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졌다는 것
현관 문고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무심하게 문고리를 돌려 집을 나갔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채로.
상우는 아직도 이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빠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상우와 엄마를 두고 짐을 챙겨 나가 버렸다. 그 이후로 한 동안 아무런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별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은 상우의 마음속에 영원히 액자처럼 박제되었다. 액자에 박제되어 상우 스스로 천천히 돌려볼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한 평온한 표정의 얼굴, 가족여행용 캐리어를 들고 있는 한 손. 어느 날과 다를 바가 없는 정장의 차림. 아빠는 평화롭게 엄마와 상우를 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상우는 새벽에 졸린 눈으로 일어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는 참이었다. 아빠는 상우를 못 본 것인지 아니면 보고도 그냥 지나친 것인지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상우는 뭔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의 아빠의 모습에 의아했지만, 정장을 입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바쁜 회사일 때문에 급하게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던 상우는 침대에 누워서도 아빠의 표정과 이상하게도 커다란 짐들이 뇌리 속에 떠나지 않아 엄마에게 물어볼지 말지 잠시 고민을 하며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상우는 엄마의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한참을 울던 엄마는 이내 얼마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빠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나서야 집에는 이혼을 확인하는 종이와 함께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편히 문자로 연락을 할 수 있었을 텐데도 굳이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보내왔다.
상우는 엄마가 미처 치워놓지 못한 식탁 위에 남겨져있는 편지를 읽게 되었다. 더 이상 엄마와 상우를 사랑할 수가 없어 떠났다는 말들이 남겨져있었다. 더 이상의 얘기들은 쓸데없는 일이라며 답장도 하지 말라고 쓰여있었다. 일방적인 통보였다. 상우 생각에 이 편지를 쓴 아빠의 얼굴 표정 또한 편안해 보였을 것 같았다. 아빠는 이 편지를 받은 엄마와 상우가 어떻게 느낄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알았다면 이렇게 잔인한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애초에 이런 식으로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우가 아빠를 미워하기에는 아빠는 언제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항상 조용하고 온화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가족들 앞에서 화 한 번 낸 적이 없었다. 그런 아빠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그래서 상우는 한 동안 엄마를 미워했다. 화를 내지 않는 아빠가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엄마에게서 찾았었다. 하지만 상우는 엄마에게서도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엄마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엄마를 떠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상우는 언젠부턴가 아빠가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았다. 아빠가 상우를 떠나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았다. 상우는 엄마, 아빠에게 항상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고, 숙제도 제때 해놓지 않고, 방도 치워놓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이기적으로만 행동했었다. 상우는 아빠가 떠난 후,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항상 모든 것에 열심히 했다. 사랑받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교정했다. 남은 엄마마저 떠나지 않도록. 상우는 언제부터인지 원래 자신의 성격이 어떠했는지 조차 기억나지도 않았다. 더 이상 원래의 자신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었다. 상우는 아빠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상우는 좀 더 크면서 더 이상 아빠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니 더 이상 그리워할 수도 없었다. 상우 자신이 아빠와 함께 사라지면서 상우는 더 이상 아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더 이상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상우는 좀 더 커서 이제 더 이상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상우에게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빠뿐만이 아니었다. 상우는 더 이상 준호와 같이 지낼 수 없었다. 준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상우와 준호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단짝친구였지만, 상우는 준호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항상 반갑게 맞아주는 준호네 아빠를 보는 것이 싫어졌다.
준호네 아빠는 준호의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준호를 사랑해 주었다. 상우만큼 노력하지도, 잘나지도 않았는데 항상 사랑받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상우는 그 모습이 보기 싫었다.
상우는 준호를 보며 모든 아이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이들은 별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자신과 같은 운이 없는 어떤 아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준호는 상우가 영원히 가지지 못하는 것들을 어떠한 노력도 없이, 어떠한 대가도 없이 쉽게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준호가 부러웠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준호네 아빠는 주말마다 아파트 놀이터나 공원에서 공놀이도 자주 하는 모습을 베란다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준호의 웃음소리가 베란다를 넘어서 들려오는 것이 항상 짜증 났다. 자꾸 상우 옆에 있어야 할 누군가가 부재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게 만들었다. ‘아빠가 떠날 때, 말렸다면, 나도 저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도록 만들었다.
엄마는 상우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아이들과 같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상우가 불쌍해 안쓰러워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준호네 엄마나 아빠처럼 준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돈으로 유행하는 장난감을 선물해 주는 방식이었다. 엄마는 상우가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유행하는 장난감을 사주는 엄마의 방식은 자신과 시간을 같이 보내기 싫어 택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든 준호네 엄마처럼 자신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사랑받기 위해 무엇이든지 열심이었다. 공부도 운동도 친구들과 노는 것도 모두 최선을 다해 참여했다. 당연히 선생님의 말도 잘 듣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가만히 있어도 준호의 자리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상우는 오랫동안 준호와 함께 친구로 지냈지만 도대체 왜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는 평범하기만 한 준호가 저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교실에 반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오늘 왜 준호가 안 왔지?”
