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잔잔한 일상에 침입한 친근하고 낯선 이방인의 방문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매일같이 반복하는 작은 일상들의 나열들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나의 일상은 작가로써 글을 쓰기에 적합한 루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루틴을 설명하자면, 아침에 일어나 침구를 정리한 후,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 이를 닦고 세수를 한 후, 스킨,로션을 바른다. 아침은 간단히 토스트나 과일로 때운다. 잠깐의 설거지를 한 후, 집중할 수 있는 최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잠옷에서 단정한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보통 5시간 정도 내리 집중을 하고나면 약간의 피곤한 상태가 되어 점심을 먹기 알맞은 상태가 된다. 강릉 안목해변가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음식점들이 즐비하기에 점심메뉴를 고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보통은 건강을 챙길 수 있는 한식위주로 점심을 먹는 편이다. 점심을 먹고난 후에는 잠시 산책을 한다. 이것 또한 건강을 챙기려는 나의 노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녁시간이 되면 보통 처리해야 될 일들을 해치운다. 메일 답장을 보내고, 공과금 납부를 하고, 청소를 하며 필요한 것들을 주문을 한다던지의 자잘한 일들을 한다. 하루의 마무리는 명상이나 혹은 욕조에 몸을 담그며 마친다. 나의 루틴은 보통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작은 일상들을 보내야만 큰 사건들이 발생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9일 월요일
하지만 요즘 나의 루틴을 바꿔야할 지의 고민이 생겼다. 누군가 나의 집에 들어와 살고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부터의 균열을 발견했다. 항상 쓰는 브랜드의 스킨, 로션, 선크림이 놓여있는 화장품의 줄이, 냉장고 음료들의 줄이 삐뚫어져 있거나, 의자가 카페트의 공간을 넘어서 있거나, 심지어 작업할 때 쓰는 노트북이 열려져 있다든지의 작은 것들의 변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작은 변화들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살면서 루틴을 바꿔본 적 없는 나에게 이러한 변화들은 집에 누군가 몰래 들어왔다가 나갔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조용한 동네에서 경찰을 부르는 일이란 피곤한 일을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다. 그저 동네아이들의 단순한 장난일지도 모른다. 훔쳐갈 것도 없고, 그냥 애들이 어쩌다 들어와서 장난 좀 치다가 간거겠지.
2023년 10월 10일 화요일
처음에 나는 적어도 나를 공격한 적은 없으니 문단속 정도를 잘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단순한 생각에 대해 잔잔한 물에 돌을 던지듯 장난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가고있다. 스킨, 로션, 선크림의 순서가 아예 바껴져 있거나, 냉장고에는 내가 마시지 않는 맥주가 있었다. 난 술을 하지 않는다. 노트북은 작업공간이 아닌 부엌 식탁에 놓여져있기도 했다. 누군가 여자 혼자 단독주택에 산다는 이유로 나를 괴롭히려는 걸까. 열쇠를 바꿔야하나.
2023년 10월 11일 수요일
고민끝에 루틴을 바꿔 하루종일 집에 있어보기로 했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보니 더 이상의 장난 혹은 괴롭힘은 발생하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를 내리 집에서만 있었다. 코로나도 아닌데 일주일동안이나 집에만 있으려니 아무리 내가 극강의 내향형의 인간일지라도 이제 좀이 쑤신다. 좀이 쑤시니 나의 마음도 ‘이제 장난도 끝나지 않았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날 괴롭히는 게 재밌진 않을거야.
2023년 10월 12일 목요일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네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젋은 여자였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 독자일까. 나도 모르게 좀 더 고상하게 표정을 지으며 수저를 뜨며 모른척 했다.
사인을 받고싶으면 알아서 용기를 내서 오겠지. 내가 굳이 먼저 알릴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젋은 여자는 내가 자리를 뜰때까지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나의 팬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도 모르게 조금 실망한 것도 같다. 한껏 ‘사인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펜은 어디에 있지?’라고 고민한 내가 창피하다.
