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들은 자신을 만들어준 아이와 닮아있었다.
한 아이가 눈사람을 만드는 동안,
그 마음이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준호는 눈사람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비밀번호를 눌러 집안으로 들어왔다. 삑-삑-삑-삑-삑-삑-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마저 크게 들리게 만들었다.
“우리 집이야.”
눈사람은 처음으로 운동장 놀이터를 벗어나, 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집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모든 것들은 하얗지 않고 각각의 고유한 색들을 가지고 있었다. 너무 많은 색들이 한꺼번에 모여있어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운동장과는 달리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다.
준호는 신발을 벗으며 생각했다. 엄마는 아직도 회사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준호는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준호는 눈사람을 소파 자신의 옆자리에 올려두었고 어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티브이부터 켰다.
티브이 안에도 역시나 다양한 알록달록함이 있어 눈사람이 나뭇가지 눈썹을 찌푸렸다. 티브이 화면에는 초록색이 만연했다. 산속의 모습인 것 같았다. 눈사람은 무엇이 보이는 것일까 궁금해 자세히 들여다보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소파에서 뛰어내려 준호에게 달려가 준호 다리에 매달려 안기며 소리쳤다.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어!!!”
준호는 눈사람이 소리치는 쪽으로 바라보았다. 티브이에는 산속에서 좀비에 쫓기는 사람들이 화면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겉옷을 벗고 있던 준호는 티브이를 보고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달려온다고 생각한 눈사람에 웃음이 터져 나와 옷을 마저 벗지 못한 채로, 깔깔대며 웃었다.
“사람들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아니야-”
“아니야! 봐바!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잖아!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눈사람은 준호의 품에 안겨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준호는 한참을 웃다가 눈사람을 위해 티브이의 전원을 꺼주었다. 순식간에 검은 곳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눈사람은 놀라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이건 티브이라고 하는 거야. 네가 보여주는 환상처럼 진짜가 아니야.”
“진짜가 아니야?” 눈사람의 머리 위에 있는 푸릇푸릇한 새싹은 잎을 말아 눈사람처럼 작게 움츠리고 있었다.
“응. 그러니까 걱정 마.”
준호는 즐거웠다. 항상 혼자 있던 시간에 눈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반가웠다. 오랜만에 웃어본 것이기도 했고, 혼자 있는 시간에 말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좋았다. 고요한 집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누그러들었다. 생각의 버블 따위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진짜가 아닌 것들을 보는 걸 좋아해?” 젤리 눈사람이 투명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음… 재밌으니까?”
“하나도 안 재밌던데…” 눈사람이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눈사람은 집이라는 곳을 둘러보며 이곳에서 사는 준호가 신기했다.
준호는 눈사람에게 더 이상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우두커니 서있었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던 준호는 눈사람을 보니 눈을 꿈뻑꿈뻑 깜빡이며 두리번거리는 눈사람의 모습에 갑자기 집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여기는 엄마가 자는 곳이고, 여기는 내 방이야. 그리고 여기는….”
준호는 이상하게 준호 방 바로 앞에 있는 닫혀있는 방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눈사람은 닫혀있는 방에 호기심이 생겨 궁금했지만, 그에 대한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대신 준호의 방에 들어가 보았다. 준호의 방안에도 알록달록한 것들이 많았다.
“우와… 여기도 알록달록하다! 저 알록달록한 것들의 정체가 뭐야?”
“이건 레고라는 장난감이야.”
준호는 여러 레고 장난감을 눈사람에게 가까이 가져와 덧붙여 계속 설명해 주었다.
“레고는 이렇게 여러 모양의 조각들이 있는데, 이걸로 내가 원하는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어.”
“눈이랑 비슷하네! 눈도 뭉쳐서 여러 가지 만들 수 있어! 예를 들어- 나 같은 눈사람!”
“어? 정말 그렇네. 너도 여러 모양으로 만들 수 있지. 보기보단 똑똑하네.”
”그럼 당연히 똑똑하지!” 눈사람은 몸통을 내밀어 마치 덩치가 커진 것처럼 행동했다.
