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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aire 북클레어 Nov 20. 2024

[소설] 브로큰 브릿지 세대

로봇 손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지칭하는 세대를 일컫는 단어

너의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하지? 어떤 이름이 부르기가 쉬울까? 음…. 엄마! 어떤 이름이 좋을 것 같아? 너가 마음대로 지어. 엄마는 바빠. 음…. 로봇이니까 그냥 로봇으로 지을까? 야, 그건 너무하지 않니? 내 마음대로 지으라며! 그래도 그건 너무했잖아. 알았어, 알았어. 그럼, 로로! 로로, 어때?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로봇보다는 낫다, 야.


로봇의 손에 내 손을 맞닿아 올렸다. 로로는 이제 내 지문을 읽어내고 있다. 앞으로 내가 17살이 될 때까지 로로는 나에게 문학, 철학, 역사, 지리와 같은 과목들을 가르쳐주는 선생님 그리고 밥, 청소, 빨래 등을 해주는 가정부역할을 해줄 것이다.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매일 나의 옆에서 나를 지켜줄 것이다.


로로는 정부 지원으로 나처럼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엄마, 아빠는 대부분의 시간을 정부지원 사업에 동원되어 일을 하러 가기 때문에 주말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나를 돌봐줄 시간이 없다. 나보다도 더 좋지않은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말도 하기 어려웠을 때부터 로봇 손에서 자라게 된다.


사람들은 그 아이들에게 따로 명칭까지 지어줬는데, 로봇의 손에서 자라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을 할 줄 모른다는 뜻으로 ‘브로큰 브릿지’ 세대라는 이름부터 꽉 막힌 별칭을 지어주었다. (브로큰 브릿지 세대의 사람들은 말을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사람들과의 감정적인 교류를 하는 데에서는 이전 세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뒤쳐져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나는 갑자기 바뀐 부모님의 상황에 정부지원을 받게되었다. 나처럼 어느 정도 말을 할 줄 아는 상태에서 로봇 가정부를 두게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피하는 아이들이라고 하여 ‘이스케이프’ 세대 라고 불렀다. 이러한 정보들은 모두 로로의 도움으로 배운 것들이다. 로로는 내가 알아야하는 것들을 선별하여 매일 수업을 해주었다.


정부 소유의 로봇을 통해 일정 커리큘럼의 교육을 받게되면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다. 학교는 돈이 있는 아이들이나 다닐 수 있는 곳이다. 모두 학교에서 작은 실수라도 하면 왕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로봇 손에 자란 아이들은 학교 다니는 것을 꺼려한다.


로봇의 손에서 자란다는 것은 어느 정도 기본적인 표정을 읽고, 제스쳐를 읽을 수 있는 능력 정도는 배울 수 있지만, 인간만의 세밀한 표정과 감정표현과 같은 미묘한 뉘앙스를 캐치하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한계를 가지게 된다. 이런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게되면 어렸을 때부터 인간 가정부와 함께 자란 아이들에 비해 소통능력이 뒤쳐질 수 밖에 없다. 부모님의 부에 따른 인간성 형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스케이프 제너레이션 아이들은 학교에서 짓궃은 장난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단점을 알게된다든지 하게되는데, 사회적 스킬이 부족한 아이들은 왕따를 당하고 난 후에도 정신적인 회복능력이 느렸다. 오히려 졸업 후, 왕따를 당했던 경험때문에 사람들과 떨어져 로봇들하고만 지내게되는 경우들이 꽤 많다고 한다. 그렇기에 요즘 부모들은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고 로봇가정부를 통한 홈스쿨링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한 달 정도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나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목소리가 크다는 이유로, 내가 움직일 때의 동작들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나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다가 내가 나아지지 앉자, 나중에는 몰래 내 사물함에 나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메세지의 종이, 아니면 더 심하게는 욕을 적은 종이를 두고가기도 했다.


결국 나는 학교를 나와 정부에서 배정받은 로봇과 함께 홈스쿨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로로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학교에서처럼 불편할 일들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로로는 내가 목소리가 크다고, 내 동작들이 거슬린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공부를 하며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태로 편하게 있을 수 있다. 로로는 나의 단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로로는 내 지문을 읽어낸 뒤, 나의 목소리를 읽어내고 있었다. 나는 로로와 함께 온 상자 안에 있던 설명서를 꺼내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로봇은 대한민국 정부의 소유로 주민번호 411120-50274832로써, 성명 이태윤에게 2053년부터 2057년동안의 소유 이전을 허합니다. 상자에서 잠들어있던 로로가 깨어나 눈을 떴다. 효율적으로 상자 안에 있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있던 로로는 천천히 한 다리씩 일으켜세워 일어났다. 로로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로로가 천천히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로로도 일어나면서 나의 눈을 보고 있었다.