10월 13일 금요일
어제 보았던 젋은 여자는 내가 가는 식당에 나보다도 먼저 와있었다. 어제처럼 또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을 걸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 저렇게까지 나를 쳐다보는 것을 보면 내 팬이 맞는 것 같긴 하다. 나에게 불편함을 줄까봐 계속 고민하는 거겠지. 이제는 답답해서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할 지 고민이 든다. 아니면 미리 사인을 해서 건넬까.
젋은 여자는 이제 나를 쫒아오기까지 하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나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데 나를 쫒아오는지 내 뒤에서 계속해서 서성이고 있었다. 점점 거슬리기 시작해서 자꾸 그냥 ‘사인한 종이를 건네야하나?, ‘이 정도면 내가 너무 오지랖부리는 건 아닐거야.’’라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확실하지 않으니 이런 마음을 꾹 참았다.
10월 14일 토요일
드디어 젋은 여자가 처음으로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사인을 받아도 될까요?’라고 예상한 나의 생각이 무색해졌다. 젋은 여자는 나의 몸은 괜찮은지를 물었다. 당황스러웠다. 다짜고짜 나의 건강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니. 내가 어딘가 아파보이나. 저 젊은 여성의 질문에 살짝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일단 나는 ’팬이 안부를 묻는 정도의 질문이겠거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주 좋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미소지어보이며 대답했다.
나는 젊은 여자가 나에게 어떠한 말을 더 하지는 않을지 표정을 살피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예상은 빗나갔고, 젋은 여자는 가게 문을 나가버렸다. 도대체 언제쯤 사인을 받아가려고 저러는 걸까. 그렇게 용기가 나지 않는걸까.
10월 15일 일요일
젋은 여자는 오늘도 점심을 다 먹은 나를 보고는 나의 자리로 찾아오더니 갑자기 여자는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손을 홱하고 빼버렸다. 이 젊은 아가씨가 나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내가 유난스러운 걸까 아니면 저 젊은여자가 이상한 걸까.
‘그저 친절한 것일수도 있다.’
‘그저 친절한 것일수도 있다.’
라고 계속해서 되뇌이며 내 자신을 달래보았지만,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그 곳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소심한 젊은 여자에게 내가 너무 상처주는 일을 한 것은 아닌지 조금은 걱정도 된다.
10월 16일 월요일
젊은 여성은 오늘도 또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는 좀 더 저돌적인 자세로 내 손을 만졌다. 내가 손을 빼려해도 놓아주지 않았다. 이 여자가 어느정도까지 갈 것인지 점점 두려운 마음이 들고있다. 혹시 저 여자가 내 집에 들락날락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이상한 생각도 든다. 여기서 나에게 키스라도 할건가.
내 앞의 여자가 말했다. “날 알잖아요.”
“네? 제가요?”
“날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요?”
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또 상처만 준 것인지 이에 젊은 여자는 체념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가버렸다. 입을 가리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으려 한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여기서 말고 저 여자를 마주친 적이 있나? 도대체 저 여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말인가.
10월 17일 화요일
젊은 여자는 용기를 냈는지 나에게 아주 예의 바르게 대화를 나누어도 되는지를 물었다. 어떠한 중요한 얘기를 하기로 마음먹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 여자의 정체가 궁금해진 나는 앉으라며 손짓했다. 여자는 내가 마음을 연 것에 대해 기분이 좋았는지 환한 미소를 띠어보였다. 처음으로 보는 환한 미소였다.
젋은 여자는 가방에서 꽤나 두꺼운 두께의 노트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사진이 담긴 앨범같았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에게 이 앨범을 보여줘야할 지 말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젋은 여자는 그림자가 드리운 표정으로 결국 앨범을 펼쳐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나의 쪽으로 내밀었다. 앨범에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엄마, 우리 가족사진이야. 그리고 이건 엄마고.”
나는 젊은 여자를 안쓰럽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서야 이 젊은 여자가 왜 이토록 나를 따라다녔는 지를 알 것 같았다. 나를 자신의 잃어버린 엄마라고 착각한 것이다. 여태까지 팬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진다.
