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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aire 북클레어 Oct 26. 2024

[소설] 마음이 담긴 물건

다음 날 엄마는 항상 준호보다 먼저 이른 시간에 출근하였다. 준호는 엄마가 먼저 출근하기를 기다렸다가 엄마가 문을 나서자마자, 이불을 펼치며 신나게 침대에 뛰어들었다. 짜증 나는 학교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학교대신 소원을 이루러 눈사람을 도와 하얀 숲에 갈 것이므로 오늘은 마음이 담긴 물건을 꼭 발견하고 말 것이다. 


“그 큰 사람은 어디 갔어?”


“엄마? 엄마는 회사에 갔어.” 준호의 말투가 갑작스레 차갑게 느껴졌다. 엄마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차가워지는 것 같다. 어젯밤에 본 따뜻한 마음과는 상반되는 말투라고 눈사람은 생각했다.


“마음이 담긴 물건은 언제 찾을 거야?”


준호는 혼자 어떤 물건을 찾아야 될지 고민에 빠졌다.


“언제 찾을 거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생각에 깊게 빠진 준호는 눈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고 초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준호에게 얘기하는 걸 포기한 눈사람은 또다시 심심해졌다. 눈사람은 한숨을 쉬며 준호가 설명하기 꺼려했던 방문 앞에 가보았다. 문 앞에서 열지 않으려고 몸을 베베 꼬다가 심심함을 참지 못하고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눈사람은 정신없이 쌓여있는 물건들 틈에서 사람들이 있는 사진들을 가장 먼저 발견하였다. 준호도 있고, 어제 본 큰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더 큰 사람이 보였다. 정확히는 좀 더 옆으로 큰 사람이었다. 준호의 아빠인가?


“아빠도 있었어?” 


“뭐 하는 짓이야! 네가 뭔데 여기에 들어와!” 


준호는 눈사람에게 화가 나 크게 소리쳤다. 눈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눈사람은 이미 준호의 허락도 없이 아빠의 작업실 방에 들어와 있었다. 준호는 눈사람을 내쫓기 위해 화가 난 걸음으로 아빠의 작업실 방으로 들어왔다. 


눈사람의 젤리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보고 싶어….”


화를 내던 준호는 눈사람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를 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찾아들어왔다. 하지만 꾸역꾸역 억지로 슬픔을 참아냈다.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눈사람의 말을 마음속으로 따라 했다. 


‘보고 싶어….’


준호의 마음에 있던 벽이 조금 녹아내렸다. 생각에 잠겨있던 준호가 무언가 결심한 듯 얘기를 꺼냈다.


“어쩌면 여기에서 마음이 담긴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준호는 알아볼 수 없는 영어로 된 수많은 책들이 있는 커다란 책장 앞에 의자를 놓고 그 위에 올라가 까치발을 들어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책 한 권을 꺼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책을 꺼내며 준호는 왜 하필 마음이 담긴 물건이 하얀 숲으로 가는 열쇠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나름 그럴듯한 답변을 생각해 냈다. 그만큼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정말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자격 같은 게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닐까.


준호가 꺼내든 책의 정체는 바로 가족사진 앨범이었다. 필름카메라를 좋아하는 아빠가 찍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아빠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이라며 준호에게도 작은 필름 카메라를 사주며 사진 찍는 법을 알려주어 종종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아빠랑 찍은 사진들이야. 엄청 많지?”


준호는 눈사람에게 아빠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준호는 앨범 속 사진들을 한 장씩 넘기며 웃고 있는 날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사람에게 사진에 대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준호는 그날 이후, 처음으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이 사진은 아빠랑 바다에 가서 처음으로 낚시를 해본 날이야. 아빠가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줘서 내가 처음으로 아기 복어도 잡았었어! 동그래 가지고 엄청 반짝이는 게 신기했어! 요만하게 작은 복어였어.”


준호는 자신의 손보다도 훨씬 작았던 귀여운 아기 복어의 크기를 보여주었다.

“엄마 말로는 내가 아빠를 닮아서 낚시를 금방 배운 것 같대.”


“맞아, 아이들은 큰 사람들을 닮았대. 넌 아빠를 많이 닮았어?”


눈사람은 바닥에 있는 사진들을 통해 준호가 엄마를 닮았는지, 아빠를 닮았는 지를 확인해보려 했다.


“음….” 준호는 벽면에 있는 거울에 다가가 자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눈썹모양도 아빠를 닮고, 쌍꺼풀 없이 이렇게 큰 눈도 아빠를 닮았어. 코는 아직 더 자라야 하니까 잘 모르겠지만, 아빠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면 코도 아빠랑 똑같이 생기긴 했어. 엄마말로는 내가 완전 아빠 판박이래. 그래서 엄마는 나한테 작은 곰돌이라고 불러. 아빠는 곰탱이, 나는 아직 귀여운 아기 곰돌이. 나도 키가 크면 아빠처럼 커다란 곰 같을 거래.”


준호도 눈사람이 보고 있는 사진을 보며 자신이 아빠와 얼마나 닮았는 지를 확인했다.


“혹시 이 사진이면 될까? ” 준호는 아빠와 함께했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을 찾고 있었다.


