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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aire 북클레어 Nov 08. 2024

[소설] 사진 속에 사는 남자

나는 아주 작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 나는 아주 작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 작은 초능력이라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히어로들처럼 멋지게 누군가를 구할 수도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초능력이란 그저 누군가 찍은 사진 속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찍은 것인지는 상관없이, 사진 속 인물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물론 사진 속 인물들이 해주는 이야기들은 아주 단편적이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다. 그때 당시의 인물이 느꼈던, 생각했던 것들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영혼의 찰나의 순간만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들처럼 자기가 아는 이야기를 계속 똑같이 반복하여 들려준다. 


그러니까 내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은 사진기가 발명된 시점부터의 이야기이다. 세계 최초로 찍힌 사진은 1826년에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에 의해 찍힌 풍경사진인데, 난 그때부터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 그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들을 듣는다. 아쉬운 점은 오직 나밖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답답해서 이곳에 몰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적어도 내가 죽은 후에 누군가 이 일기장을 발견한다면, 나의 일기 덕분에 조금이라도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게 되지 않을까?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이라는 윈도우 바탕화면속 세상도 다녀와봤다. 끝없이 펼쳐져있을 것 같은 푸르른 초원과 하늘 사진말이다. 사진의 장점이란, 작가의 의도에 따라 오직 아름다운 부분만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인데, 나의 초능력은 내가 원하지 않는 진실까지 모두 알게 되도록 만들어준다. 실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켜면 마음을 확 트여주는 그 사진 속 세상의 주위에는 쓰레기 더미가 잔뜩 산처럼 쌓여있었다. 진실이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뽀샵이라도 들어간 사진이라면 정말이지 으, 너무 싫다. 알록달록 필터를 쓴 사진의 하늘은 우중충하기 그지없고, 새하얀 눈밭은 이미 까만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가득하다. 가끔은 좋아하는 여자 연예인의 화보 사진 속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눠보는데, 얼굴과 다른 거친 입담에 너무 놀라 그 이후에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진 속으로는 잘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둘. 어렸을 때는 자랑할 수도 없는 이런 쓸데없는 초능력이 별로 달갑진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감사하게 되는 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나는 사진 속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어본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은 엄마와 함께 다녀온 강릉 바다 사진이다. 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단 둘이 다녀온 여행이었다. 엄마는 암으로 내가 직장인이 되고 난 후, 몇 년 후에 돌아가셨는데 힘들 때마다 들어가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보곤 했었다.


눈앞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사진 속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집안 곳곳에서 느껴지는 엄마의 빈자리는 더욱더 크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느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깨닫지 못한 채로 사진 속 세상에서 오랫동안 머물러있곤 했다.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수록 상실의 고통 또한 커진다.


엄마를 찾아가면 엄마는 마치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평소보다도 더 애틋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아니면 그저 내가 느끼는 것을 엄마에게 투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엄마는 다짜고짜 끌어안고 우는 나에게 괜찮다며,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며 말해주었었다. 평소의 엄마는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엄마는 억척스러운 사람이었다. 아버지 없이 나를 키우며 온갖 세상 풍파를 겪어야 했으니 말이다.


셋. 사진기가 발명되고 한 동안 사람들은 사진에 찍힌 사람들의 영혼이 그곳에 갇혀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속 인물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현재의 그 사람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짝사랑하던 고등학교 동창과의 일화다. 나는 짝사랑하던 그 아이와 운이 좋게도 3년 내내 같은 반이었지만, 수줍음이 많던 나는 단 한 번도 말을 걸어보지 못했었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단체사진 속에 들어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때 사진 속 그 아이에게 말을 걸면, 그 아이는 마치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듯 친구들에게 가봐야 한다며 쳐다보지도 않고 떠나가버린다.


이후에 그 친구를 우연히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용기를 냈다. 우리는 사귀게 되었고, 대화가 잘 통해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 아이와 사귀고 난 후, 100일이 되던 날 찍은 사진 속에 들어가 보면 그 아이는 나의 눈을 응시하며 사랑한다고 속삭여준다. 같은 사람의 사진이더라도 사진을 찍을 그때 당시의 느꼈던 것들과 생각했던 것들이 달라 그런 것이다.


사진 속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영혼의 일부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엄마의 영혼의 일부들과 대화를 나눈다. 만약 엄마가 지금까지 건강히 살아있었다면, 현재 내 초라한 모습을 보며 등짝 스매싱을 날리며 도대체 왜 그렇게 살고 있냐고, 망나니처럼 살지 말라고 잔소리했을지도 모른다. 건강할 때의 엄마는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며, 꼭 성공해야 된다고 나를 재촉했었다. 현실의 불안감이 닥쳐올 때마다의 나는 어머니의 불안감에 휘말리곤 했었다.


