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도 설계 진행 중, 순항이면 되었다

by 슬슬

조금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건축허가가 나고 집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떠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집이 지어지는 현장을 자주 들여다보고 싶어서 아껴둔 연가를 여행을 위해 며칠 내놓았다. 덕분에 새벽 비행기로 도착해 집에 가족들을 내려주고 바로 출근길에 오르는, 이십 대까지만 가능하다 여긴 무자비한 일정을 쳐내야 했다. 아무렴, 즐거웠으면 된 거지.

6월 초, 더딘 진행에 내가 답답할 거라 여기셨는지 건축사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다. 중목구조에 맞춰 도면의 치수를 수정하고 외벽과 지붕의 구성과 재료를 챙기는 중이라며 단면도와 평면도를 함께 보내주셨다. 동글동글 포인트가 될 만한 환기창 유블로(UBLO)를 포기하고 나서 창문의 크기와 위치를 많이 고민하던 참이라 창호 크기와 배치를 확인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새로 받은 도면을 가지고 육퇴 후 남편과 마주했다. 줄자와 마스킹테이프를 동원해 거실 벽에 색색의 창문을 그려 가며 열정적인 회의를 했다.


자주 등장하는 나의 다이어리

얼마 전 견적을 받아본 가전과 넣고 싶은 가구의 크기를 찾아가며 공간마다 배치해 보았다. 안방의 크기를 더도 말고 딱 패밀리침대 사이즈만큼 줄이니 작아서 고민이었던 현관 화장실이 조금 커질 것 같은데 수정이 가능한지 체크. 현관에 옛날 시골집 느낌과 레트로한 홍콩 다방 느낌을 담고 싶어서 3연동 중문을 양개형으로 수정할 수 있는지 체크. 주방의 천고와 싱크대 구성, 다락의 낮은 벽 수납장의 깊이, 욕조와 좌식 공간의 배치, 세탁실 선반 형태… 설계 막바지라 생각했는데 수정할 것이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계단실 형태와 난간, 담장과 마당 구성 등은 거의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정도라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싶었다.


남편과의 긴 회의 끝에 나온 수정사항을 가지고 건축사님을 만났다. 여행을 앞두고 빠듯한 일정이라 퇴근 후 저녁 7시가 다 된 늦은 시간 미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아이도 함께 했다. 봄에 빈 집터에서 소소한 텃밭놀이를 했더니 장날마다 파는 나무 묘목을 보면서 "엄마~ 우리 이사 가면 마당에 저런 나무 심을까? 다다는 파리지옥을 심을게. 엄마는 뭐 키울 거야?"라며 온 기대를 마당에 쏟아붓는 아이다. 피곤할까 봐 걱정했지만 사무실에 살고 있는 거북이도 구경하며 긴 미팅을 잘 버텨주었다.


미팅은 순조로웠다. 중목구조의 기둥 사이즈가 줄어들어서 내부 공간이 조금이나마 넓어졌다. 단열과 누수 방지 등 집에 꼭 필요한 기능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지붕과 벽체의 자재가 어떻게 구성되는 지도 알려주셨다. 전문가의 영역인 만큼 어렵고 복잡해 보였는데 하나하나 듣고 나니 이해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우리의 수정 리스트도 대부분 반영이 되었다. 특히 현관의 분위기가 실제로 구현되면 정말이지 너무 귀여운 우리 집의 포인트가 될 것 같아 기대가 커졌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설계 미팅이 끝났다. 이후 도면을 수정하여 시공사에 자료 검토를 요청하고, 7월 말 건축허가를 목표로 설계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설계 미팅을 다녀온 후 집에 대한 다다의 요구사항이 업그레이드되었다. 꽃나무와 파리지옥 정도로 마당에 머물렀던 다다의 기대는 이제 모든 공간에 닿기 시작했다. 치카치카를 하고 나와서는 "엄마~ 건축사님한테 화장실에 올라가서 치카치카하는 계단을 만들어달라고 할까?" 한다. 또 어느 날은 "화장실에 창문을 만들어 달라고 할까?" 해서 이미 만들었다고 하니 좋아하기도 했다. 뜬금없이 "우리 집에 세탁기가 두 개면 좋겠어!"하고, "엄마, 우리 집 안에 계단이 있어?"묻기도 한다. "엄마 방은 왜 없어? 다다 방에 자게 해 줄까?" 선심을 쓰기까지 한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설계는 계속 진행 중이다. 긴 장마가 온다고 했다가 쨍쨍 맑은 날이 이어지고, 이 틈을 타 공사의 속도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생각을 다잡는다. 천천히 가는 만큼 꼼꼼히 보면 되는 거라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담았는지, 비울 것은 비워냈는지 다시 생각해 보고, 안전하고 단단한 집을 만들면 된다고. 6월에도 설계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순항이라면 그걸로 되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9화집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