별 말이 없던 준호는 눈사람의 반응에 점점 덧붙여 계속해서 설명해 주었다.
“이건 내가 만든 건데.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보고 만들어본 거야.”
“우와, 정말 닮았네!”
준호는 책상 어딘가에서 자신이 만든 로봇모양의 레고와 비슷한 모습을 지닌 공책을 꺼내 들어 보여주었다. 눈사람은 눈처럼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 수 있다는 레고에 흥미를 보였고, 눈사람의 반응에 준호도 계속해서 방에 있는 다른 장난감들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친구들한테 보여주려고 만든 거야.”
준호는 오랜만에 즐겁게 떠들기 시작했다. 눈사람은 준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하고 싶은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저건 뭐야?” 눈사람은 마을처럼 보이는 커다란 레고 장난감에 대해 물었다.
준호는 이번에도 어떤 특정한 레고조각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소개해 주지 않았다.
“우리 마음이 담긴 물건은 언제 찾아?”
“아, 맞다. 찾아야지. 어떻게 찾으면 돼?”
“네가 가지고 있다며.”
“아…. 찾아볼게!”
준호는 가장 아끼는 노트북을 가져왔다. 아빠가 엄마 몰래 준호가 간단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준 옛날 노트북이었다.
“이게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하냐고?”
젤리 눈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컴퓨터 주위를 돌며 그 모양을 살펴보았다. 모양새를 딱 보니 컴퓨터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한참을 그렇게 컴퓨터 주위에서 알짱대더니 눈사람이 말했다.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뭘 어떻게 해?”
“이건 어떻게 쓰는 거냐고. 나도 열쇠를 직접 본 적은 없어.”
이제야 젤리 눈사람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그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준호는 컴퓨터에 있는 전원버튼을 눌렀다.
“컴퓨터는 이렇게 쓰는 거야.”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르니 컴퓨터 화면에서도 온갖 알록달록함의 빔을 쏘았다.
“우와- 여기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걸까?”
“컴퓨터 화면으로?”
눈사람이 컴퓨터 화면에 나뭇가지 손을 갖다 대었다.
“오-”
준호는 눈사람이 혹시라도 어떤 마법이라도 쓸지 기대하며 컴퓨터 화면을 계속 바라보았다.
하지만 켜진 화면은 평소와 같은 바탕화면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에이- 뭐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 네가 마법이라도 쓰는 줄 알았네.”
“네가 마음이 담긴 물건을 못 찾은 거지! 친구들 말로는 마음이 담긴 물건을 발견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하얀 숲이 안내하는 거에 따라서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된댔어!”
“내가 하얀 숲이 원하는 마음이 담긴 물건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네가 마음이 담긴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했잖아!”
“이게 내 마음이 담긴 물건이야!”
“이게 네 마음이 담긴 물건인 거야?… 그럼… 이제 끝이야…? 그럼… 난 하얀 숲으로 못 가게 되는 거야?”
갑자기 눈사람이 시무룩해져 슬픈 눈을 하며 말했다. 준호는 눈사람의 반응에 당황스러워하며 달래주려 손을 뻗었다.
“아니야, 갈 수 있을 거야. 갈 수 있어. 내가 다시 찾아볼게.”
눈사람은 울다가 다시 준호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직 더 있어? 마음이 담긴 다른 물건들도 있다는 거야?”
“응, 다른 물건들도 많아.”
“진-짜?” 눈사람의 작은 풀잎이 활짝 폈다.
“응, 그러니까 울지 마.”
“그걸 왜 이제 알려줘! 이제 다 끝난 건 줄 알았잖아!”
“음… 찾아볼게….”
준호는 마음이 들어간 물건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보았다. 아끼는 컴퓨터가 아니라면, 혹시 추억이 담긴 물건을 말하는 걸까?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떠올려보니 생각나는 몇 가지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레고였다. 준호와 아빠는 둘 다 레고를 좋아했다. 둘이 함께 만든 레고에는 둘만의 추억이 담겨있었다. 고민되는 것은 어떤 레고냐는 것이었다.
“마음이 담긴 물건은 꼭 한 개여야 해?”
