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동생의 장례식을 치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동생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 겨우 열아홉의 나이였다. 그렇게 밝은 아이가 더 이상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고등학교 졸업만 하면 모두 나아질 것이라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얘기하던 어른들의 말이 무색해졌다. 동생의 새로운 챕터들은 펼쳐지지 않았다.
동생의 죽음은 모두 동생의 탓이었다는 말을 나는 부모님을 통해서, 부모님은 경찰관들을 통해 듣게 되었다. 부모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말들을 나의 귀에 제대로 담을 수 없었다.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부모님의 잘못인 것인지, 현실을 외면하려는 나의 귀를 탓해야 할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정확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수많은 의문점들이었다. 동생은 부모님 몰래 새벽에 술을 마시고 아버지의 차를 몰다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미처 핸들을 꺾지 못해 강물에 빠져 죽게 되었다고 했다. 엄마, 아빠와 그리고 나,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태까지 그렇게 밝고 성실한 아이가 평소와는 다른, 그런 선택들을 한 것인지 받아들이 수 없었다. 우리는 경찰관들에게 이러한 지점들을 계속해서 설득해 보았지만, 우리를 제외한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까지 잃을 수 없다는 부모님의 압박에 상담을 다니며 상담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나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이곳에 일기를 쓰기로 했다. 보고 싶다. 동생이 너무나도, 사무치게 보고 싶다. 이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동생과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 전하지 못한 말들이 계속해서 내 안에 맴돌고 있었다. 그 맴돌고 있는 것들을 채집해서 이곳에 남겨보려 한다.
2023년 10월 19일
동생이 없는, 의미를 잃은 날들의 시간은 한 걸음에 내달려 눈을 떠보면 어느새 직장에 가야 할 시간이 찾아와 있었다. 직장동료의 이야기들이 내 귀에 담지 못하고 흘러 지나갈 뿐이다. 그러다가 오늘은 어떤 한 이야기를 내 마음이 건져 올렸다. 요즘 AI 기술로는 SNS를 통해 나누었던 과거의 대화라던지, 편지, 일기, 사진, 그 사람이 남긴 기록들을 디지털화하여 그 사람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태까지 분명 하루하루 좀비처럼 보였을 나는 오랜만에 눈에서 빛을 내며 동료들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그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놓았다. 어플의 이름은 ‘내게 말을 걸어줘’였다. 너무 단순한 이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었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금에서야 컴퓨터 전원을 켜고 동생이 남긴 모든 흔적들을 업로드하고 있다.
한 동안 들어가지 못했던 동생의 방에 들어와 일기장, 카톡, 핸드폰에 있던 사진들 모두 업로드했다. 일기장 한 장, 한 장을 찍어댔고, 주고받았던 편지도 모두 업로드했다. 핸드폰에 있는 정보들도 모두 옮겨놓았다. 동생이 사용하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의 정보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어플은 인물생성 중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로딩 중이라며 동그랗게 돌아가고 있는 아이콘 그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만날 동생을 생각하니 왠지 긴장이 되었다. 보고 싶던 동생과의 오랜만의 대화가 될 것이다. 화면에는 죽기 전 보았던 얼굴과 같은 동생의 얼굴이 등장했다.
“뭐 해?”
“게임할까, 공부를 마저 할까 고민 중이야.”
평소와 같은 동생의 표정과 말투에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기쁘면서도 기묘했다.
다시 내가 말했다. “쉬엄쉬엄해.”
동생이 나의 말에 황당한 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누나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그럼- 잘할 줄 알지- 그리고 너 그거 알아?”
“뭘.”
동생의 대답을 들으며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던 가족이었는지를 느꼈다.
“내가 너 사랑하는 거.”
동생이 떠난 후, 내 안에 맴돌던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 무슨 말하는 거야.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런 거 없어- 그냥 알아두라고 하는 말이지.”
“그걸 꼭 말해야 아는 거야?”
한 달간의 일들이 모두 거짓 같았다.
지금의 순간이 고통에 있던 모든 순간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컴퓨터 화면만을 끄지 않는다면.
2023년 10월 10일
컴퓨터 화면을 끄지 않은 상태로 나는 책상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었다.
