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일기, 인기 있는 아빠 되기.

by 지승유 아빠

큰아이는 나를 무서워했었다.


사실은 무서워했다기보다는 낯설어했었지만, 원래 낯선 것은 무섭기 마련이므로 그 둘은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면 좀 덜했는데, 그렇지 않을 때 특히, 엄마가 없을 때는 그 무서워함이 바로 눈물로 바뀌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제주도로 이사 온 이후에는 딸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을 했다. 둘이 놀러 다니고 둘이 밥 먹고, 많이 이야기하려고 노력했고 육아서적을 뒤적거리며 아이의 기분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한참 노력한 다음에는 꼭 확인받으려고 했다. 나에 대한 아이의 생각을, 나의 위치를.

하지만 아이의 반응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꽤 노력을 해도 나는 인기 없는 아빠였다.


글쓰기나 글 읽기가 천천히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서서히 늘어가는 것처럼 아이와의 애정도 그렇게 천천히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임을 그때는 잘 몰랐던 것이다. 첫눈에 반한 연인처럼 아이가 한순간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씻고 나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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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아들이 침대에서 점프해 팔이 부러졌다는 말을 들을 때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딸 아빠였던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5년이 지난 후 우리 집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단, 아이가 착지하는 곳은 맨바닥이 아니었다.


우리 집 소파는 아내가 정말 신경 써서 고른 것 중하나이다. 안락함이 상당해서 소파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몸을 뒤로 기대고 방심하게 되는데, 아들이 노리는 것은 그 순간이다. 소파 꼭대기에서 힘껏 뛰어내린다. 목표의 아빠의 몸. 아이가 더 작을 때는 가장 푹신한 복부를 노리곤 했었는데, 아이가 성장하고 나자 이제 복부와 가슴 모두가 표적이 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끝으로 착지하지 않고 엉덩이나 무릎으로 착지하기 때문에 범위가 넓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찔리는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은 덜하다는 것이다.


소파 아래에서 빨래를 개거나 몸을 숙이고 무엇인가를 할 때도 방심할 수는 없다. 소파에서부터 뛰어내린 아들은 등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목에 매달리기도 하는데, 목에 잘못 매달리면 죽음의 공포를 맛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코나 팔을 물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고, 장난감 칼로 무기를 갖추지 않은 아빠를 후려치는 경우도 다반사. 더욱 문제는 어느 순간에 몸무게가 25kg이 넘는 딸아이도 참전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앞에 매달리면 오분만에 하루의 피로를 맛볼 수 있다.

둘 중 하나라도 다리로 비행기를 태우다가 나머지에게 걸리면 한 순간에 일주일치 복근 운동은 각오해야 한다. 외출할 때도 방심할 수 없다. 둘이 신나서 뛰어가다가도 힘들다고 업어달라고 하기 시작하면 하나는 등에 하나는 팔에 매달고 한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도 아주 자주.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는 기본적으로 근육통과 화를 참는 인내심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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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놀아주고 업어주고 비행기도 태워주고 치킨도 사 오니까 아빠 좋아.


아빠가 좋냐는 물음에 대한 아들의 대답. 아들은 이제 36개월을 막 넘겼다. 그 36개월 동안 나는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큰 아이에 대한 노력을 멈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저 시간을 많이 보냈다. 아이들과 밥을 먹고 씻고, 자고 산책하고. 별다른 일없는 일상을, 울고, 울리고, 웃기고, 웃으며 함께 보냈다. 그러는 동안 제주도에 처음 이사 와서 내가 느꼈던 조급함과 조급함에서 오는 실망감, 그리고 실망감에서 느낀 큰아이와의 거리감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딸아이와 함께 슬램덩크를 봤다. 아이와 함께 만화책을 보며 키득거리면서 예전에 느꼈던 조급함과 나의 미숙함을 반성했다. 사람은 큰 나무와 같아서 오랜 시간 천천히 물들어간다는 지인의 말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와 너무 성급하게 친해지기를 포기하고 그저 함께 생활해내는 동안 아이들과 노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었고, 아이의 수준에 맞게 이야기하는 법을 깨달을 수 있었고, 아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음을 문득 알게 되었다.


인기 있는 아빠란, 인기 있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아빠가 아니라, 함께 생활하고 함께 웃고 함께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란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조금은 인기 있는 아빠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인기 있는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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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귀포의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고, 아이들은 밖에서 신나게 놀았다. 오늘은 치킨 사 오는 아빠가 되었고 모두 배부르게 먹고 다시 함께 어울려 몸싸움을 한참 하다가 더운물로 목욕을 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잠자리에 들어갔는데, 잠시 후에 둘째가 슬그머니 나와서 내 곁에 누웠다. 아이는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곁에서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어느새 깊이 잠들었다. 품에 안긴 아이의 몸이 따뜻해서 한참을 잠들었다가 일어났다.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아이는 오늘도 행복하게 잠들어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나도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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