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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승유 아빠 Oct 17. 2022

잔상 12

어떤 남자의 흔적들

거울 좀 봐. 나 말고 니 얼굴을 말이야. 똥물에 푹 담가진 주제에. 누가 누굴 구하겠다고? 넌 이미 목까지 똥물에 담가져 있는 거야. 내가 모를 것 같아? 니 얼굴 좀 봐. 못 생긴 새끼. 니 얼굴을 잘 보란 말이야. 못생기고 추한 몰골에 대가리에 구멍이 난 주제에 네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못난 새끼. 경찰에 전화라도 할 거야? 뭐라고 할 거야? 니 대가리에 구멍이 난 후부터 거울 속에서 죽은 사람이랑 곧 죽을 사람이랑 산 사람이 보인다고? 미친 새끼. 넌 완전히 돌아버린 거야. 지금 네가 나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정말 너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냐고. 나는 니 대가리 속에서 나온 거야. 못난 새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사나운 눈빛조차도 못 보내는, 장애인이라고 비웃는 학생들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는, 고작 똥물에 빠지는 정도로 쾌락을 느끼는 변태도 못 되는 새끼. 네가 정말 잔상을 보는 것 같아? 정말 은주가 위기에 빠진 것 같아? 이게 다 니 대가리 속에서 펼쳐지는 일 같지 않아? 나도, 그도, 은주도, 잘 나빠진 니 잔상도 나 니 대가리 속에서 나온 거야. 넌 드디어 미쳐버린 거지. 사실 미치지 않은 게 기적 아냐? 넌 에미도 아비도 없는, 그야말로 혼자 남은 존재잖아. 무서워서 사람들에게 말도 못 건네고, 관계 맺는 게 두려워서 동료 결혼식 한 번 가 본 적 없는 겁쟁이 주제에. 봐, 나는 너를 잘 알고 있어. 아직도 내가 '악의'같아? 내가 진짜 같아? 네가 진짜 같아? 대가리를 손으로 싸매고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너를 보라고, 니 팔이나 다리를 보라고, 니 못생긴 면상을 바라보란 말이야. 미친 새끼야. 니 미쳐버린 면상을 좀 보라고. 


그래서 나는 나를 응시했다.


어쩌면 나는 미쳤는지 몰라. 그런 생각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했거든. 내가 아침마다 거울로 그 시절 그대로의 은주의 모습을 볼 때, 가끔 부모님을 볼 때, 혹은 길을 가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내가 미쳐버린 거라고 생각했어. 토요일 아침에 그런 생각을 시작하면 일요일 저녁쯤에는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마음을 온통 지배하지. 그래서 가끔은 넥타이로 매듭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태풍이 오기 전에는 바다가 가까운 부두에 가볼 생각도 했어.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네가 ‘면상’이라고 부르는 이 얼굴을 볼 때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 거울 속에 부모님은 한 번도 나를 탓하는 표정을 하지 않았거든. 내가 잔상 속에서 보는 사람들 모두 그랬어. 처음에, 잔상을 보았을 때, 나는 너무 두려웠어. 거울 너머로 떠오르는 잔상들이 유령처럼 두렵기도 했고, 내가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뼈를 열고 수술을 한 순간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하지만 잔상을 본다는 것은 사람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돼. 사람들은 생각보다 선량하거든,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거나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잔상을 통해 자세히 보면 미워할 수 없게 돼. 잔상들은 무표정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대게 선함의 틀이 숨어 있거든. 그들은 대게 피곤하거나 지쳐있지만 그 이면에는 선량함의 흔적이 묻혀 있어. 그건 문신처럼 얼굴을 온통 점령하고 결코 지워지지 않게 자리 잡고 있지.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은주도 마찬가지였어. 나는 예전에 은주가 몹시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하루하루 그녀를 바라볼수록 그녀의 내면에 있는 무엇인가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선량함이나 인간다움을 느낄 수는 없었거든. 하지만 지금은 달라, 내가 이 꼴을 하고도 죽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선량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야. 만약 내가 미쳐버린 거라면, 나는 그 상태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지. 그리고 만약 내가 미치지 않은 거라면, 내가 지금 느끼는 너의 불안함과 조급함이 진짜라면 네 앞에 서 볼 거야. 너를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 보다시피 내 몸은 이런 상태니까. 하지만 적어도 죽기라도 해 볼 거야. 은주 대신. 그때, 나는 은주의 진짜 모습을 몰랐었고, 사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너를 막아볼 거야. 


그의 악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해가 막 저물 무렵 입을 열었다. 


와봐. 같이 죽여줄 테니. 갈가리 찢어서 바다에 뿌려줄 테니.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옷을 입고, 물을 마시고, 현관을 나서는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신발장에서 예전에 쓰던 지팡이를 찾아 쥐고, 주머니에는 가지고 있는 칼 중, 가장 날카로운 칼을 넣었다. 찔리지 않도록 수건에 싸고,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만약 내가 정말 미친것이라면 그래서 은주도 그도, 그의 악의도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오늘 몸숨을 끊을 예정이었다. 만약 피부를 저리게 할 정도의 악의가 내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다면 나는 언제든 악의로 돌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고, 다른 사람의 모습이 거울에 나타나는 환상을 볼 정도라면 그리고 그게 정말이라고 생각할 정도라면 나는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신발장 거울 너머로 나를 직시하고 있는 그 악의는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였다. 그 악의는 은주를 향해있었는데, 지금은 나와 은주 사이의 어디를 향하고 있었다. 악의는 나를 직시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거울 너머에 서 있었고, 은주는 오늘도 몹시 지친 얼굴로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보아도 그는 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악의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빗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작은 마을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나는 비옷을 입고, 절뚝거리며 지팡이에 의지해, 그녀에게로 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미쳤을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머리에는 여전히 열감이 느껴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정신은 또렷해지고 있었다. 비옷에 빗방울이 세차게 떨어지고, 그 소리가 나를 점차 깨우고 있었다. 

나는 전날 집에 돌아온 먼 길로 은주의 집을 향했다. 시간은 아홉 시가 훨씬 넘어 있었고,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팡이를 짚는 소리도, 발을 끄는 소리도, 이따금 내가 내는 고통스러운 신음도 빗소리와 함께 멀리 섬 아래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악의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주의 집으로 다가갔다. 은주의 집 지붕 위로 악의가 먹구름처럼 덮여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 칼날은 은주의 집을 관통하지 않고 있었다. 그 칼날은 비스듬하게 창을 향하고 있었는데, 내가 집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도 악의는 나를 느끼지 못했다. 비는 나를 가려주었고, 나는 최대한 조심히 창 가까이 다가갔다. 창은 닫혀 있었지만, 잠겨있지는 않았다. 창 너머로 그가 분명 은주에게 닿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만족한 표정으로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로, 은주에게 닿아 있었다. 나는 칼을 꺼내 손에 움켜쥐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119에 화재 신고를 하고, 창으로 다가갔다. 악의의 칼날은 창을 관통해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창을 열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안으로 던졌다. 악의가 나를 발견하고 칼날을 돌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아픈 다리도 아픈 팔도, 아픈 머리도 그 순간 아프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처럼 창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처음으로 마주 볼 수 있었다. 그의 악의와도. 거울을 통해서가 아닌, 그것은 정말 오랜만에 일어난 타인과의 만남이었다. 온전히 서로를 응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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