준호와 아빠가 함께 낮잠을 자는 사진을 찾았다. 준호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의 사진이었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웃긴 이야기를 하고 있지도,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는데도 준호는 그 순간이 좋았다. 아빠의 존재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인지 그저 학교에 가지 않고 숙제도 하지 않아서인지 그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준호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준호의 마음속에 가장 깊게 새겨져 있었다.


“보고 싶어….” 준호가 혼잣말을 했다. 눈사람의 영향인지 보고 싶다는 말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내본 것이었다. 준호는 눈사람에게 마음이 담긴 물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잊고서 앨범을 보며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기 시작했다. 눈사람도 준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마치 자신도 거기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갑자기 어디선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준호는 손바닥을 내밀어 정말 눈이 내리는 것인지 손을 뻗어보았다. 이상했다. 창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창문은 닫혀있었다. 손바닥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차갑지도 않고, 준호가 손을 내리 고나니 눈앞에는 사진 속 아빠의 모습의 아빠가 웃고 있었다. 아빠의 옆에는 웃고 있는 준호의 모습도 보였다.


아빠가 준호에게 말했다.


“준호처럼 배가 나온 눈사람이네~”


“아빠처럼 배가 나온 눈사람이지~”


준호는 사진 속 아빠와 자신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눈사람은 배가 나온 게 아니야! 뭐냐면…! 그냥…! 응? 그냥 아니야!” 눈사람이 소리쳤다.


눈사람의 말에 준호가 빵 터지며 웃자, 눈사람도 준호의 웃음에 함께 웃었다.


준호는 눈사람에게 다른 사진들도 보여주었다. 눈사람은 마치 프리즘처럼 눈사람의 눈결정체가 만들어내는 환상으로 사진을 실제 앞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주었다. 준호는 눈사람을 통해 또 다른 추억을 꺼내보았다. 


함께 야구를 하는 순간이었다. 준호와 아빠 모두 운동을 잘하지 못해 공이 계속 요리조리 튀어 공을 잡는다기 보다 줍는 일이 더 많았다. 준호가 공을 줍다가 엉덩이를 쑥 내밀며 불쑥 춤을 추기 시작했다. 준호가 춤을 추자 아빠도 갑자기 휙 뒤를 돌아 엉덩이를 내밀며 춤을 추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준호와 아빠를 보며 웃음이 터졌다.


준호는 또 어떤 사진을 볼지 앨범을 보았다. 사진들을 보며 아빠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아빠와 준호는 자주 웃는 편이어서 웃는 사진이 많았고, 그 덕분에 사진을 보는 준호와 눈사람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눈사람은 준호를 통해 사랑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배우고 있었다.


“준호야, 아빠라는 건 어떤 사람이야?”


“왜? 여기 보이잖아.” 준호가 앨범에 있는 사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날 만들어준 사람. 아빠라는 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준호는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아빠에 관한 얘기를 하려니 또 입이 잘 떼어지지 않았다. 


“음… 아빠라는 사람은 내가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이렇게 세 번 손을 잡아줘. 날 위로해 주는 아빠만의 방식이지. 나한테 가장 친한 친구도 되어주고… 내가 무서울 때도 날 지켜줘.”


“어젯밤에 네가 내 손을 잡아줬을 때처럼?”


“음…. 맞아, 그때처럼.”


“그럼 넌 내 아빠야?” 


준호는 웃으면서 계속 설명했다.


“아니, 나는 너의 친구지. 친구도 비슷해. 아빠는 내 친구 같기도 했으니까 비슷해. 그리고 모르는 게 있으면 화내지 않고 알려줘. 짜증도 안 내고. 엄마랑은 달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언어?”


“응.”


준호는 눈사람의 나뭇가지 손을 잡더니 세 번 쥐었다 폈다 했다.


“이건 사랑해라는 뜻이야. 이렇게 사-랑-해-라고 신호로 알려주는 거야. 가끔은 손으로 말고 눈으로도 해.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는 거야. 고양이처럼. 고양이들은 이렇게 얘기한대. 아빠랑 나랑도 이렇게 얘기해.”


눈사람은 준호의 말에 젤리 눈을 세 번 축소시켜 보았다. 


“이렇게?”


“응, 그렇게.” 


이번에는 준호도 눈을 세 번 천천히 감았다 떴다. 마치 둘 만의 비밀을 주고받은 것 같았다. 눈사람은 준호의 마음을 담아 준호의 추억을 겨울마법으로 펼쳐 보여주었다.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고 있었다. 준호는 학교성적이 좋지 않아, 엄마에게 한 소리를 들어 시무룩해져 있었다. 그런 준호를 아빠가 위로해 주기 위해 엄마 몰래 장난기 가득하게 눈을 세 번 천천히 감았다 떴다. 준호는 눈사람 덕분에 아빠와 함께 만든 추억에 대해 마음껏 얘기할 수 있었다.


눈사람도 준호의 환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하얀 숲에 가서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되면… 잘 알아볼 수 있을까? 날 만들어줬을 때, 흐릿한 기억들밖에 없어.”


“네가 나한테 보여줬던 사람들?”


“응, 그 사람들. 얼굴이 잘 안보이잖아.”


“그 사람들이 널 알아볼 수 있을 거야. 널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때였다. 눈사람과 준호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누군가 그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환상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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