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일기, 김경호와 우리.

by 지승유 아빠

인도식 카레를 만들어 저녁을 먹고 잠깐 졸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안에 온통 가수 김경호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두 아이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김경호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춤을 추는 것인지 의미 없는 몸동작을 하는 것인지 집안은 온통 광란의 물결이었다. 과연 김경호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느냐의 문제는 둘째로 하고 왜 갑자기, 도대체 김경호의 노래를 합창하고 있는지 잠에서 미처 다 깨어나지 못한 채, 나는 망연자실, 두 아이의 춤과 아내의 열창을 지켜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김경호는 우리 가족과 인연이 깊다. 아니, 사실 아내와 그렇다.

내가 결혼 전부터 습관처럼 흘러간 노래나 옛 가수들을 좋아했던 것과는 달리 결혼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김경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첫 유산 때 이후 어느 날부터 집안에는 김경호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김경호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위로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노래 가사 어떤 부분에서 위로를 받고 있는지는 아직도 도통 모르겠지만, 그렇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일 김경호의 노래를 듣고 있었고, 심지어 아내와의 강릉 여행에서는 그의 노래만 왕복 다섯 시간을 넘게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김경호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고, 그의 노래 가사가 머릿속 깊이 인지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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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유치한 질투심 같은 것도 있었지만 딱히 좋아해서는 안 되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 한 번씩 유치한 핑계를 대며 김경호에 대한 아내의 애정을 깎아내리기도 했고, 연말에 혼자 김경호 콘서트에 간 아내를 데리러 간 날은 그에게 준다고 가져간 핸드크림을 주지 못하게 방해하고 갈취하기도 했다.

딱 한 번, 공연에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맨 앞자리의 여성분들과 아내가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것을 보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임신 이후에도 김경호에 대한 아내의 애정은 쉽게 식지 않았는데, 만삭의 몸으로 김경호의 생일 기념 콘서트에 간다는 걸 말려야 할 정도였다. 그때는 아내의 그런 모습이 귀엽기도 하면서 이해가 안 되기도 했는데, 아이를 출산하고 난 후 아내는 김경호의 노래를 자주 듣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돌보는 동안 자신을 위해 노래 한 곡도 여유 있게 듣지 못할 줄, 아내도 나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밤낮으로 그의 노래를 들을 때의 질투심은 막상 아내가 아이를 위해서 클래식을 고르고, 동요를 찾아 재생하는 모습을 통해 안쓰러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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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둘째를 낳고 아내는 가끔 김경호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성장하고 있다. 아주 조금, 인정하기는 싫지만 가족의 공식 가수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은 위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이 모두 즐겁기 위해서 그의 노래를 함께 듣고 노래한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어떤 일까지를 아이와 함께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머리로 아무리 생각하고 육아 관련 서적을 읽어도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좋지 않다고 하는 등 의견도 서로 달랐고, 나름 의견에 타당성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 둘을 낳고 지금까지 키워보니 가족의 모든 일이 '아이들을 위한 것'만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 그리고 때로는 나를 위한 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의 정서에 좋은 음악을 듣거나 아이들의 건강한 몸을 위한 율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안에 울려 퍼지는 김경호의 이별 노래를 모든 가족이 합창하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 사람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는 일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좀 진부한 말이기는 하지만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다. 김경호의 목소리가 배경음악인 동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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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은 하루였다. 휴식과 가족행사를 주셨으니까.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하늘은 높았다. 아이들이 원래 자야 하는 시간은 이미 30분도 넘게 지났지만, 다들 기분이 좋아서 잘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저녁 식사 후에 남아 있는 와인을 잔에 따르며 가끔은 일찍 자고 일어나는 일이 꼭 중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딸아이는 푹 잠들 것이고, 아마도 태어나서 세 번째 한글날을 맞이한 아들도 재우기는 어렵겠지만 푹 잠들 것이다. 아마도 긴 머리카락의 김경호 아저씨가 꿈에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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