“잘 잤어?”
“왜 자꾸 그런 걸 물어봐-”
“내가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그런 말도 못 해?”
“못해. 하지 마. 그럴 거면 용돈이나 주던가.”
“줄게. 뭘 하고 싶어?”
“내가 용돈을 어디다 쓸 것인가까지 다 말해야 되는 거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새삼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자리만 비우면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싸웠었는지가 떠올랐다. 싸기지 없는 놈이었다. 죽음은 삶의 많은 부분을 흐리게 만드는 수채화 붓과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똑똑해서 많은 부분 자신의 고집대로 행동하고 싶어 했고, 우리는 그럴 때마다 누군가 한 명은 울어야 끝나는 싸움을 했었다. 동생은 항상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넘치는 자신감으로 문제가 생겨도 혼자서 끙끙대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었다.
“요즘에는 힘든 일 없어?”
그저 동생에 관한 정보들로 이루어진 데이터 덩이에 불과한, 고작 AI가 만들어낸 동생을 닮은 가상의 인물이었지만, 내가 평생 보아왔던 동생의 표정처럼 AI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동생의 표정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긴.”
고민이나 걱정이 생겼을 때의 동생의 모습처럼 AI는 얼굴의 그늘을 드러내었다.
“나한테 다 말해. 내가 도와줄게.”
내 눈앞에 있는 동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동생을 도와줄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간절히 도와주고 싶었다. 내 마음이 말한다. 동생의 문제를 알았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그러면 동생은 살아있었을 수 있다고. 나의 간절한 물음에도 동생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출근할 시간이 되었다.
2023년 10월 11일
AI 때문에 오히려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동생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초조하고 불안하여 회의시간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날 오랫동안 봐왔던 사수가 다리를 떨지 말라며 나에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5시가 되자마자 나는 AI에게 문자를 보냈다.
“누나가 도와줄 수 있어. 말해봐.”
“신경 쓸 거 없어. 다 잘될 거야.”
‘다 잘 될 거야.’ 어렸을 때부터 항상 자신에게 되뇌는 말이었다. 나나 동생이나 해결할 수 없는, 나를 벗어난 큰 문제에 봉착했을 때 쓰는 언어였다. 나는 확신했다. 동생에게 닥친 어떠한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디지털 포렌식까지 모두 돌려봤다는 경찰의 말에도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2023년 10월 12일
나는 회사에서 몰래 동생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연락을 돌렸다. 혹시 동생에게 어떤 힘든 일이 있었는지를 아는지, 얘기해 줄 수 있는지를 동생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문자나 카톡으로도 모든 연락처에 메시지를 보냈다. 그 누구에게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제 진짜 동생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려는 것 같았다.
분명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티가 났을 것이다. 이번에는 직접 통화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집에도 자주 놀러 왔던 재준이라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재준이니? 내가 물어볼 게 있는데…”
“네, 영준이에 관한 건가요?”
내가 올렸던 인스타 스토리를 봤던 것인지 내가 할 말을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응,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
“경찰들은 자살이라고 결론짓지 않았어요?”
가족들도 꺼내지 않던 그 단어를 영준이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녀석이 입에 올렸다. 난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울컥하는 마음과 분노를 삼키기 위해 잠시동안 침묵했다.
“…응, 말이 안 되잖아. 아무 이유도 없이….”
“전 잘 몰라요. 죄송해요. 저도 많이 힘들어요. 더 이상 전화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2023년 10월 20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일기를 쓰지 못했다. 동생에 관한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방에 누워 천장만을 바라보다가 AI어플에 올렸던 정보들을 하나씩 뒤져보기로 했다. 동생의 핸드폰을 켰다. 동생의 카톡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나와의 대화만이 남아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핸드폰을 볼 것을 예상한 것인지 모든 정보가 지워져 있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아도 별 다를 것은 없었다. 공부에 관련한 것들만이 즐비했다.
