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일기, 떠나기 쉽지 않은

by 지승유 아빠

한 동네에서 30여 년을 살았다.


아마 농경사회였다면 30년을 한 동네에서 살았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서울에 살았고, 한창 여러 측면에서 발전과 고난을 겪던 80년대와 90년대를 온통 서울에서 보냈다.

30여 년 동안 이사는 열 번도 넘게 다녔지만 항상 이사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고, 멀리 이사 간 적도 별로 없었다. 열 번도 넘게 이삿짐을 싸는 동안 우리의 짐 싸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리어카를 돕는 솜씨도 좋아졌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할 때까지도 멀리로 벗어나지 못했다. 집을 떠나 멀리 산 적도 없었다. 아마 군 생활 2년 2개월이 집을 떠나 있었던 가장 오랜 기간이 아니었을까.

어디 멀리 여행을 간 적도 없었다. 여름휴가는 항상 강원도 홍천이었고, 이마저도 나와 동생이 성인이 된 다음에는 잘 가지 않았다. 결혼 전까지 비행기는 딱 두 번, 제주도행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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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먼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누가 못하게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환경이 그랬고,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했다. 모두 가는 그 흔한 배낭여행도 한 번 간 적이 없이 그냥 늘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았다. 주위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그랬다. 멀리 가 본 적이 없었고 멀리 가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해외에 가서 살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면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멀리 가는 건 단순히 멀리 가는 것만이 아닌 것을.


사실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단칸방, 반지하, 반지하, 옥탑. 딱히 생활이 어렵거나 억울하거나 불쌍하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주변의 친구들 모두 그렇게 살고 있었고, 비슷한 생활환경 속에서 저마다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으므로. 어머니는 항상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림질도 해서 입혀 보냈다. 비싼 운동화는 사지 못했지만 먹을 것은 항상 부족하지 않게 챙겨 주셨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분 다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셨다.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어서인지 도시를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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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두려웠으리라. 많은 책과 이야기와 방송에서 사람들은 낯선 곳에서의 설렘을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선 곳에서 먼저 두려움을 느낀다. 평범한 사람들은 낯선 것에서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낯선 곳에서 밤을 보내는 것을 두려워하며 낯선 곳에서 홀로 버려질까 두려워한다.


늦은 저녁, 아내는 다큐멘터리에 집중하고 있다. 한 커플의 이야기. 함께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아내는 자꾸 불러 올린다. 독서에 집중하고 있었던 나의 의식은 아내의 부름에 수면 위로 부상한다. 비현실적인 책의 내용에서 현실의 다큐멘터리로 시선이 옮겨진다.

아마 예전에 나였다면 아내가 이야기하는 일 년 넘게 승합차를 개조해서 유럽을 돌아다닌다는 가난한 커플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닭백숙을 한 번 끓여 고기를 먹고, 국수를 넣어 다시 먹고, 죽을 끓여 세 번에 먹는다는 그들의 빈곤한 말을 비웃었을 수도 있었으리라.

만약 아직 내가 물리적 터전에 집착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그들이 가진 무모함을, 그들이 가진 삶의 어려움을 비웃고, 그들의 철없음을 비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소개되고 아내가 그들의 삶을 내 앞에서 ,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삶의 터전이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아내가 어렴풋하게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내는 여러 면에서 삶의 지혜를 말 그대로 체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혼여행 이후로 여행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아내가 보여주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가 무모해 보이는 제주도행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물리적 터전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을 것이므로.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편협한 인생관을 강요할 수도 있었으리라.

서로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빈곤하게 들리지 않고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조금은 어른으로 성장했기 때문은 아닐까.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런 두려움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얼마만큼 성장하는 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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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는 대체로 맑았으나 낮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접착제 냄새를 빼려고 밖에 널어놓은 모기장이 다 젖었고 곧 다시 말랐다. 모기장을 침실에 설치하고 아이들과 자리에 누웠는데 모기장에서 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새로운 태풍은 적지 않은 바람만 남기고 일본으로 가버렸고, 아내는 바람 소리에 맞춰, 우리의 오래전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 나는 아내의 목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 것이고, 아내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 것이다.


큰아이는 오랜만에 세탁한 애착 이불을 안고 잠들었다. 둘째는 새로 산 토성 모형이 야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침까지 꼭 안고 잠들겠다고 결심했지만, 잠들자 토성 모형은 어디론가 굴러가 버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깊이 잠들었고, 어디 먼 곳으로 즐겁게 떠나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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