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이들이 주어와 서술어를 사용해 말을 하기 시작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빠 싫어! 아빠 미워! 정도는 애교. 아빠, 다른 아이 아빠 해, 아빠 나가! 정도가 되면 사실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다. 처음 딸에게 저런 말들을 들었을 때는 정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화는 낼 수 없었다. 사실 화를 낼 자격이 없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았다. 서운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잘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 시간도 제대로 보내지 못했고,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니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와 아내는 둘이 잠들었고, 나는 모두 잠든 후에 들어와 작은 방에서 혼자 잠들었다. 아이에게 나를 좋아해 달라고 이야기할 자격은 없었다.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므로.
나중에 육아를 거듭하고 보니, 그때 딸의 말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때 나에게 그 말들은 채찍처럼 다가왔었다.
그래서 둘째를 키울 때 더 열심히, 더 많이 육아나 집안일에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엄마와의 시간과 비교하기는 어려웠지만 태어난 날부터 아이는 많은 시간을 내 품에 있었고, 밤중 수유나 낮잠 혹은 밤잠에도 적극 참여했다. 큰아이 때는 그렇게 어려워했던 아이 목욕도 혼자 시켰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무리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으로서 일종의 자격을 얻고 싶은 생각에 둘째를 방패처럼 이용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은연중에 둘째 아이에게는 배타적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참견하지 마!
하지만 30개월을 막 넘긴 아들에게 들은 한마디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정글짐을 오르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따르며 혹시 아이가 떨어질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떨어진다는 생각만으로도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대담한 아빠의 모습은 저 멀리 날아가고 그날, 그 장소에서 가장 겁쟁이 아빠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다고 생각한 둘째가 문득 돌아보며 한 마디를 던진 것이다.
서운했다. 정확하고도 명확하게.
아이는 혼자서도 정글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 번에 손이나 발을 하나씩 움직이고, 작은 손으로 단단히 기둥을 붙잡았다. 언제나 작고 짧다고 생각한 다리는 놀랍도록 굳건하게 몸을 지탱하고 그렇게 느리게 조금씩 정글짐을 점령해나갔다. 나는 내가 얼마나 소심한 사람이며, 놀랍도록 겁쟁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자격을 얻기 위해 한 행동들이 사실 과잉보호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종종 큰아이에게 아빠와 엄마 중에 누가 더 좋냐고 물을 때가 있다. 아이는 이미 초등학생이고 그런 질문을 티가 날 정도로 한심해하지만, 아주 가끔 대답해 줄 때가 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 아이는 아주 매몰차게 엄마가 좋다고 했다. 다시 물어보기 힘들 정도로. 그럼 나는 혼자 흠칫 상처 받으며 아내에게 자리를 양보하고는 뒤로 물러서곤 했었다.
오늘 외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큰아이에게 그 한심한 질문을 했다. 아이는 백미러 사이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은 딱 반반씩 좋아. 아빠랑 엄마랑.
내가 혼자 상처 받고 뒤로 물러서며 큰아이에게 다가가기를 두려워하는 동안, 둘째를 방패 삼아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동안 아이들은 정말 혼자 그리고 각자 많이 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 비해 정말 많이 겁쟁이였고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들을 외가에 두고 밤 비행기를 타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는 돌아오는 차에서 그만 잠이 들어 작별인사를 못했고, 큰아이는 모처럼 나를 많이 안아주었다. 혼자 돌아오는 길은 한적했고 조금 외로웠다.
서귀포의 날씨는 여전히 좋았고 하늘은 높았지만 한밤중 아이들의 잠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이들은 아마 행복하게 엄마의 곁에서 잠들겠지만 그리고 내일 저녁 우리는 만나게 되겠지만 조금은 아빠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를 닮아 어둡고 깊은 피부를 지니고 있는 우리 딸이. 그리고 나도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나오는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