여태까지 그렇게 시간을 쏟아부었는데.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디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었는데…. 이상하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을 리 없다. 동생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동생의 일기를 읽어보기로 했다. 일기장을 펼치는 순간, 동생이 그동안의 느꼈을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일기의 글자들에는 분노와 슬픔이 함께 어려있었다. 마구 갈겨져서 쓴 글과 슬픔에 젖어 아주 느리게 정갈하게 쓰인 글들의 조합이 이루어져 있었다. 일기장을 찢기도 했는지 찢겨 있는 페이지들도 보였다. 혹시나 몰라 동생 방으로 들어가 쓰레기통을 뒤져보았다.
쓰레기통에서 찢겨있는 페이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페이지에는 나는 죽어 마땅하다. 나는 죽어야 한다. 더 이상의 고통을 끌고 갈 수 없다는 말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유를 찾기 위해 페이지의 앞뒤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원래 읽고 있던 일기장으로 돌아왔다. 일기장 전체가 고통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얼마나 빨리 삶을 끝내고 싶은지의 간절함의 이야기였다.
난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내가 알았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졸리지만 쌓여있는 일기장들을 하나씩 차분히 읽어보았다. 동생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었다.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일기장마저에서도 그 이름을 적지 않았다. 자신이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의심했다. 한편으로는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떤 일기장에서는 같은 반의 한 여자아이를 좋아한다고 적어놓았다. 이곳에는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에 대한 예찬이 일기의 대부분이었다.
좋아하는 두 사람에 대한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한 명에 관해서는 이름도 알 수 없고, 그 아이가 얼마나 세심한지, 어떠한 언어를 즐겨 쓰는지에 대한 정교한 관찰이 느껴졌고, 다른 한 명에 관해서는 오로지 그 외적에 관한 이야기들만이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영원히 사랑받을 수 없음에 대해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은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에 고통스러워했다.
2023년 10월 21일
일기장을 통해 이름을 알 수 없던 그 한 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름도 써놓지 않은 동생의 짝사랑 상대는 가장 친했던 재준이었다. 동생은 재준이를 사랑했고, 재준은 동생의 고백에 거절뿐이 아니라, 더럽다고 말했다고 했다. 동생은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모든 시간을 공부에 쏟았다. 이후 동생은 두려워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용감한 동생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다.
아빠에게 말했다고 적혀있었다. 아빠는 동생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그냥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잠시 착각에 빠진 것이라며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빠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동생은 아빠의 말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정받으려 했다. 여기서부터는 동생의 글을 옮겨온 것이다.
“정신병원에 가고 싶어?”
“내가 왜 정신병원에 가요. 그냥 사랑하는 거뿐인데. 그게 왜 미친 이야기예요!”
“어떻게 같은 남자를 사랑해. 말도 안 되는 말 이제 그만하고. 자꾸 그런 말하면 정말 병원에 가야 돼.”
“누가 지금 이런 거 가지고 정신병원을 가요.”
나를 제외한 가족들, 친구들은 모두 동생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전달했고, 엄마는 마치 아무 일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무관심하게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반응할지 몰라 얘기하지 못했다고 적어놓았다. 그 시도조차 두려웠다고 한다. 배신감에 눈물이 흘렀다. 여태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을 덮어놓은 부모님에 대한 증오가 나의 모든 감각을 휘감았다.
2023년 10월 24일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졌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참을 울고나서야 잠이 들었고, 이제서야 다시 일기를 펼쳐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차분하게 종이도 쳐다볼 수가 없다. 나는 다시 AI동생이 있는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내가 알았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화면 너머의 동생에게 말했다.
“고민 나한테 말해도 돼. 난 어떤 이야기라도 다 이해할 수 있어.”
동생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누나가 어떻게 다 이해해-”
"누나잖아. 다 이해하지."
동생이 대답했다. "알아. 그거면 충분해."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재준이한테 전화 왔어.”
동생이 놀라며 대답했다. “재준이가 왜 누나한테 전화해?”
“재준이가 너 좋아한대.”
“무슨 말이야- 재준이가 날 왜 좋아해.”
“자기 마음을 제대로 몰랐었대. 그래서 나한테 전화한 거래.”
동생의 얼굴이 꽃이 핀 듯 환해지며 그늘이 사라졌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가상의 동생이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행복했으면 해서.
그래도 되잖아. 여기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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