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일기, 아내의 휴가 2

by 지승유 아빠

카페 중 최고는 키즈 카페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공감할 것이다. 특히 아빠들이.

엄마가 없는 집에 아빠들이 아이들과 남게 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엄마 혹은 부모들이 한 숨 돌릴 수 있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큰아이가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한 즈음에는 바람이 아직 차가운 계절이었고, 아이가 잘 기어 다니는 즈음에는 미세먼지가 극성이었다. 우리는 나름 고층 아파트에 살았는데 아이가 기대어 있는 거실 창으로는 멀리 건조해 보이는 산과 다른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그렇게 아이는 늘 같은 풍경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만 했고, 아내도 그랬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집은 엉망이었다.

만약 지금이었다면, 아내와 나는 역할을 분담하여 한 사람은 정리 및 청소를, 한 사람은 아이와 놀이를 한 후 둘 다 장렬히 전사했겠지만 당시 초보였던 우리 부부에게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는 둘 다 벅차기만 했다. 집은 아무리 치워도 정리되지 않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았다. 물론 큰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아이 돌보기는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끝나지 않을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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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싸우는 중이었고, 나보다는 아내가 더욱 그랬다. 잠시라도 아내를 쉬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와 놀아주는 기술이 부족한 나의 역량을 감추기 위해서 선택한 곳이 다양한 놀이시설이 있는 키즈카페였다.

초보 아빠들은 도무지 아이와 놀아주지 못한다. 정말 예쁘긴 한데,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귀엽기는 한데, 어떻게 하면 아이를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연애보다 어려운 것이 아이와 놀아주기였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집에 없는 많은 장난감이 있고, 다른 아이들이 있으며, 나만큼 놀이에 서툰 아빠들이 있었다. 그리고 부부 둘 중 하나는 모처럼 차나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내는 금요일 밤 비행기로 서울에 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상하리만큼 침착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며 잘 먹고, 잘 자고 일어났다. 드디어 아내가 없어도 의식주쯤은 해결할 수 있는 아빠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놀이는 다른 문제. 아이 둘을 혼자 모두 만족시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 방법은 간단했다. 미리 이용권을 구입해 두었던 키즈카페로 목적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아이 둘을 혼자 데리고 가는 키즈카페의 규모가 크다면 결코 쉴 수는 없다. 큰아이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큰 아이들이 노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지만, 내 얼굴을 꼭 닮은 작은아이는 안타깝게도 곁에 남기 때문이다.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먹이고, 이를 닦이고 닦고, 낮잠을 재우고 자면 저녁이 된다. 저녁을 먹이고 먹고, 씻기고 씻고, 두 아이를 꿈나라로 보내고 나면 드디어 기다리던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평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먹을 국을 끓이고 나면 11시가 다 되어 비로소 찾아오는 것이다. 아내는 불안해했지만 아무 문제없이 아이들에게 큰 소리 한 번 안치고, 하루를 마무리한 것이다. 드디어 기능을 모두 갖춘 아빠가 된 뿌듯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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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모처럼 친구와 밤새 수다를 떨고, 공항에 가서 항공사 행사에 참여한 후 아무 방해도 없이 머리를 하러 갔다. 머리를 하고 있어도 아무도 전화를 하지 않으며 무릎 위로 아무도 기어오르지 않고, 곁에서 남매가 다투지 않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에서 말이다. 그리고 다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심야영화를 보고 그 친구 집에서 잠들었다. 아내가 모처럼 평화롭게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뿌듯하고 기분 좋았지만 아내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시간이 허전하고 조금은 불안했으며 무료한 느낌이었고, 오랜만에 대중교통은 불편했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고 했다. 아내가 없는 하루를 내가 허전하고 불안하게 보냈듯이, 가족이 없는 하루를 아내도 똑같이 불안하고 허전하게 보낸 것이리라.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여전히 아무 때나 여행을 가고 아무 때나 밥을 먹고 며칠에 한 번씩 청소를 하는 둘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면 아마 알 수 없었던 느낌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가 자신들을 매우 훌륭한 육아 파트너이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우리는 그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그때, 우리는 어렸고 신혼이었다. 그 파트너이자 친구라는 뭔가 애정이 빠져버린 것 같은 관계를 인정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살아가면서 매우 훌륭한, 그냥도 아니고 그저 그런 것도 아니고 매우 훌륭한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갈등을 이겨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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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키즈카페와 한 번의 놀이공원으로 아내가 없는 2박 3일은 지나갔다. 길이 엇갈리기는 했지만 엄마가 도착한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내복 차림으로 마중 나가려고 했고, 자신의 옷이나 화장품 대신 아이들의 옷과 남편의 옷, 그리고 도넛을 사 온 엄마를 보자 가족 모두는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밤이 늦도록 잠들지 못했다.

물론 도넛을 더 반가워하는 것인지 엄마를 더 반가워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가끔 아내가 없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후회하기는 했지만 항공권 이벤트가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다녀오라고 말해버렸다. 확실한 것은 잠시 못 본 사이에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생겼으며, 나도 아내도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제주도에서는 먹기 힘든 그 도넛을 먹게 되었으니 결국 모두 행복하게 주말은 마무리된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언제나처럼 좋았다. 아침에 멀리 바다까지 잘 보였고, 아이들은 따뜻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았고 하늘에 별은 많았다. 밤늦도록 잔소리를 해도 아내와 아이들은 한 몸처럼 어울려 잠들 줄을 몰랐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야기 소리가 두런두런 한참 흘러나왔다. 모두 피곤했겠지만 아마 행복하게 잠들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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