넷. 외로워서 과거의 사진들을 들춰보다가 사진들 속 끼어있는 또 다른 여자친구의 사진을 발견했다. 함께 카페에서 찍은 셀카사진들이 보였다. 지금 보아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있다. 단순한 외모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 그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질투섞인 화도 난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쯤, 나는 여자친구에게 많은 의지를 했었다. 하지만 이 놈의 초능력은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도록 만들어주었다.


헤어진 직후, 그녀가 너무 그리워 술을 마시다 사진 속으로 들어갔었다. 우리가 도대체 왜 헤어져야 되는지의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던 말들이었다. 눈에 별이 박힌 것처럼 아름다운 여자친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잔인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나쁜 년.


알고 보니 내가 어머니의 슬픔 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동안, 그분은 다른 남자분을 만나고 있었다. 그저 내가 불쌍해서 계속 사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쪼잔하지만, 더 쪼잔했던 그 시절의 나는 물어보지 말았어야 할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졌다. 그놈이랑은 어디까지 진도가 나간 것인지 등의 질문이었는데, 너무 찌질해서 이 부분은 자세히 적지 않는 것이 좋겠다. 요약하자면, 나는 결국 그 자식의 뒤를 캐 직장까지 찾아가 보기까지 했었다.


물론, 쪼잔하고 못나기까지 한 나는 싸워봤자 결국 망신만 당할 것이라는 계산이 들어서고나서야 더 이상 사진 속 그분을 찾아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우리에 대한 미화가 이루어진 후에도 사진들을 꺼내보면 ‘뭐 해?, 자니?’와 같은 허튼짓을 안 할 수 있었다. 사진 속으로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그때의 잔인한 입모양이 금방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다섯. 사진 속에서 사는 인간답게 나는 모든 사진들을 정리해 두고 관리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어렸을 때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보고 있다. 한 동안 괴롭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은 추억의 사진들이다. 지금 보고 있는 사진은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 찍은 것이다. 벽돌색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나는 촌스럽게 맞지도 않는 큰 쟈켓을 입고 자랑스럽게 싱긋 웃어 보이고 있다. 엄마는 일을 하다 급하게 온 모양새이다. 원피스의 단추가 삐뚤게 잠가져 있다.


내가 사진을 잘 관리하지 않았던가? 사진 위 검은색 덩이의 물질이 묻어있다. 조심스럽게 닦아보았다. 왜 지워지지 않는 거지? 다른 사진들도 한 장씩 넘겨보는데 종종 검은색 덩이의 물질들이 묻어있다.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검은색 물질이 묻어있는 사진들만을 빼서 한 장씩 자세히 보니 무언가 묻은 것이 아니라 왠지 사람의 형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온통 까만 옷을 입고있어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검은색 물질처럼 보였던 남자는 엄마와 내가 중요한 날을 기록하기 위해 찍었던 사진들마다 등장하고 있었다. 남자는 사진에 찍히는 것을 알고 있는지 손에 까만 장갑을 끼고 사진에 나오지 않기위해 얼굴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소싯적 한 미모를 자랑했던 엄마를 짝사랑했던 스토커인가?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보는데 유치원 소풍사진에도, 고등학교 졸업사진에도 모든 사진에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남자에 대한 정체가 점점 궁금해졌다. 안 되겠다. 사진 속으로 들어가 봐야겠다.


유치원 소풍으로 어느 숲 속에 가서 찍은 사진 안이다. 사진 속 숲 속을 몇 번이나 돌아다녀 보고 있지만, 아무리 걸어다녀 보아도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찾을 수 없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마치 내가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나에게서 도망치는 것 같았다. 남자는 엄마와 내가 중요한 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우리에게서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매번 그 존재를 드러내었다. 이중적이었다. 


이번엔 고등학교 졸업사진 속이다. 이번에도 아무리 걸어도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대학교 입학사진 속이다. 이곳에도 남자는 없다. 강릉바다 여행 사진 속에도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도대체 남자는 누구일까. 왜 자꾸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을까. 


사진 속에서 정처 없이 걷다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의 시선에 닿지 않으려면 분명 내 뒤에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나를 물 먹였다. 나의 촉은 단 한 번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여섯. 그곳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이다. 사진 속에 들어가 하루 종일 있어도 현실에서의 시간은 전혀 흘러가 있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검은 형체의 남자는 평생 현실세계에서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 사진 안에서도 나를 피하고 있었다. 검은 형체의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진은 어떤 사진일까. 도대체 누구일까. 나와 엄마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지만, 절대로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 남자. 


