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큰아이의 썩은 이가 드러났다.
아내는 아이들의 이가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아주 아기 때부터 아이들은 하루 세 번 양치질을 해야 했다. 심지어는 먼 길을 놀러 갔다가 잠이 든 아이의 입을 벌리고 이를 닦는 모습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잠든 아이가 아내의 신속한 손놀림에 깨어나도 아내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할 뿐,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이 들어도, 아무리 시간이 없고 바빠도,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박물관에서도, 심지어는 비행기나 차 안에서라도 치실 사용은 물론이고 전동칫솔을 사용하고 치약을 바꿔하며 유치의 순수함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인지 일곱 살까지 그리고 둘째는 현재까지 '충치 없음'의 훈장을 영유아 검진 때마다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그런 것처럼 일은 아무 예고 없이 찾아왔다. 평화로운 저녁시간, 아내는 큰아이의 어금니에 아주 작은, 이쑤시개가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발견했고, 다음날 그 구멍에 음식물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치실이라는 것도 없었고, 어떻게 이를 닦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치약도 그냥 어른들과 같은 것으로 했고, 칫솔도 어른들 것을 그냥 사용했는데 좌우로 치카치카 이를 닦다가 거품이 신나게 나면 물로 두세 번 가글가글 하는 걸로 양치질을 끝내곤 했다.
하루 세 번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었지만 아침에는 대충대충, 점심에 학교에서 양치하는 남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저녁에도 양치를 잊고 잠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부모님들도 양치해라 하고는 자주 확인하지 않았고, 주변 아이들 모두 충치 치료를 받으니 아플 때까지 이를 특별히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치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찾아간 치과는 그때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이미 이를 네 개 이상 치료했고, 지금은 여덟 개가 넘는 일명 '왕관'같은 이를 지니고 있다. 아내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내는 아이들이 치과에 가서 아플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자신의 이가 아파지는 표정을 짓곤 했었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이를 항상 꼼꼼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가 썩어서 떨어져 나가고 그 사이에 음식물이 끼어 있음을 발견했으니 아내의 충격은 상당한 정도를 가볍게 넘어선 것이었다.
아내는 전격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치과진료를 위한 사전 준비를 시작했다. 치과 몇 군데의 진료를 예약했다.
하지만 아내는 치과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기계적인 응답과 아이에게 의사가 하는 위협 비슷한 진료 권유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그날 연락했던 모든 치과에서 정말 강력하게 권하던 신경치료는 나 역시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치과의 말을 듣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치과진료를, 그리고 잘못된 진료를 많이 받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큰 결심 끝에 아내는 서울에서 다니던 치과에 전화를 했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내고 드디어 응답을 받았다.
아내는 학교에서 아이를 질병 조퇴로 데려왔다.
그리고 13시 35분, 김포공항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총알같이 공항으로 달려갔다. 큰아이 특유의 여유와 엉뚱한 집중력이 아내의 속도전을 방해했지만, 오늘만은 그 여유를 받아줄 수 없었다.
실제 태풍이 서귀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둘은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도착했고, 아마도 잠시 '택시 승차'를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고 판단, 지하철역으로 아이를 몰았다. 급행열차를 타고 병원에서 가까운 역에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치과로 이동했다. 그리고 드디어 큰아이는 첫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큰아이는 신경치료를 받지 않았다. 병원 원장님은 아이와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으며 해당 부위를 잘 제거해주셨고, 주변 이도 다시 썩지 않도록 조치해주셨다. 아이는 마취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엄마와 둘이 하루 동안 외출할 수도 있었으며, 병원 사람들은 친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과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었다. 치료를 마친 원장님은 아내에게 진료 부위와 진료 정도, 그리고 진료에 대한 이유와 혹시 일어날 수도 있는 사태에 대한 해결방안을 잘 이야기해주셨고, 아이뿐만 아니라 아내도 안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칫솔 세트와 음악 CD를 선물로 받기까지 하고 치과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지불한 진료비가 너무도 적게 느껴질 정도로 많은 배려와 친절함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자주 사람들의 고통이나 걱정을 객관화시키고 한다. 그 정도는 누구나 힘든 일, 그 정도는 누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일처럼 말이다. 우리는 은근히 '다른 사람도 다 그렇다, 다 힘들다'는 말에 상처를 입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든 본인의 일이 되었을 때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침착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공감해주고 그 사람이 공감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그 치과 원장님의 실력이나 저렴한 진료비에 대해 예찬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어쩌면 환자를 상대해야 하는 의사의 본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하지만 아내의 당황함에 공감해주고 시간을 내서 전화해주고, 엄마의 마음이 진정되도록 만들어 준 그의 진심을 예찬하고 싶은 것이다. 부모에게 아이의 첫 충치는 본인의 충치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오고 그런 부모의 충격은 부모가 아닌 사람들이 알기에는 너무 감정적이다. 그러므로 그 충격을 알아주고 이해하고 배려해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쩌면 원장님의 그런 진심이 아내를 태풍이 오는 전날, 당일로 서울에 진료를 받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게 하는 용기를 불러일으킨 것이리라. 어찌 생각면 원장님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우리 가족에게 해 준 것은 아닐까.
아내가 돌아오는 비행기는 한 시간이나 지연되었고 다시 이십 분 가까이 연착되어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넘게 늦어서 도착했다. 진료를 마치자 아내는 안도감에 두통과 위통을 일으켰고, 큰아이는 비행기에서 잠들어 나는 딸을 차에서부터 업고 집에 들어와야 했다. 하지만 큰아이의 당일 서울 나들이 소감은 '그 집 잘하네'였고 아마도 치과라는 공간을 친절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별다른 소감은 없었고 머리는 몹시 아팠지만 마음은 편안하다고 했다.
오늘은 바람이 몹시 많이 불었고 비는 생각보다 많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태풍은 오고 있었고 비행기는 지연되었다. 큰아이는 억지로 양치를 하고 정신없이 잠들었고, 둘째는 엄마가 없는 저녁 시간을 아빠와 함께 보내고 안타깝게도 엄마가 오기 직전에 아빠에게 안겨서 잠들었다.
태풍은 오고 모두 피곤한 하루였지만 마음은 편안한 태풍전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