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환경의 열악함만이 원망스러웠을 뿐, 그때는 무엇을 키운다는 행위 자체의 번거로움을 크게 고민해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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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우리 아이들은 모든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한다. 고양이, 강아지는 기본이요, 지나다니거나 날아다니는 새, 심지어 거미도 키우고 싶어 한다. 바닷가에서 데려온 빈사상태의 게를 한밤중에 아이 몰래 바다에 놓아주러 갔다가 넘어져서 다친 적도 있다. 하지만 작년까지 애완동물을 제대로 키운 적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키우도록 허락해주지 않았다. 몇 년 전에 큰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금붕어 3마리를 3년 가까이 키우다가 하늘나라로 보낸 다음에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 키우지 못하느냐는 질문에는 항상 '사람도 키우기 힘든데'라는 핑계처럼 들리는 진실을 대고 가볍게 넘어가지만 아이들은 모르는, 생물을 돌보고 키운다는 행위가 가진 무게를, 사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곤 한다.


아이들의 정서에 좋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육아만으로도 다운이 되는 하루를 연속적으로 맞이하는 입장에서 생물 하나가 늘어나는 것은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에 무게를 더하는 정도의 부담으로 다가온다. 가벼운 마음으로 동물을 데려온다면 그것은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내도 나도 강아지를 좋아한다. 키우고 싶은 마음은 아내가 더 많지만, 죽음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결심을 하지 않고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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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데려온 것은 장수풍뎅이 애벌레였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흙 속에서 나오지 않고 바로 하늘나라로 직행했다. 그다음 데려온 것은 달팽이였는데, 아이들이 자꾸 만지작거리더니 결국 또 하늘나라로 보내버리고 말았다. 그다음은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아내와 아이들이 가져온 토끼였다. 나는 집에 오는 순간까지 반대했지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토끼는 그래도 달팽이나 금붕어보다는 훨씬 생물의 느낌이었지만, 먹이를 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친근하게 굴지 않았다.

그리고 문제는 애완동물을 가장 거부하는 내가 먹이를 주는 사람이었으니. 토끼들은 나를 따라다녔지만 나는 성가셨고, 아이들은 토끼를 따라다녔지만 토끼는 아이들을 성가셔했다. 태풍이 오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실내로 대피시키기도 하고 먹이도 주고 배설물도 나름 열심히 치웠다. 그런데 어느 태풍이 오는 날, 나는 정신없이 잠이 들어버렸고, 토끼우리는 한쪽이 파손. 토끼는 가출해 버렸다. 까망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토끼는 아마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을 테지만 아이들에게는 한라산에 가서 토끼 대장이 되었을 거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것은 토끼 사료와 건초뿐이었다. 그리고 지난주 아이들은 시장에서 햄스터를 가져왔다.


나는 쥐와 쥐처럼 생긴 아이들을 매우 싫어한다. 사실은 조금 무서워한다. 어린 시절 반지하에 살 때, 몇 번이고 쥐가 집으로 침입해 난리를 친 적도 있었고, 쥐덫에 갇힌 쥐를 보고 겁에 질린 적도 몇 번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햄스터는 나에게 조금 호감형으로 생긴 쥐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햄스터를 몹시 귀찮게 했다. 오죽하면 햄스터를 가장 싫어한 내가 말릴 정도로. 그리고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아이는 불과 보름을 버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잠시 묵념.

이 외에도 아이들은 다친 새를 데려다가 무사히 날려주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당한 비둘기를 데려다가 보살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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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햄스터를 땅에 묻어 주면서 이토록 끊임없이 다른 생명을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들도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다른 생물을 보살피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이제는 인정하고 이해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죽은 햄스터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가 아이들을 안아주고 예뻐해 주고 놀아주듯이 그렇게 다른 생물들과 놀고 싶어 하는 악의 없는 아이들의 정서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물론 병원을 데려가야 하고 예방접종을 맞춰주어야 하고 목욕도 시켜주어야 하고 산책과 정서적 교감도 주어야 하겠지만, 나의 귀찮음보다는 다른 생물과 진심으로 교감하고 다른 생물을 보살피는 보람을 아이들이 느끼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어린 시절,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환경은 열악했고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원하던 것을 못하고 성장한 내가 아이들의 마음을 또 알아주지 못하고 환경의 열악함을 주장하며 그 의지를 꺾어야 하는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겠다. 시간은 조금 걸릴 것이다. 아니 조금 많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책임감은 그렇게 쉽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아이들에게 알맞으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며 아이들에게 정말 정서적 친구를 만드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맑았다. 부처님 오신 날, 선덕사에서 다들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왔다. 아이들은 조금 늦은 시간에 곤히 잠들었고, 아내는 큰아이 생일 파티에 쓸 사진을 몇 시간째 고르고 있었다. 가만히 예전 사진을 보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보면서 예전의 아이들과의 추억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같은 복잡한 감정을 꼭꼭 되씹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사진을 고르고 아내가 편히 잠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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