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일기, 아내의 행복과 육아.

by 지승유 아빠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한낮에 아이들과 놀았던 피로는 풀렸지만, 다시 몇 시에 잠들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잠이 안 올 때, 어떻게 하냐는 큰아이의 물음에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생각을 하면 된다고 답했는데, 답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잠들어 버렸다. 큰아이가 잠이 안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없었으면 좋겠다. 아침마다 반질반질한 얼굴로 말끔하게 일어나는 큰아이의 얼굴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면, 낮잠을 한바탕 자고 난 둘째는 오늘도 침대를 온통 뒹굴고 다니다가 늦게 잠들었다. 둘째를 재우고 거실로 나가려고 했는데 아이와 거의 동시에 잠든 듯하다.

가만히 누워서 큰아이에게 일러준 대로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생각을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거실에서는 두런두런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오고, 잠에 대한 걱정은 일단 미루기로 하고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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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긴 목욕을 마치고 말끔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리 둘은 겨우 텔레비전 앞에 앉았고, 정말 오랜만에 우리의 몸개그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개그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아내는 아주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잠든 아내의 곁에 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가늘게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아내는 정말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아기가 너무 예뻐 보였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기들도 너무 예뻐 보여서 늘 듣는 서양의 이야기처럼 예쁜 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천사처럼 웃고 있는 아기를 다정하게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고 착각했다. 혹은 옛 어른들 말처럼 아이들은 저절로 성장하고, 자신이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나며, 잘 먹이고 잘 재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처럼 정말 쉬운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육아는 중간 강도의 노동을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며 아이와의 다정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피로를 극복하고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특히 잘 먹이고 잘 재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누구도,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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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내는 잠자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컨디션이 좋을 때도 하루 8시간은 기본이었고, 몸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하루 종일 잘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잠자는 모습 또한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우는 일에는 큰 용기가 필요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런 아내의 행복은 사라지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아기는 침대에서 혼자 행복해 웃지 않는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대게는 그렇지 않다. 배가 고프거나 무엇인가를 쌌을 수도 있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소리나 그림자에 놀랐을 수도 있다. 첫아이의 경우에는 아이가 왜 우는 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밤중 수유는 더욱 괴롭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있다.

큰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보통 집에 자정이 다 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대게는 아이와 아내는 자고 있었고, 잠들어 있지 않다면 급히 씻고 아이를 받아 안아야 했다. 아내는 그때까지 제대로 식사를 못하고 있었기에 아내가 밥을 먹고 씻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했다.

아이가 잠들어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아이는 두세 시간 간격으로 모유수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잠이 들어도 부모는 푹 잘 수 없다. 아이가 울면 기저귀를 확인하고 아내를 깨워야 한다. 아내가 수유를 마치고 다시 잠들면 아이를 재우고 자리에 눕는다. 이렇게 두 시간 혹은 세 시간씩 쪼개서 잠을 자는 것은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몹시 힘든 일이었다. 수유가 원활했던 둘째 때는 덜 괴로웠다. 말 그대로 수유만 하면 다시 잠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큰아이 때는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고, 수유자세를 어설펐으며, 아이가 왜 우는지 알 수도 없었다. 잘 먹일 줄도, 재울 줄도, 아이의 언어를 이해할 줄도 몰랐으니 큰아이는 나름대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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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홀가분했을까를. 아이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쉽게 여행을 떠날 수 있었을까를. 아이들이 없는 주말은 얼마나 한가하며 브런치라는 것을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를.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세월을 정면으로 맞이한 얼굴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곧 피식 웃고 현실로 돌아와 버린다. 아이 둘이 진지한 얼굴로 역할놀이를 하고 있을 때, 잠이 덜 깬 얼굴로 안길 때, 간식을 원하는 얼굴로 애교를 부릴 때,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아이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미소 지을 때, 품에 꼭 안긴 아이들의 체온을 느낄 때, 우리는 아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곧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를 이야기하면서도 죄책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능숙한 부모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는 맑고 바람은 차가웠다.

오전에 배탈이 났던, 작은아이는 카시트에다 아침에 먹은 것을 모두 토했고, 우리는 누더기가 될 때까지 쓴 유아용 카시트를 마침내 버리고 주니어 카시트를 장착해야 했다. 큰아이는 낮잠을 자다가 소변을 조금 실수했고, 나는 반팔을 입고 덜덜 떨며 아이들을 데리고 양 떼 목장에 동물들 먹이를 주러 다녀와야 했다.

잠자리에서 아이들은 다투다가 혼나고 투덜거리다가 곧 천사처럼 잠들었다.


시간은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나를 빼고 나머지 가족들은 평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무척이나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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