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나서 더우니 집에 있겠다는 김씨부녀를 두고 콩이와 둘이서 산책을 나섰다. 면에 속하는 우리 아파트에서 다리를 하나 건너 나오면 바로 읍이 된다. 도시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면에서 읍으로 넘어가면 신기하게도 공기 속 습도와 바람의 온도가 바뀐다. 풍경도 다르다. 집에서 읍내를 향해 내려가는 길의 풍경은 아파트와 오밀조밀 낮은 건물들이지만, 다시 집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가까이 산, 나무, 멀리 또 산이다. 마치 수묵으로 그려진 산수화처럼 농도가 다른 산봉우리들이 저 멀리까지 겹겹이다. 맑은 날은 저 멀리 다섯 봉우리까지도 보이는데 옅은 안개라도 꼈다 치면 바로 앞 봉우리도 보이지 않는다.
새로 지어질 집은 저기 두 번째 봉우리 아래인가, 세 번째인가 생각하며 힘차게 팔을 흔들며 걸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건축사님의 연락이 왔다. 내일 오전에 시공사 대표님이 사무실에 오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침 나도 다음날이 당직휴무라 함께 만날 수 있는지 여쭈었는데 점심까지 사시겠다며 흔쾌히 불러주셨다.
사무실에는 시공사 대표님이 먼저 와 계셨다. 두 분은 이전에 세종까지 중목구조 신축 현장과 프리컷 공장 답사를 다녀오셨고, 설계 과정에서도 많이 이야기를 나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두 분의 관계가 편안해 보였고, 덕분에 나도 마음이 편했다. 사무실 tv화면에는 이제는 익숙한 우리 집, 다비다채의 도면이 띄워져 있었다. 건축사, 시공사, 건축주가 모인 자리는 생생한 건축의 현장이었다. 내 집을 만드는 이야기라 귀를 열고 머리를 최대한 굴리며 이야기를 쫓아갔다.
건축사님이 기초, 단열, 방수, 지붕의 마감과 자재 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하면, 대표님이 과한 부분은 줄이고, 모자란 부분(은 거의 없었지만)은 더하는 식이었다. 중간중간 궁금함을 참지 못해 끼어들면 두 분이 비건축인인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사진을 찾아가며 설명하셨다. 처마의 형태나 어떤 요소의 위치 같이 건축주가 선택해야만 하는 부분은 의견을 내가며 미팅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집 전체를 보면 10퍼센트 정도이지만 다락의 전체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편이 함께 왔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현관 입구 바닥 마감재(콘크리트 포장 or 판석에 왕마사), 현관 처마 어닝 설치 여부, 대청마루 천창의 크기와 기능(단창 or 미래를 대비한 단열), 다락 창문 모양과 열림방식, 그 앞의 윈도우 시트 구성 등. 남편과 상의해서 결정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설계의 문제를 떠나서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람 좋아하는 남편이 두 분과 대화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분명 같이 있었다면 집에 가는 길에 말했을 거다. "우리 진짜 잘 골랐다. 맞제~"
집을 짓다 보니 느낀 건 건축주가 그나마 제대로 알 수 있는 건 드러나있고, 눈에 띄는 부분뿐이라는 것이다. 땅에 묻히고, 마감재에 가려진 곳은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리 공부해도 비전문가에게는 어려운 부분이다. 그러니 전문가인 건축가, 시공사가 조금만 신경 쓰는 것처럼 보여도 건축주는 홀랑 넘어갈 수밖에. 보이지 않는 부분, 집에서 진짜 중요한 부분은 건축사와 시공사의 역할이 크다. 아니, 그들의 역할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다. 챙기는 척만 하는지,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도 최선을 다하는지가 집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미팅이 끝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간 식당에서 "저 시계, 우리 프로젝트에 참 잘 어울리겠어요."라고 한다던가, "제대로 짓지 않으면 태풍이라도 오면 걱정돼서 잠을 못 자지 않겠어요."라는 대화에 또 한 번 진심을 느낀다. 설계자와 시공자가 최선의 결과를 위해 계속해서 대화하고 있다는 것. 그게 건축주의 요구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일을 일로만 대하지 않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연구하고 있다는 것. 집을 지으며 나의 직업관까지 돌아본다는 게 좀 오버스러운가 싶지만, 분야는 다르지만 비슷한 결의 직업인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지으면 10년이 늙는다던데. 내가 만든 농촌주택개량사업 오픈톡방에서도 시공사 또는 건축사사무소와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으로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데. 나는 10년이 늙기는커녕 건축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나날이 관심이 생긴다. 일을 하고, 육아를 하고, 대학원을 다니며, 집까지 짓는다는 게 체력과 정신력이 많이 요구되긴 한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순조로이 흘러가는 이 상황이 감사하다.
아, 늙을 순간이 다가오고 있긴 하다. 다음 단계는 견적서다. 두렵다.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