“몰라.”
“도대체 아는 게 뭐야?”
눈사람이 준호의 말에 준호를 째려보고 있었다. 눈사람이 째려보는 동안 준호는 꽤 커다란 레고장난감을 가져왔다. 오리 눈사람 친구들이 들어가서 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준호는 아까 전처럼 계속 장난감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것도 아끼는 장난감이야. 엄청 비싼 거래. 겨우 구한 거랬어.”
“누가?”
“…. 이게 마음이 담긴 물건인지 확인해 봐.”
눈사람은 이번에도 장난감 주변을 알짱 알짱대다가 손을 대보았다. 이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도 아닌가 보네. 아빠랑 가지고 놀던 엄청 소중한 장난감인데…”
“뭐라고 그랬어? 누구랑 가지고 놀던 거라고? ”
“아니, 그냥 이건 같이 만들었던 장난감인데, 한 번 확인해 봐.”
눈사람은 시큰둥하게 장난감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확인했다. 이번에는 장난감에서 빛이 났다.
“오-! 빛이 난다! 혹시 이게 열쇠인 건가?” 준호가 신기한 눈으로 장난감을 바라보았다.
“우와, 우와! 이제 갈 수 있나 봐!”
눈사람이 신이 나서 통통 뛰며 소리쳤다.
장난감은 한 동안 빛을 뿜어내더니 다시 불빛은 힘없이 꺼져버렸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눈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장난감을 살펴보았다. 장난감을 들어 흔들어보기도 했다.
“뭐 하는 거야! 소중한 거라고 말했잖아!”
“알았어, 알았어.”
“기다려봐, 다른 레고를 가져와볼게.”
이번에도 커다란 레고 장난감을 가져왔지만, 이전보다는 좀 더 불빛이 오래 깜빡거리긴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힘없이 꺼져버렸다.
“이건 엄마랑도 다 같이 만들었던 건데….”
준호가 아빠와 놀 때 가지고 놀던 물건들을 계속해서 가져와봤지만, 불빛을 낼 뿐,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지진 않았다. 눈사람과 준호가 지쳐 쉬고 있을 때, 현관문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삑-삑-삑-삑-삑-삑-
어느새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이 되어 현관문에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야? 누가 온 거야?” 눈사람이 겁을 먹은 표정을 하며 준호에게 물었다. 눈사람 친구들을 짓밟았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돌아온 거야.” 준호가 말했다.
준호는 갑자기 허둥대며 눈사람을 안고 준호방 문 앞에 놓더니 말했다.
“엄마가 왔으니까 여기서 조용히 있어.”
“우와, 엄마? 나도 나가서 엄마 볼래!”
눈사람이 팔을 파닥대며 신난 듯이 말했다. 준호의 눈에 눈사람은 엄마란 엄마는 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안돼. 여기에 가만히 있어.” 준호가 눈사람에게 소곤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냥 그런 게 있어.”
“싫어! 나도 나가서 볼래!”
“안돼. 그냥 여기에 있어.”
“치사해. 나도 엄마 나중에 만나면 안 보여줄 거야!”
준호는 눈사람을 방구석에 두고는 휙 나가버렸다. 엄마는 준호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먼저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왔다.
눈사람은 준호가 가만히 있으랬지만 궁금했다. 준호의 엄마라는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지, 준호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는지 궁금했다. 눈사람은 운동장에서 봤던 것처럼 준호와 엄마가 서로를 바라보며 어떻게 웃고 걱정하는 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을 해보니 눈사람은 더 궁금해졌고, 살짝 열려있는 문틈 사이가 보였다. 눈사람은 조금만 구경하기로 결심했다. 식탁에 엄마와 준호가 마주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준호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없이 먹고만 있었다. 맛있게 먹는 표정으로 보이진 않았다. 반면에 준호 맞은편에 앉아있는 엄마라는 사람은 준호의 얼굴을 몇 번이나 쳐다보며 말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포기했는지 준호처럼 맛없는 표정으로 밥을 먹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준호에게 눈사람이 물었다.
“왜 너는 엄마한테 아무 말도 안 해?”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참견하지 마.”
