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향기가 황금빛으로 물들다

[구잘트, 굿즈로 읽는 아트] 킬리안 x 구스타프 클림트

by 아보퓨레
우먼 인 골드 향수 ⓒ 킬리안

서사의 향기가 금빛으로 물들다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떠올려본다. 그 드라마에는 철없어 보이는 막내아들이 있겠지. 그는 열심히 경영 수업을 받으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무언가 창조해 보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다른 회사에 덜컥 취업해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번의 좌절과 극복.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드라마의 디폴트 값이다. 그렇다면 후반부 내용은? 지금부터는 드라마를 찢고 나온 남자, LVMH(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그룹 창립자의 손자 킬리안 헤네시(Kilian Henessy)의 진짜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헤네시 그룹의 상속자로서 눈 앞에 펼쳐진 꽃길에서 벗어나 파코라반, 알렉산더 맥퀸,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같은 브랜드에서 향수 관련 경력을 쌓더니, 2007년 럭셔리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 킬리안'(By Kilian)을 론칭하기에 이른다.


이 고가의 니치 향수 브랜드는 고급스러운 향도 향이지만, 향수병과 코프레(향수병이 담긴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상품 전체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우치 향수'로 유명세를 탔다. 뉴욕 여행 중 외출용 클러치를 챙기지 않은 킬리안의 아내가 우연히 까만 향수 박스를 클러치로 사용하게 되었고, 그녀의 멋진 임기응변이 킬리안의 손을 거쳐 평생 소장하고 싶은 향수 패키지로 탄생한 것이다. 무형의 향을 시각적 차원으로 변화시켜 예술적인 반열에 오르게 하고 싶었다는 킬리안, 그의 브랜딩 철학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킬리안 헤네시 ⓒ 킬리안 헤네시 인스타그램


킬리안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서사성이다. 킬리안의 향수는 각 제품마다 조향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토리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이름을 향수에 붙임으로써 '후각의 소설', '소설의 후각화'라는 제법 흥미로운 가치를 실현시킨다. 향을 향기로운 것 그 이상으로 만드는 브랜드의 철학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고가의 니치 향수 킬리안이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향이 시각화된 코프레와 흥미로운 서사가 만난 대표적인 예는 2017년 론칭한 향수 '우먼 인 골드(Women in Gold)'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미국 망명 길에 올라야 했던 유태인 여성이 그녀의 가족 소유였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 '우먼 인 골드'를 모티브로 태어난 향수다. 킬리안은 우먼 인 골드를 담는 코프레에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황금빛을 듬뿍 담아 클림트를 기리는 제품을 완성시켰다.


구스타프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


여기에는 회사 경영과 관련된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2016년 이 성공한 향수 브랜드는 돌연 화장품계의 거대 그룹 에스티 로더와 인수합병 계약을 체결한다. 집 나와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더니 이제는 친부모 LVMH를 완전히 벗어나 에스티로더의 양자가 된 것이다. 족보가 바뀌었으니 이름도 바이 킬리안(By kilian)에서 킬리안 파리(Kilian Paris)로 바꿨다. 한편 킬리안의 양아버지가 된 에스티로더 그룹의 상속인 로널드 로더는 유명 미술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최연소 기부자로 등재됐던 이야기와, 2006년 당시 미술품 최고가인 1억 3500만 달러의 금액으로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구매해 자신이 설립한 뉴욕의 노이에 갤러리에 기증한 일화가 유명하다. 에스티 로더는 새로운 가족인 럭셔리 니치 향수 킬리안에게 자신의 미술 구매 내역 중 가장 고가의 그림,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화려함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일까. 클림트의 금빛 장식과 모자이크의 패턴이 감싸고 있는 킬리안 '우먼 인 골드'의 탄생은 그저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1908)>


여색을 사랑했지만 누구보다도 여성을 경외했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는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 출신으로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화가다. 빈에서 그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인데, 그의 인기에 대적할 수 있는 예술가는 모차르트 정도가 유일하다. 거리에서는 가발을 쓴 호객꾼들의 활약으로 모차르트의 존재감이 더 우세하지만, 상점과 미술관에서는 클림트가 단연 주인공이다. 수많은 상품 패키징에 클림트의 작품이 없는 곳이 없는데, 특히 그의 대표작 <키스>와 연관된 상품이 많다. 컵, 머플러, 향초 등 모든 상품에 금빛 입맞춤이 펼쳐진다. 빈이 사랑한 남자 클림트는 국내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키스> 외에도 그에게 국제 미술전에서 일 등을 안겨준 작품 <죽음과 삶>, 베토벤의 음악을 벽화로 표현한 <베토벤 프리즈> 등 보는 순간 '아, 이거 어디서 본 적 있는데!'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우리에게 친숙한 화가다.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1908)>


클림트 하면 절대 여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작업실에 드나드는 모델은 물론 초상화의 대상인 여성들까지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가 죽은 후 열네 건의 친자 확인 소송이 있었다고 하니 살아생전에 얼마나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짐작해봄직하다. 반면에 평생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 클림트 전기 작가들은 그 이유를 이상주의에서 찾는다. 평생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결혼의 중압감을 감당하기에는 스스로 가벼운 사람으로 남기를 원했던 것일까. 사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을 찾는다는 미명 하에 여러 여성들을 홀대해 왔고, 클림트도 그중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디에고 리베라처럼 프리다 칼로와 결혼한 뒤 평생 바람피우며 애간장 다 녹일 바에야, 클림트처럼 결혼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인생에 얹지 않았던 편이 조금은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클림트 작품에는 소위 헐벗은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실 풍경화를 제외하면 다수의 작품에서 옷을 제대로 걸치고 있는 여성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여색만을 밝힌 화가라고 치부하는 것은 성급하다. 1900년대 초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직은 높지 않았을 시기였음에도, 클림트의 그림에서 여성은 여성 그 자체로 존재했다. '유디트'에서는 용맹했고, '다나에'에서는 관능적이었으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시리즈에서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했다. 클림트의 또 다른 이름은 '여인의 화가'이다. 여성을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존중과 경외를 바탕으로 그의 작품 속 여성은 여성 그 자체로 빛나는 주인공이 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유디트(1901)>,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I(1912)>


작품만이 작가의 유일한 언어라고 생각했던 클림트는 평생 자신의 그림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 흔한 자화상조차 그리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작품들과 관련된 그럴듯한 짐작은 많아도 정확한 답이 없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여색을 사랑했지만 누구보다도 여성을 경외했던 화가 클림트. 여성에 대한 그의 진심은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지만, 그의 그림 언어로 표현된 작품 속 여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향해 우아하고 관능적이며 당당하게 미소 짓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사진 출처

https://instagram.com/kilianparis?igshid=162yudwfr215d

https://instagram.com/niezlasztuka?igshid=1imdoqvvlsc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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