로로는 나를 17살까지 충분히 보살펴주기 위하여 꽤 큰 키와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상자 앞에 쓰여져있는 스펙상으로 로로의 키는 175정도 되었고, 무게도 70킬로그램 되는 큰 덩치를 가졌다. 로로가 굽은 무릎을 모두 펴고 일어서자, 나의 시선은 저 멀리 위로 향해야했다. 로로는 시선을 맞추기 위해 나에게 다가와 다시 몸을 낮추어 눈을 마주쳤다. 나는 로로의 생김새를 발에서부터 얼굴까지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맨질맨질한 대리석같은 하얀 얼굴에 대조되는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눈의 흰자를 통해서는 까만 눈동자가 어디를 쳐다보는지를 알 수 있었다. 딱 전형적인 로봇같은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사람을 닮은 로봇 디자인을 선호하지 않았다. 더 비쌀 뿐 더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모습이 소름끼친다고 했다. 코는 없었고, 사람과 비슷한 입술모양을 한 형태였다. 한 쪽 어깨부근에는 나의 주민번호가 새겨져있었다.


나를 태윤이라고 불러줘. 로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로는 나의 친구이자,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의 역할까지 해주는 나와 뗄 수없는 존재가 되었다. 로로는 나의 몸 상태에 맞추어 기상시간을 맞추어 주고, 내가 졸릴 때가 되면 방안의 조명을 어둡게 만들어주어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주었다. 엄마, 아빠가 늦게 들어와 나의 마음이 불안해지면 명상 영상을 틀어 마음을 안정시켜주려 하였다. 많은 이스케이프 제너레이션 아이들은 나처럼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어한다고 한다. 로봇과 함께하며 불안한 상황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로로는 부모님 대신 침대 맡에 앉아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나는 로로 외에는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외로움을 아는 로로는 주로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모험여행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내가 살고있는 아파트 바로 앞에는 놀이터가 있어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해도 내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볼 수 있었지만, 친구들과 노는 아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 각자의 로봇들과 놀기 바빴다. 브로큰 브릿지 세대나 나같은 이스케이프 세대나 용기있게 나서서 말을 걸 줄 아는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소통을 할지라도 로봇을 통해 서로 메세지를 주고받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결과가 좋진 않았다. 서로 미워하기 바빴고, 나중에는 다시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내용들을 로로에게 설명해주면 로로는 내가 좋아할 만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들을 추천해주었다. 그럼 나는 로로가 추천해준 영화들을 로로와 함께 보면서 모험에 관한 것들을 물어보고, 그에 관련한 공부도 했다. 예를 들면, 어떻게하면 배를 타고 갈 수 있는지, 배를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 지를 배웠다. 로로 덕분에 무언가를 아는 배우는 것은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로는 나와의 대화를 모두 기록해놓기 때문에 언제나 최고의 대화상대가 되어주었다. 일이 바쁘고 힘들어 나에게 집중할 수 없는 엄마, 아빠와는 달리 항상 최상의 상태로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로로와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그 어떤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었다. 나의 모든 비밀도 지켜주었다. 


로로, 친구들이랑 여행을 떠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도 친구들을 만들고싶어. 모험이야기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잖아. 로로가 대답했다. 놀이터에 가면 친구들 만날 수 있잖아. 그 친구들이랑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때? 나는 막상 친구들에게 말할 용기가 없다는 말 대신, 그 친구들이 별로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럼 어디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 바다가 있는 곳에 가보고 싶어. 우리 집은 바다에서 너무 멀잖아.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했어. 엄마한테 말씀드리고 함께 가볼까? 나랑 함께 가면 되잖아. 아니야, 엄마는 허락해주지 않을거야. 용기가 없는 나는 로로의 제안에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야기 속 모험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있었다. 나는 아직 그런 모험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언제쯤 용기를 내서 이야기 속 주인공들처럼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로로가 나의 불안함을 눈치채고는 대답해주었다. 너가 좀 더 크면 함께 갈 수 있을거야. 그때 같이 가자.


