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번째 일기, 생존 요리.

by 지승유 아빠

외식의 빈도가 점차 줄고 있다.


아내와 결혼했을 때, 우리는 '요리'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둘 다 요리는 전혀 할 줄 몰랐었지만, 신혼이었고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도 잘 없었다. 아침은 항상 대충, 그리고 한 끼는 직장에서 그리고 나면 한 끼는 자연스럽게 외식이나 배달요리를 먹었다. 주말이나 시간이 많을 때, 요리를 하긴 했지만 그건 먹고살기 위한 요리라기보다는 둘이 복작복작하는 이벤트에 해당되는 것이었고, 메뉴도 그랬다. 신혼 무렵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외식할 만한 식당이 차고 넘쳤고, 가격도 적당했다. 요리는 우리 결혼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는.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도전했던 요리는 이유식이었다.

이유식은 오로지 아내의 몫이었는데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하지만 절대 파는 이유식은 먹이지 않겠다는 결심과 패기로 그 시절을 이겨냈고, 아내는 전문 요리사급의 다지기 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이유식에서 밥으로 넘어가자 우리는 점차 맵지 않은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지고 있었다. 밖의 음식은 너무 짜거나 매웠고 맛있게 가 아닌,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그렇게 우리는 하나씩 요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맛이 좋거나 아름다운 요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살아남기 위해 하는 요리였고, 우리는 그렇게 생존하기 위해 요리 비슷한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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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격적으로 요리 전선에 뛰어든 것은 제주도로 이사 온 이후였다. 그전에 나는 요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요리를 사 오는 사람이었으므로. 사람들이 제주도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제주도에 오면 날마다 맛있고 아름다운 요리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맛있고 싱싱하며 아름다운 요리는 도처에 있었고 특히 우리가 자리 잡은 지역에는 더욱 많았다. 하지만 그런 요리들은 무척이나 비쌌고, 매일 고기를 굽고 회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가진 경제적인 능력으로는 정말 가끔 한 번, 외식만 가능할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재료를 사서 일단 굽고, 찌고, 볶기 시작했다. 정말 먹을 수 없는 결과물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그런 날은 치킨으로 대신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나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는데, 아내가 아이들을 돌보거나 낮잠을 재우는 동안에 나는 아무 방해 없이 주방을 독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요리를 아내와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뿌듯함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아이가 빨리 성장하면 외식을 더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결심하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아이 둘이 온 식당을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테이블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한 후, 우리는 외식을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또 우리의 요리 실력은 지금까지 계속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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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은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그렇게 괴롭지는 않다. 식사를 하고 정리를 하는 것도 그렇다. 무엇을 먹을지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장을 보는 것도 사실은 즐겁다. 아내가 없는 마트에서 아내 몰래 아이들과 사탕을 입에 물고 돌아오는 것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정확히 알고 있고, 아이들이 싫어하지만 먹여야 하는 음식도 알고 있다. 한 끼에 제대로 된 음식은 한 가지이지만 접시가 깨끗하게 비워지는 즐거움도 이제는 알고 있다. 생존을 위한 요리에서 이제 정말 끼니다운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어머니들처럼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우리는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아이에게 괜찮은 음식을 먹여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너무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에 많이 괴로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결국 그런 고민들이 쌓이고 쌓여 경험이 되고, 지금의 크지는 않지만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되는 경력 있는 부모로 성장하게 만들어준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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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이들이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내는 집안 정리를 포기했고, 우리는 그냥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가족들은 모두 잠들었고 나는 혼자, 아마 아내가 내일 다시 정리하겠지만, 집안을 대충 정리해놓았다. 그릇을 씻어 정리해놓고 쓰레기를 버리고 오니 다시 한밤중이 되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우리와 놀아주지 않는 날도 오리라. 그런 날이 오면 아마 우리는 한참 여유를 부리며 아이들의 그림자를 쫓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날을 생각하며 오늘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도 날씨가 너무 맑았고 아이들은 집안과 밖에서 더 심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 맞춰 뛰어다녀야 했던 우리는 지쳤지만 아이들은 금방 잠들었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심야영화를 보러 가는 날도 오지 않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혼자 웃어버린 하루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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