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번째 일기, 학생이 되어간다는 것.

by 지승유 아빠

2절은 하지 마.


나는 기분이 좋을 때, 노래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리고 노래를 한다는 사실과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종, 혹은 노래에 따라서 자주 음정이 불안정해진다거나 박자를 놓치는 일이 있다. 그리고 내 노래를 전혀 듣지 않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청각이 예민한 것이 분명한 큰아이는 노래가 듣기 싫어질 때마다 제발 2절은 하지 말라고 상당히 높은 톤으로, 실은 귀가 아플 정도로 높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그런 말을 들으면 노래를 바꾼다. 노래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이 말을 듣게 된 것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였다. 아이를 연극 수업에 데려다주려고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내가 '근데.'라고 운을 띄우자마자 아이는 2절을 하지 말아 달라고 아주 날카롭게 말했다.

20180407_112728.jpg

우리 딸은 다른 학생들과 조금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너무 아이를 과잉보호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큰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은 다른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책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할 때는 몇 시간이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거나, 얼마 안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 데 온갖 것에 한눈을 파느라 한 시간 넘게 걸린다거나, 그림을 몇 시간이고 몇 장이고 그리고 방치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집중력이 발휘될 때는 내가 소리를 지를 때까지 어떤 부름에도 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사실 많이 걱정을 했었다. 선생님의 말을 경청하고, 지시를 이행하는 사랑받는 학생의 모습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아이의 수학책을 본 적이 있는데, 분명히 알고 있는 계산이 빈칸으로 남겨져 있었다. 당연히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었고 돌아온 대답을 듣고 아이를 혼낼 수가 없었다.


창 밖에 새 보다가 잊어버렸어.


우리 아이는 한 번도 숙제를 안 한 적이 없다. 아마 내가 감독했다면 수도 없이 안 해갔을지도 모르지만 감독은 아내였고, 아내는 아이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신기하게도 숙제나 공부를 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으므로. 그런데 신기한 것은 숙제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제를 반드시 제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숙제는 했지만 제출은 하지 않아서 벌을 받는 상황. 아이에게 아무리 억울하지 않냐고 물어보고 놀이 금지를 당하면 교실에서 심심하지 않냐고 물어보아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아이를 더 추궁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숙제를 수거할 차례인데, 그걸 잊어서 모둠원 모두 숙제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말에는 아내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나 보다. 점심시간에 내게 전화가 왔고, 결국 나는 조심스럽게 이미 한 차례 꾸중을 들었을 딸에게 운을 띄운 것이었다.

20180721_105819_691.jpg

하지만 2절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 말없이 딸아이 주려고 챙겨 온 사탕 한 개를 입에 물려주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조용히 하고, 숙제를 잘 제출하고 규칙을 이해하고 잘 따른다는 것이. 아마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학생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어쩌면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학생이 된다는 것은 눈치가 빠르고, 모든 일에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아이가 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학생이 된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우리 딸은 조금은 천천히 학생이 되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아이를 벌써 잘못되었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세대처럼 너무 빨리 학생다운 학생이 되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조금 슬픈 일은 아닐까.


잘 준비를 다하고 딸과 둘이서 발표회를 위한 대본 연습을 했다. 팀의 막내면서 할머니 역할을 맡아온 딸은 할머니 역할을 너무도 좋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역할을 정말 할머니처럼 잘하고 즐겁게 하고 있었다. 나는 딸아이를 위해 할머니를 제외한 10여 명의 역할을 (목소리를 바꿔서) 소화해야 했지만, 오랜만에 아무 방해 없이 큰아이의 키득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밤이었다.

20190107_104923.jpg

오늘은 비가 조금 왔고 날씨도 쌀쌀했다. 빨래를 널고 있는데 가을이 지나가는 냄새가 멀리 바다에서부터 스쳐갔다. 꾸중을 듣거나 말거나 딸아이는 모든 걸 곧 잊어버렸고, 동생과 싸우고 장난치다가 결국 다시 꾸중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자리에 누운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학생다운 학생이 될 날이 올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