“실망시켜서 죄송하지만, 저는 결혼한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독신으로 쭉 살아갈 거에요. 저는 아가씨가 찾는 엄마가 아니에요.” 젊은 여자는 절망스런 표정을 짓더니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안았다. 터져나오는 눈물을 가리려는 듯 했다. 나는 안쓰러워 나도 모르게 젊은 여자의 손을 잡아주었다. 여자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여자쪽으로 다가가 안아주었다. 여자도 나를 안았다.
한참동안이나 울던 여자는 나를 놓아주더니 다시 앨범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추억이 담긴 가족사진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말들이 더 있어보인다. 얘기를 하면 좀 더 마음이 녹아들겠지. 이 마음 아픈 여자의 사연을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어렸을 때 모습이 담긴 페이지에서 훨씬 더 뒤의 페이지들로 넘기기 시작했다. 사진 속 얼굴은 젊은 여자의 지금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엄마, 이거 엄마잖아.”
여자는 계속해서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나는 이를 정정할 지 말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손으로 가리키는 사진 속 엄마라는 여자의 얼굴은 지금의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치매를 앓고있어. 이제 더 이상 혼자 살지말고, 나랑 같이 요양병원으로 가자.”
혼란스러웠다. 이 여자가 하는 말들을 믿어도 될까. 나는 여자의 손에서 앨범을 빼앗아 하나씩 자세히 뜯어보았다. 나는 눈 앞의 젊은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눈이며 코며 정말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앨범을 보았다. 행복해보이는 가족들 사이로 나와 닮은 여자의 얼굴들이 보였다.
해변가로 놀러가 찍은 모습, 내 앞에 있는 젋은 여자와 함께 브이를 하며 큰 바위 앞에서 찍은 모습, 젋은 여자의 졸업식에 단란히 서있는 모습. 다양한 순간들이 지나갔다. 말도 안돼. 모두 나였다. 찬란히 빛나는 나의 과거의 모습이었다….찬란히 빛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들이었다.
나는 치매에 걸린 엄마였고, 내 앞에 이 아름다운 젊은 여자는 나의 딸이었다.
“지아야…아빠는?”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잠을 자고 있던 모든 기억들이 이불 개어지듯 일어났다.
“아빠는 작년에 돌아가셨어. 그리고 그때부터 치매가 악화되기 시작했어.”
기억들은 가슴 아픈 순간들을 제외한 채로 일어났던 것인가보다. 이제서야 모든 퍼즐들이 맞춰졌다.
“너가 집에 들어왔던거야?”
“엄마 몰래 집에 들어가서 청소도 해두고 하려고. 근데 이제 안되겠어. 엄마 혼자 다니는 거 불안해. 그냥 병원으로 가자.“
병원으로…짧은 시간 안에 생각해야 될 일들이 많아졌다. 나는 병원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병원으로 가는 것이 딸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로 혼자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입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살거야. 엄마는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나의 정신은 온전치 않았다. 하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요양원에서 다른 노인들처럼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
“억지로 들어가게 만들고싶지 않아. 나랑 지금 같이 가자. 우리 몇번이나 이 대화 나눴던 거 알아?”
부드러운 목소리 속에 불안함이 느껴졌다…. 지금 결정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또 딸의 기억을 잃어버릴 것이다. 더 이상 딸을 힘들게 할 순 없다. 나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딸인 것이다. 더 이상 선택의 문제로 느껴지지 않았다. 기억이 남아있을 동안 해야할 가장 중요한 말을 꺼내기로 했다.
“지아야, 여태까지 엄마가 너 힘들게해서 미안해. 병원으로 가자. 그리고 엄마가 우리 딸 많이 사랑해. 엄마가 앞으로 지아를 기억 못하는 일이 있어도 그건 꼭 알고있어야 해. 알았지?”
2023년 10월 8일 일요일
매일같이 반복하는 작은 일상들의 나열들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나의 일상은 작가로써 글을 쓰기에 적합한 루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루틴을 설명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