“참견하는 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참견하는 거야.” 준호가 얼음처럼 차갑게 대답했다.
“더럽게 뭐라 하네.” 눈사람이 구시렁거렸다.
“뭐라고?”
“아니, 물어볼 수도 있지. 네가 부러우니까- 난 아직 날 만들어준 사람들을 못 만났잖아.”
“부러워할 거 없어.”
“부러워, 나는. 엄마가 널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잖아. 널 사랑하니까.”
“시끄러워. 그만 말해. 넌 아무것도 몰라.”
“아, 치사해. 완전 다 자기 맘대로야.”
준호는 이제 눈사람을 무시한 채, 책상에 앉아 레고조각을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시간은 생각의 버블을 불러냈다. 버블이 찾아올 때면, 준호는 언제나 레고조각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조립하고 해체했다. 눈사람이 소리를 쳐도 준호는 마치 어딘가로 떠나간 것처럼 듣지 못하고 레고장난감만 만지작 거렸다.
눈사람은 소리를 지르며 준호에게 말을 걸다 지쳐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는 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꽤나 시간이 흐르고 눈사람이 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준호는 레고를 조립하다 말고 어디에선가 작은 냉장고를 가져왔다. 콘센트를 꼽고 잠들어있는 눈사람을 안아 차가운 공기가 흐르는 미니 냉장고 안에 넣어주었다. 졸린 눈사람은 준호의 손길에 놀라 잠이 깨고, 자신을 옮겨주고 있는 준호의 무심한 표정을 보았다. 눈사람은 준호의 손에 안겨있는 채로 아직 잠이 깨지 않아 잠꼬대처럼 말을 흐리며 말했다.
“어디로… 가…?”
“미니 냉장고에.”
갑자기 눈사람의 눈앞은 깜깜해졌다. “깜깜해! 악! 무서워! 아무것도 안 보여! 싫어!” 눈사람은 겁에 질려 소리 질렀다. 준호는 냉장고 문을 다시 열어 눈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눈사람은 빛과 함께 다시 준호의 얼굴이 보이자 안도했다.
“깜깜한 건 무서워…”
“그럼 내가 손 잡아줄까?”
눈사람은 준호의 손을 잡았다. 준호는 눈사람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냉장고를 놓아둔 바닥으로 내려와 누웠다. 누운 상태로 눈사람의 나뭇가지 손을 잡더니 눈을 감고는 금방 잠에 들었다. 눈사람은 자신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불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준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눈결정체가 얼마나 녹았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젤리 눈사람은 다른 눈사람친구들이 아이들의 따뜻한 행동을 좋아했던 것이 떠올랐다. 젤리 눈사람은 항상 친구들이 왜 차가운 행동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과 행동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아이들의 따뜻한 행동에 혹시라도 녹아내리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젤리 눈사람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눈사람 친구들은 언제나 따뜻한 마음 안에서 녹아내리고 싶어 했다는 것을.
눈사람이 준호의 따뜻한 행동을 바라보는 동안, 문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군가 살며시 문을 열어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눈사람은 준호보다 훨씬 키가 큰 엄마를 보았다. 어제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커 보였다. 어른들은 역시 어마어마하게 큰 것 같았다.
“우와…. 진짜 크다….” 눈사람이 작게 혼잣말을 했다.
눈사람은 새어 나오는 빛을 통해 엄마가 준호보다 얼마나 훨씬 더 큰 지를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낯설지 않은 표정을 보았다. 운동장에서 자주 보았던 표정이었다. 눈썹의 끝이 밑으로 향해있고, 촉촉한 눈동자가 보이는 그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을 짓지 않으려 해도 자신도 모르게 지어지는 그런 표정인 듯했다.
엄마는 잠들어있는 준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준호를 안아 침대에 눕힌 후,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잠들어 있는 준호의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포근한 이불 위에 엄마의 사랑이 내리 앉은 것을 느낀 준호는 스르륵 더욱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사람도 미니 냉장고의 열려있는 문틈을 통해 편히 잠든 준호와 준호를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눈사람의 마음은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