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아이의 수학책을 본 적이 있는데, 분명히 알고 있는 계산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었다. 당연히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었고 돌아온 대답을 듣고 아이를 혼낼 수가 없었다.
창 밖에 새 보다가 잊어버렸어.
우리 아이는 한 번도 숙제를 안 한 적이 없다. 아마 내가 감독했다면 수도 없이 안 해갔을지도 모르지만 감독은 아내였고, 아내는 아이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신기하게도 숙제나 공부를 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으므로.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숙제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제를 반드시 제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숙제는 했지만 제출은 하지 않아서 벌을 받는 상황. 아이에게 아무리 억울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놀이 금지를 당하면 교실에서 심심하지 않냐고 물어보아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아이를 더 추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숙제를 수거할 차례인데, 그걸 잊어서 모둠원 모두 숙제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말에는 아내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나 보다. 점심시간에 내게 전화가 왔고,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이미 한 차례 꾸중을 들었을 딸에게 운을 띄운 것이었다.
하지만 2절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 말없이 딸아이 주려고 챙겨 온 사탕 한 개를 입에 물려주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조용히 하고, 숙제를 잘 제출하고 규칙을 이해하고 잘 따른다는 것이. 아마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학생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이 된다는 것은 눈치가 빠르고, 모든 일에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아이가 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학생이 된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 딸은 조금은 천천히 학생이 되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아이를 벌써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세대처럼 너무 빨리 학생다운 학생이 되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조금 슬픈 일은 아닐까.
잘 준비를 다하고 딸과 둘이서 발표회를 위한 대본 연습을 했다. 팀의 막내면서 할머니 역할을 맡아온 딸은 할머니 역할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역할을 정말 할머니처럼 잘하고 즐겁게 하고 있었다. 나는 딸아이를 위해 할머니를 제외한 10여 명의 역할을 (목소리를 바꿔서) 소화해야 했지만, 오랜만에 아무 방해 없이 큰아이의 키득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밤이었다.
오늘은 비가 조금 왔고 날씨도 쌀쌀했다. 빨래를 널고 있는데 가을이 지나가는 냄새가 멀리 바다에서부터 스쳐갔다. 꾸중을 듣거나 말거나 딸아이는 모든 걸 곧 잊어버렸고, 동생과 싸우고 장난치다가 결국 다시 꾸중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자리에 누운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학생다운 학생이 될 날이 올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