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작년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렇다. 나의 아버지는 50년대 생 '꼰대'이다. 그것도 아주 옛날 사고방식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시는 분이다.
아버지는 베이비 부머 세대에 태어나, 흙수저로 자랐다. 아버지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께서는 매우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가정/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셨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하며, 조혼하여 7남매를 키워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때문에 아버지 역시 그러한 부모 환경의 장남으로 태어나, 요즘 같은 풍요롭고 온화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못하셨다. 그러한 환경에서 본인이 가정에서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환경에서 배운 대로 지금까지 살아오신 분이다. 그러니 나에게도 따뜻한 사랑으로 가정교육과 훈육을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어느 정도의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는 그냥 동수저 정도로 봐도 될 것 같다.
작년 가을 아버지와의 다툼이 생긴 것은 사고방식의 차이이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서였다.
사실 난 아버지가 시키는 일에 대해 비효율적이고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 하고자 하는 의사를 내 비쳤고 아버지는 거부했다. 당시 난 아버지의 일꾼으로 방문하지 않았다. 목적도 일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기에 반바지에 슬리퍼였다. 그날 아들과 나는 풀숲에서 약 1시간 넘게 일을 하였다. 자식과 손자가 일을 도와주는데 어느 정도 성의를 보였고, 일 하는데 불편함이 보였다면 중단해야 하는 것이 난 맞다고 봤다.
그러나, 계속하시겠다고 한다. 난 싫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화내는 것에 대해 대들었고 그만하겠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는 '앞으로 오지 마라'라는 당신만의 무기로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 버리셨다. 이게 사건의 전말이다.
언젠가부터 난 강제 같은 것에 매우 거부감이 생겼다. 부모님이라도 시키면 해 무슨 말이 많아?
이런 건 이제 싫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당신이 키워 준 자식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난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보고 자란 것에 대한 습성, 습관 등이 잘못된 훈육 환경에서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 잘못된 나의 훈육방식을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유는
그 잘못된 관습 과거의 잘못된 가정교육 등에서 나오는 자녀 훈육방식(체벌, 폭언, 비상식적 논리, 이해 없는 권위적인 훈육방식,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과거 부모들의 잘못된 인식 등)을 내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와 형은 매를 맞는 것에 익숙하고 무서워했다, 때문에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사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물론 미성년자였던 나와 형은 아버지의 체벌과 폭언 등을 무서워한 거 같다. 지금과 같이 아버지에게
나의 의사를 표현하고 같이 대립각을 세울 수 있을 수 없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러한 삶의 환경은 나를 점점 잘못된 습성에 젖어들게 하였고 나도 결혼하기 전까지 그러한 모습으로 성장해 왔던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아버지에게 아버지처럼 되는 모습으로 잘 보이려고 삶을 살아온 거 같다.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보다,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아갔던 거 같다.
때문에 난 지금이라도 단호히 아버지가 충족하는 그 무언가에 희생양이 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소중하니까. 아버지는 지금도 과거의 사고에 사로잡혀서 나오지 못하고 계신다.
난 아버지 인생도 소중하기에 존중한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의 훈육 인생에서 빠지려고 한다.
이제 내 인생의 2막에서는 좀 더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삶을 추구하고 싶다.
아버지는 나에게 내 아이들 앞에서 "앞으로 오지 마라"라고 하셨다.
내 아들이 할아버지 눈치를 봤다. 손자에게 까지 그런 모습을 꼭 보이셔야 했나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난 그 말이 두렵지 않았다. 단지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아버지 같은 분하고 평생을 살아왔는지, 최고의 참을성과 인내심 소유자이시다.
불효자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난 아버지의 소유물이나, 아버지를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니까.
"아버지 제 마음이 안 바뀔 거 같네요. 그냥 싹수없는 자식이라고 낙인찍어 주시고, 포기한 자식으로 생각해주시는 게 편할 거 같네요. 저는 제 자식이 매우 소중해서, 손주까지 아버지의 그늘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나 자신이 홀로 무례한 생각을 하며 지난 추석을 홀로 가족과 보냈다
두 아이들과 단출하게...
하지만 아버지는 이제 약해지셨다 건강도... 생각도...
아버지와의 절교는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엄마가 설날 연락해서 못 이기는 척 부모님 댁에 간 후 아버지와 2차전을 할 뻔했지만
서운했다는 아버지의 표현....
결국 어쨌든 다시 서로가 한 발씩 양보하고 화해도 했다.
약해진 아버지 모습에 뭔가 모를 양보심 같은 게 생긴 것이다.
난 지금의 나이가 된 후 내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
권위적이었던 내가 후회스럽다. 애들을 이기려고 했었다.
요즘 들어 더욱더 아이들의 자존감 형성과 인격존중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그 쉬운걸 왜 못했을까?
내가 내 아이들 나이에 아버지에게 못한 말들도 아들과 딸은 나에게 표현한다.
"아빠 아빠방 좀 청소해 ~", "아빠 나 00랑 썸 타다가 사귀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은 혈연관계이며 가족이다. 내 자식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솔직하고 진솔하게 설명하면
해결될 것들을 여전히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권위적으로 훈육한다.
우리나라가 유교문화라는 그늘 아래 여전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를 많이 볼 수 있긴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을 보면, 아쉽고 촌스럽다. 그냥 올드하다는 생각뿐 본받고 싶지 않다.
(아버지는 지금도 향교문화, 종친회 제사 등 유교문화에 심취해 계신다. 뭐 어쩔 수 있나? )
반항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 자녀들이 하는 모습이다.
반항하지 않게 아이들과 대화하는 방법, 요즘은 그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거 같다.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보다 요즘이 더 반항이 없어진 거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과거에 많이 권위적이고 아버지의 모습을 닮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생각하고 조금 양보하면, 아이들과 부딪칠 일이 줄어드는데.....
"아빠가 시킨 신발정리 꼭 해놔!" 보다는
"아빠가 신발정리를 좀 부탁하면 안 될까? 네가 해주면 정말 고맙겠어"라는 표현이 처음에는 닭살 돋지만
자녀들에게 하면 얼마나 아름답고 평온한 대화가 되는지 모른다. 듣는 아이들도 아빠와 소통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아이가 거절해도 기분이 안 나쁘다. 언젠가부터 난 아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별로 잘해준 것도 없는데 이만큼 잘 커준 거에 대한 감사의 표현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항상 표현해보자.
얼마 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 '칼빈소총 2인조 강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과거 우리 부모세대와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다.
'동반자살'이라는 말도 우리나라와 일본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을 방송 보고 알게 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족동반자살'은 '가족 살인 후 자살'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방송 의견에도 동의한다.
이것을 지금 생각하면 시대의 착오이기에 방송에서 그렇게 표현한 그들을 원망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도 뉴스를 보면 부모로서 자격이 없는 자들이 자식들을 함부로 학대하는 내용의 기사가 나올 때가 있다. 도대체 얼마나 아이들이 더 죽어나가야 그런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
부모의 존재는 자식을 낳아준 책임보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를 지니게 하는 인생 조력자의 역할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부모로부터 배운 사고를 변화하고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유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 세대에서 과거의 권위와 자식들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저급한 사고를 하루빨리 없어지길 바랄 뿐이다.
혹시 회초리를 들고 버럭화를 내는 당신이라면, 아마추어 부모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