로로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가족들이 전부 모여 텔레비젼 앞에 앉아 모두 같은 티비 프로그램을 봤다고 한다. 서로의 나이 차가 최대 70살까지 되어도 모두 다 같이 보았다고 한다. 내가 친구들과의 대화가 더 힘든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 했다. 컨텐츠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은 세밀화되어 서로간의 높은 벽을 세워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각자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달라 공통점을 찾는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로로의 말에 의하면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예전과 달리 요즘 친구를 사귀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와 같아졌다고 말해주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 서로 쓰는 언어 또한 달라졌다. 서로의 은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나처럼 친구가 없는 아이들은 더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열일곱살이 되기 전까지의 로로와 함께한 날들은 부족할 것이 없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아무도 오지 않았던 내 생일 날이었다. 나는 언젠가 나와 함께 모험을 떠날 친구들을 만들기위해 용기를 내어 생일파티를 열었던 적이 있다. 로로가 나 대신 놀이터에서 놀고있는 친구들에게 생일 초대장을 나누어주었다. 생일파티 시작 시간은 2시였지만, 6시가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직 로로만이 언제나 그렇듯 내 옆을 지켜주었다. 로로, 아무도 오지 않나봐. 실망스럽겠네. 누군가 내 마음을 읊는다는 것은 그리 기분좋은 일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로로에게 소리쳤다. 로봇 주제에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괜히 로로에게 소리나 지르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보통 때의 로로라면 내가 화를 낸다든지, 우울해한다든지 감정이 요동칠 때 항상 나를 쫒아와 위로의 말을 해줬었는데 내가 그 전과 다르게 행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방을 너무 세게 쿵 닫아서 센서에 문제가 생겼던 것인지 나를 쫒아들어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로로없이 방에 있다가 나왔는데 갑자기 집의 모든 조명이 꺼져있었다. 깜깜한 집을 보고 무서웠던 나는 로로의 이름을 불렀다. 로로! 로로! 어딨어! 나와! 나 무서워!


집은 우주처럼 변해있었다. 로로가 빔을 쏘아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배경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로로는 다가와 VR용 헤드셋을 나에게 쓰여주었다. 헤드셋 세상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배경들이 실제처럼 내 눈 앞에 펼쳐져있었다. 로로, 너가 다 만든거야? 생일 선물로 만들어봤어. 엄마, 아빠는 모든 AI 로봇들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하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어서 그런거라고 했다. 그냥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난 어른들의 말들을 믿지 않는다.


어느 날, 정부에서 고지서가 날라왔다. 어느덧 2057년이 되어 로로는 다른 아이를 돌보러 가야했다. 이 말은 즉슨 로로와 나와의 모든 추억은 리셋된다는 것이었다. 나와의 대화는 모두 로로의 몸안에서 지워질 것이다. 내가 백업을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면, 나는 내 컴퓨터 어딘가에 로로와의 추억을 저장을 해둘순 있겠지만, 로로는 이전의 내가 알던 로로가 아니게 될 것이다.


엄마, 아빠는 어차피 쇳덩이에 불과한 수많은 로봇 중 하나일 뿐이고, 다른 로봇에 로로의 기억을 넣어두면 될텐데 왜 그러냐고 물었다. 어쩌면 엄마, 아빠 말이 맞을 지도 모른다. 로로의 기억을 백업해둔다면, 로로는 영원히 나와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로로와 헤어져야 하는 날이 왔다. 로로는 집에 처음 온 날처럼 다시 눈을 감고 스스로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여러번 반복해봤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로로, 가지마. 로로! 로로! 로로는 평소처럼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아직 로로없이 살 수 없다. 나는 아직도 로로가 필요하다. 로로! 가지마! 난 아직도 너가 필요해! 잠들지마! 나는 로로를 되찾으려 소리를 지르며 나를 붙잡고 있는 엄마, 아빠로부터 발버둥을 쳤다.


로로가 떠난 후, 나는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 멍하니 있었다. 결국 엄마는 일까지 쉬어가면서 내 옆에 있어주었다. 엄마의 노력에도 내가 나아지지 않자, 엄마는 로로의 정보를 백업해둔 우리의 추억들을 재생해주고는 회사를 갔다. 그리고 나는 혼자 우리의 추억들을 재생해보았다.  


“너가 좀 더 크면 함께 갈 수 있을거야. 그때 같이 가자.” 로로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결국 우린 함께 모험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꼭 로로와 함께 모험을 떠날 것이다. 나는 로로를 되찾기 위한 모든 방법들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인터넷에 나와 함께 로로를 되찾을 방법을 찾을 친구들을 찾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에 나처럼 로봇친구를 되찾고싶은 아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정부에 대항하여 로봇친구 되찾기 클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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