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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laire 북클레어 Oct 30. 2024

[소설] 완벽한 살인계획서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마지막 피해자의 모습이 나를 아프게한다

나의 집안은 불우했다. 나는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친구는 모든 것을 가졌다. 자상한 남편에 귀여운 아이들. 동창모임에서도 유독 눈에 띄게 행복해보인다. 나도 아직은 저런 예쁜 아이들을 낳을 순 있을텐데. 저런 남편을 가지게되면 나도 저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처음엔 질문으로 시작했을 뿐이었다. 친구의 남편을 만나며 나의 질문은 확신을 가진 문장이 되었다. 친구의 남편을 가지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었고, 친구의 남편과 새로운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친구의 남편이 날 사랑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기호씨는 날 사랑하게 되었지만, 아이들이 있는 가정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행복한 가정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모두 아이들 때문이었다. 귀엽지도 않고 머리도 나쁜 아이들이었다. 기호씨를 닮지않은 아이들이었다. 예쁜 내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못생긴 아이들을 대신 키우고싶진 않았다. 거기다 아이들은 친엄마인 은희의 말을 잘 따랐기 때문에 새 엄마인 나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나도 새엄마가 있기 때문에 잘 안다. 아이들은 엄마가 죽지 않고서야 새엄마를 따르지 않는다. 엄마가 사라져도 새엄마를 따르기 힘들다. 나도 못생긴 애들에게 매번 억지로 웃어주는 일은 잘 못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 엄마와 아이들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계획은 완벽해야 했다. 자살로 위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은희는 한번도 나처럼 힘든 삶을 살아본적이 없기 때문에 우울증에 빠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같이 살을 빼자며 우울증을 일으키는 다이어트 약을 찾아 사다주었는데, 오만하게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어렸을 때 놀러가서 본 은희의 친엄마, 친아빠는 항상 은희가 착하고 예쁘다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년은 쉽게 우울해질 수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은희 몰래 다이어트 약을 차에 타주었다. 천천히 은희의 우울해져 가는 모습이 재밌었다. 기호씨의 말에 따르면, 은희가 화장실에서 우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혹시나 우리의 관계가 들킨 것인지를 걱정하기도 했다. 난 기호씨의 바램을 들어주었다. 난 은희에게 기호씨가 바람을 피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이제서야 은희는 기호씨의 폰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나와 함께 있을 때 종종 전화를 걸어 누구와 함께있는 지, 왜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지를 기호씨에게 묻기 시작했다. 기호씨는 지레 겁을 먹고, 만남을 그만 가지자고 했지만, 은희가 우울증에 걸려서 잠깐 그런 것일뿐, 좀만 기다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은희가 점점 살이 빠지면서 동시에 둘의 사이도 점점 멀어져갔다. 


둘의 사이가 멀어지면서 기호씨와 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이제는 자는 사이를 넘어 깊은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은희가 나약해지자 기호씨는 나에게 기대었다. 은희는 점차 아이들을 돌볼 수 없는 지경까지 되어 시어머니가 들러 집안일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나는 은희에게 시어머니가 집으로 오는 것은 불편할테니 내가 도와준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과 종종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은희와도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모두 계획된 일이었다.


예상 시나리오를 만들어 그동안 세워두웠던 계획을 A4용지 한 장에 정리해보았다. 마지막 점검이었다. 경찰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는 은희의 시신을 보며 자살이라고 생각하고 사건을 정리할 것이다. 우울증이었으니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생을 비관한 은희는 아이들도 직접 죽였을 것이다. 아무런 침입의 흔적이 없으니 아이들을 죽인 용의자는 은희 한 명 뿐이다. 은희의 안타까운 죽음에 웃음이 났다. 은희의 죽음이 나에게 내가 그토록 원하던 행복한 가정을 안겨줄 것이다.


나의 세운 계획의 요점은 이러했다. 은희는 눈을 가리고 작은 방의 문 앞에 서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찾을 수 없도록 옷장이나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에 숨어있으라고 한다. 큰 아들, 해인이는 엄마와 멀리 떨어져 소리를 질러도 티가 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남자 아이라 반항이 거셀 것이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태어나지 얼마 되지 않은 막내 소율이는 처리하기 어렵진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희다. 은희가 내가 원하는 위치에 서있어줘야 한다.


에이포 용지에 적힌 나의 완벽한 살인계획서를 보며 연필을 내려놓았다. 내일은 은희가 죽는 날이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은희 혼자 죽게 냅두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은희에게도 잔인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죽는 날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꽤 낭만적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낭만적인 선물을 해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분명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기호씨와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다면 꽤나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여느 때처럼 아이들을 돌봐주기 위해 은희네로 향했다. 은희는 말도 없이 찾아온 나를 고마워했다. 아이들은 버선 발로 나를 맞아주기 위해 뛰어나왔다. 나의 품에 폭 안겼다. 점심을 먹고, 막내는 낮잠을 청했다. 해인이는 또 숨바꼭질을 하자고 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마지막 숨바꼭질이었다.


해인이는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로 향했다. 해인이에게 이 곳은 엄마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난 세탁기 옆에 있는 빨랫줄을 양손으로 잡고 해인이의 목을 졸랐다. 해인이는 발버둥을 치더니 금방 졸도되어 쓰러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나보다. 이번엔 은희에게로 향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은희는 자고있는 막내를 팔 앞으로 안은 채로 해인이를 찾고있었다. 


“우리 해인이가 어디에 숨었을까~?”


또 웃음이 났다. 해인이는 이제 죽고 없는데. 


은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쪽으로 와. 은희를 작은 방, 문앞에 세워두웠다. 해인이에게 썼던 같은 빨랫줄을 문 꼭대기에 걸어 은희의 목을 감쌌다. 제대로 발버둥조차 치지 못했다. 아니다. 좀 더 생각해보니 막내를 안고있어서 발버둥을 치지 못했던 것이다. 목을 감싸고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손으로 더듬긴 했지만, 막내를 떨어뜨릴까 끝까지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던 사이 숨통은 끊기고 안고있던 막내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다행히 목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내가 굳이 막내까지 손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의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했다. 

딱 한가지, 내가 적은 살인계획서를 빼고는.

어이없게도 이 작은 에이포 용지 한 장이 나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기호씨, 나를 기다려줘요.

우리 이제 평생 함께 살 수 있잖아요.


이 곳에서 제가 직접읽은 내용을 들으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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