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맛 젤리, 하트 젤리 코, 초록 나뭇잎의 머리카락
다양한 눈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초등학교의 운동장은 차가운 눈의 기운이 돔의 모양으로 휘감고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스노우볼 안의 세계처럼 보였다. 스노우볼 안은 시간과 소리가 눈으로 덮여 시간이 흘러가지도, 어떤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여러 모양의 눈사람들이 있었다. 올라프 눈사람, 토토로 눈사람, 곰돌이 푸우 눈사람 등 여러 종류의 눈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 올해 가장 많이 만들어진 눈사람은 이번 연도 갑자기 유행을 타게 된 오리 모양의 작은 눈사람들이었다. 최근 오리모양 틀의 눈사람 집게 장난감의 출현으로 아이들이나 어른,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한 번씩 만들어 보아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다양한 종류의 눈사람들의 성격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눈사람을 만드는 동안 마음이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특징은 오리 눈사람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었는데, 정문에서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오리 눈사람들은 활달하여 요리조리 쏘다니기를 좋아했고, 고학년 건물 앞 스탠드에 나란히 있는 눈사람들은 차분했으며, 저학년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눈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아 다른 눈사람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좋아했다. 같은 모양의 눈사람이더라도 만든 사람에 따라 성격이 이렇게나 달랐다.
많은 오리 눈사람들 중에서도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마리의 특이한 오리 눈사람이 있었는데, 뭐랄까, 다른 눈사람들과 달리 좀 꼬장꼬장한 게 그 요즘 말하는 ‘꼰대’ 할아버지 같았다. 자꾸만 운동장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공부를 해야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며 아이들을 향해 잔소리를 퍼부어댔다. 아무래도 명절마다 친척들에게 덕담인 척 잔소리를 하는 할아버지가 초등학생 손자와 함께 만든 눈사람이 아닌가 싶다.
모든 오리 눈사람의 날개는 항상 뒤를 향해있는데, 희한하게도 오직 꼰대 오리 눈사람의 경우에만 그 모습이 마치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있는 자세처럼 보였다. 꼰대 오리눈사람의 취미 또한 놀이터 눈사람들의 미풍양속 단속이었다. 동네 커플이 만들고 간 오리 눈사람들이 계속해서 부리를 맞대고 쪽쪽대며 뽀뽀하기 바쁠 때마다, 어느새 꼰대 눈사람이 나타나서는 “떽! 남사스럽게 그게 무슨 짓이야! 꽥!”라며 꽥꽥거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매번 꽥꽥댔다.
그런 꼰대 오리 눈사람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골칫거리 눈사람이 있었다. 그 눈사람은 눈사람들 사이에서 젤리 눈사람이라고 불리는 눈사람이었다. 눈에는 샛노란 타원형의 레몬맛 젤리, 코에는 복숭아 맛의 분홍색 하트 모양 젤리 그리고 몸통에는 버튼처럼 동그란 아몬드 초콜릿 세 개가 쪼르르 붙어있었다. 머리 위에는 귀엽게도 작은 초록색 나뭇잎 두 장이 숱이 별로 없는 머리카락처럼 뾱 피어있었는데, 눈사람의 감정상태에 따라 나뭇잎도 함께 움츠러들기도 하고, 좀 더 파릇파릇해지기도 하여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눈사람은 젤리로 만들어진 눈을 끔뻑거렸다. 레몬맛 젤리가 눈을 끔뻑거릴 때마다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눈사람의 눈썹과 입 그리고 손은 모두 나뭇가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입은 양끝 부분의 나뭇가지가 위쪽으로 향하고 있어 입꼬리가 웃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작은 일자 모양의 나뭇가지 눈썹은 눈사람의 표정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좀 더 길고 두꺼운 나뭇가지는 눈사람의 팔이 되어주고 있었다. 눈사람의 크기는 어린 아이들도 양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로 보였다.
젤리 눈사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호기심 많은 놀이터 오리 눈사람들이 가장 먼저 우르르 달려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리 눈사람들이 젤리 눈사람이 태어났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자, 운동장에 있던 모든 눈사람들이 새로 만들어진 젤리 눈사람을 반겨주기 위해 동그렇게 모여있었다. 꼬장꼬장한 꼰대 오리 눈사람이 다른 눈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뒷짐을 진 상태로 뒤뚱뒤뚱 걸어오며 먼저 말을 꺼냈다.
“눈에는 레몬맛 젤리, 몸에는 아몬드 초콜릿이라니. 꽥. 과자를 좋아하는 아이가 만든 모양이구만. 꽥.”
눈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젤리 눈사람이 눈을 깜빡이며 깨어났다. 처음 사용해보는 젤리 눈을 움직여보는 중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거야?” 눈을 깜빡이며 젤리 눈사람이 주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초등학교 운동장. 꽥.” 꼰대 오리 눈사람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오리 눈사람의 꽥꽥대는 소리가 좀 거슬렸는지 젤리 눈사람은 짧은 나뭇가지 눈썹을 젤리 눈에 닿을 정도로 찌푸리며 망설임도 없이 바로 그 이유를 물었다.
“왜 그런 이상한 소리를 내?”
“어떤 소리. 꽥.”
“그 소리, 꽥- 이러는 거.” 젤리 눈사람이 꼰대 오리 눈사람을 따라하며 말했다.
“난 오리모양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오리처럼 행동해야지. 꽥.”
꼰대 오리눈사람은 당연하다는 대답 했다. 둘의 사이는 이미 첫 만남 때부터 좋지않았음을 자리에 있는 모든 눈사람들이 알 수 있었다. 좋지않은 기류에 토토로 눈사람이 나뭇잎 우산으로 둘 사이를 끼어들며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
“꺅! 반가워!!!” 토토로 눈사람이 분위기를 풀자, 이번에는 호들갑 떠는 작은 다람쥐 눈사람이 다가와 인사해주었다.
“반가워-!” 피카츄 눈사람이 인사했다.
운동장 여기저기서 몰려든 눈사람들이 겨울 끝자락에 태어난 젤리 눈사람을 반겨주었다. 젤리 눈사람은 운동장에 있는 모든 눈사람에게 관심을 받았고, 그 기분은 꽤나 좋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한 곳이 텅 비어있다고 느꼈다. 친구들이 인사를 해주고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자, 그 느낌은 좀 더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젤리 눈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마음이 계속해서 매일 조금씩 젤리 눈사람을 괴롭혔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찾아올 때면, 가슴팍의 눈들이 뭉쳐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