“진짜. 왜 안 왔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데.”
아이들은 준호가 오지 않았다고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상우는 친구들이 준호에 관한 작은 것 하나라도 신경을 써주는 모습을 보일 때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느낌이었다.
“준호가 안 온다고 달라지는 게 있어?” 상우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준호 없으면 심심하잖아.” 준호의 현재 단짝친구인 재우가 말했다.
“나는 잘 못 느끼겠는데. 넌 맨날 그렇게 준호를 따라다녀?” 상우는 재우에게 시비를 걸 듯 물었다.
“음… 같이 있으면 재밌으니까?” 재우는 상우의 날이 선 질문에도 곰곰이 생각하고 대답해 주었다.
“걔가 재밌어? 난 잘 모르겠던데…” 상우는 끝까지 재우의 말에 비꼬며 반박했다.
“넌 안 친하잖아!” 재우는 자꾸 준호를 깎아내리려는 것 같은 상우에게 한 소리를 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휙 등을 돌려 수업준비를 위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상우 역시 등을 돌리며 준호를 찾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이렇게 걱정하고 찾을지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왠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은 더 우울해졌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심부름을 하고 친구들이 필요할 때마다 도와주었지만, 상우가 먼저 나서지 않는 이상, 친구들이 상우를 먼저 찾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준호와 상우의 차이가 무엇인지. 왜 친구들마저 준호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시간이 지나 준호는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친구들은 모두 준호가 다시 학교에 오는 것을 진심으로 반겨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준호의 모습은 왠지 평소와는 다른 것처럼 보였다. 친구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어떤 것에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눈의 초점도 없어 보였다. 그런 준호의 모습을 보자 상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준호를 좋아해 줄 사람은 점점 사라질 것이고, 그 빈자리를 자신이 채우게 되면 자신도 준호처럼 친구들이 자신을 좋아해 줄 것이다.
미술시간이 되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한 번 미리 써봐요~!”
사랑하는 엄마, 아빠라니. 오늘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부모님에게 예쁜 카드를 미리 만들라고 했다. 사랑하지 않는데도 카드를 써야 하나. 상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지루한 수학시간이 아니기 때문인지 몰라도 모두 아무 말없이 그림을 그리는 데에 열중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얼굴은 어떻게 그려야 할지, 어떤 색깔을 써야 할 지의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왜 모두가 앉아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지 않았다. 짜증 나고 지루하고 시간만 아깝다. 상우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멀리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보니 오랜만에 다시 눈이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쾅! 갑자기 큰 소리가 나 깜짝 놀랐다. 누군가 교실 뒷문을 통해 나가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누구길래 선생님에게 아무 말도 없이 저렇게 반항적으로 나간 것인지 궁금했다. 상우도 저 아이를 따라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분명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뒤늦게 선생님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다급히 어디 가냐고 물었지만, 이미 교실 문은 닫혀있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저 멋있는 친구와는 달리, 상우는 교실을 나갈 수 없었다. 상우는 저렇게 행동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그런 상우의 모습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런 실수는 해선 안된다. 상우가 저런 행동을 한다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여태까지 쌓아온 상우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실망했다, 이런 아이인지 몰랐다와 같은 얘기들을 들을 게 뻔했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지금의 상태보다도 더 인기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선생님은 뒤늦게 교실을 나간 학생을 붙잡으러 복도로 나가보았다. 하지만 이미 아이는 사라져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만이 남아있었다.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교실로 돌아온 후에 언제나처럼 상우를 불렀다. 선생님은 상우에게 자리를 박차고 나간 학생을 데려오라고 말했고, 선생님 말씀대로 상우는 교실 밖으로 서둘러 뛰어나가 보았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상우 눈에 들어온 것은 왠지 익숙한 아이의 뒷모습이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아이의 정체는…
준호라고? 저 꼴도 보기 싫은 준호라고? 도대체 쟤는 왜 뛰쳐나간 거지?
준호는 학교건물로부터 더 멀리 걸어가더니 이제는 운동장 놀이터에 있는 눈사람과 얘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준호와 눈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 흩날리는 눈 사이로 시간이 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이 순간을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처음 보는 장면일 것이다. 어떻게 눈사람과 대화하는 이상한 모습을 이전에 본 적이 있을 수 있을까.
준호는 어느새 눈사람을 안아 들어 올리더니 학교 정문으로 걸어 나갔다. 넋 놓고 바라보는 사이 벌써 저만치나 가버렸다. 이상하게도 상우의 발은 더 이상 떼어지지 않았다. 상우가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발은 꿈쩍도 않고 움직일 수 없었다. 상우는 준호에게 가지 말라고 소리쳐 말하지 않았다. 상우는 또 한 번 걸어 나가는 이의 앞을 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