나를 멀리서만 지켜보는 남자. 나를 보기위해 특별한 날마다 찾아왔지만, 그 모습을 숨기는 남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버지’라는 사람일까. 맞다면, 왜 ‘아버지’라는 사람은 이렇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일까.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리 떼를 쓰며 물어보아도 ‘아버지’라는 단어에 대해 일절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계속 묻다 보면 화내기 일쑤였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마치 내가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람처럼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으셨다. 


엄마가 원래 그렇게 독한 사람인지, 아니면 살면서 그런 사람이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이라면 좀 다르려나.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의 사진들 속에 들어가 봐야겠다. 과거의 엄마와 대화를 해본다면 알 수 있는 것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과거 사진들은 대부분의 사진들이 반으로 찢어져있었다. 사진 속 엄마는 촌스러운 물방울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꽃밭에 앉아 한껏 예쁜 표정을 짓고 있다. 엄마의 이런 면을 보는 것은 꽤나 낯설었다. 여태까지 엄마의 이런 모습을 잊고 있던 내가 한심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엄마의 억척스러운 면만이 엄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같이 다니며 예쁜 사진들 좀 찍어줄걸.  


엄마가 반으로 찢은 사진 속에서는 이상하게도 찢긴 부분의 사진 너머로는 갈 수 없었다. 미움이 남겨져있는 사진은 그 흔적마저 모두 사라지는 것일까. 


일곱. 이번에 나는 남자를 찾아다니지 않고, 사진 속에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럼 다시 내 주위를 맴돌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한번 유치원 소풍 사진에 들어가 보았다. 어렸을 때의 나처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기 위해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가려보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번 해보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무도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또 한 번 시도해 보았다. 검은색의 옷을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우르르 뛰어오는 아이들을 헤쳐 남자 뒤를 쫓아갔다. 남자는 당황했는지 제대로 달리지 못했다. 남자의 목덜미를 잡았다.


“당신 누구야?”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죄책감에 빠진 표정으로 어떠한 말을 읊조렸다. “미안하다, 우진아. 미안해. 널 볼 면목이 없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같은 말을 계속 되뇌기 시작했다. 남자는 이런 생각 속에 평생을 갇혀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하는 사진들의 세월만큼 그랬을 것이다.


“아빠야?”


남자는 울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는 내가 찾아가는 걸 싫어해. 네가 알면 안 돼.”


아버지는 다시 까만색 장갑으로 나에게서 얼굴을 가렸다. 다시 사진 속 까만 점이 되었다. 


여덟. 아버지를 찾았다. 어머니의 유품 속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전화를 통한 수소문 끝에 알아낸 사실은 아버지가 강릉에 있는 한 봉안당에 안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안치단에는 유골함과 아버지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의자에 평온한 미소를 띠며 앉아있었다. 마치 나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남겨둔 사진 같았다.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사진을 찍었을까?


나는 주위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사진 속 안으로 들어갔다. 앉아있던 아버지는 나를 발견하고는 일어나 벅찬 표정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보고 싶었어.” 

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랫동안 너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왜 나를 만나러 안 왔었어요?”


아버지는 이야기하기 힘든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성공하고 싶어서 너네 엄마랑 너를 버린 거야. 널 버린 나도 다시 버림받았지.”


아버지는 수치스럽다는 듯 다시 얼굴을 가리려 했고, 이번에 나는 그 손을 막았다. 엄마가 하지 못한 용서를 하고 싶었다. 엄마가 왜 여태까지 아버지가 날 찾아오지 못하게 한 것인지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럴 만했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아버지는 다시 한번 어렵게 입을 뗐다. 


“미안하다. 그리고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


사진 속 세상은 오직 진실만을 들려준다. 자기 자신마저 속일 정도의 거짓말이라면모를까 영혼의 일부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 빠져나왔다. 아버지의 사진 옆에는 아까는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사진이 작은 메모지와 함께 놓여있었다. 메모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우리가 행복했던 곳에서 다시 만나고 싶구나. 네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면, 엄마의 사진에 내가 옆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겠니?’


집으로 돌아와 찢겨있던 사진의 나머지 반쪽 조각을 찾았다. 

그리고 그 두 사진을 투명테이프로 이어 붙였다. 

둘이 만날 수 있도록. 

행복한 시절의 그들이 만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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