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파리에 위치한 방돔 광장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방돔 광장은 나폴레옹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탑과 지금은 파괴된 루이 14세의 기마상과 같은 주제 보다는 보석상들의 출발지, 하이주얼러들의 심장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샤넬의 프리미에르 워치가 방돔 광장의 디자인을 본떠 팔각형의 케이스를 제작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이런 주얼러들의 성지인 방돔광장의 터줏대감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부쉐론이다.
까르띠에도 반클리프아펠도 아닌 부쉐론이 소위 방돔의 골목대장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지만, 사실 부쉐론은 방돔광장에서 가장 오랜역사를 가진 주얼리하우스다. 국내에서는 겹겹이 층을 쌓아올린 레이어링 컨셉의 반지 콰트로 컬렉션을 필두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세뻥, 플럼드펑 컬렉션 등 절정에 다다른 세공력을 바탕으로 원석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는것을 보면, 방돔에서 좀 놀았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믿게 될 것이다.
파리 방돔광장 부쉐론 메종 ⓒ 부쉐론
이렇게 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부쉐론에서 '쁘네뜨르 쉬르 씨엘(fenêtre sur ciel)'을 발표했을 때의 설렘이 기억난다. 평소 좋아하던 설치미술가 제임스터렐의 작품을 오마주 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고, 설치미술과 주얼리의 동행은 생전 처음 듣는 개념이라 어떤 컨셉의 주얼리가 나올지 궁금증이 증폭되기도 했다.
이 목걸이의 디자인는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 미술관에 있는 제임스터렐의 작품 '오픈 스카이'를 오마주 했다고 한다. 오픈스카이의 핵심은 하늘에서 찾을 수 있는데, 작가가 남겨 놓은 일정한 공간을 하늘과 구름, 그리고 빛이 채우면서 관객을 일종의 무경계의 영역으로 이끄는 것으로 유명하다.
쁘네뜨르 쉬르 씨엘(fenêtre sur ciel) ⓒ 부쉐론
부쉐론은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하늘, 그 자체를 담아내는 이번 프로젝트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그리고 방돔의 골목대장답게 완벽하게 미션을 성공해낸다.
먼저 육각형 조각의 티타늄 메쉬로 유연한 캔버스를 만들었고, 그 위에 슬레이트 컬러의 래커페인팅으로 짙은 하늘 빛을, 마더오브펄(자개)과 다이아몬드로 하얗고 반짝이는 구름을 살포시 얹어냈다. 출렁이는 티타늄메쉬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와 컬러스톤을 통해 1초의 시간, 1도의 각도 차이로 전혀다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부쉐론만의 오픈 스카이가 탄생한 것이다. 그래, 오마주는 이렇게 하는
거지.
제임스 터렐, <오픈 스카이(Open Sky )>, 2004 @ Chichu Art Museum
비행기를 타고 화산을 쇼핑한 빛 중독자.
제임스 터렐은 1943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난 설치미술가이다. 언젠가 그의 인터뷰에서 밝히길 자신이 빛의 예술가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했다. 모두 다 맞는 이야기다. 빛의 예술가이자, 설치 미술가이며, 대지 미술가이면서도 범 우주적 예술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지각 심리학을 전공하여 인간의 인식과 심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가 빛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개신교 교파의 일종인 퀘이커 신도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 두가지 조건으로도 어느정도 그의 작품이 설명되는 느낌이다.
그의 시그니처는 단연 빛이다.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예술가로 생각할지 빛 연구가로 생각할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빛에 심취해 있다. 작게는 작은 방 하나의 공간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고, 크게는 분화구 몇개 정도의 큰 대지가 필요할 때도 있다.
제임스 터렐의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인 '로덴 분화구(roden crater)'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 산'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 있는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어릴적부터 하늘과 별을 좋아했던 그의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스페이스 디비전>도 좋지만 빛만으로 완전한 영역을 만들어낸 <간츠펠트 (Ganzfeld)>가 백미다. 관람자는 빛으로 가득찬 미지의 영역에서 금세 공간감과 원근감을 잃게된다. 비행을 즐겨하는 제임스터렐이 구름 속에서 느끼는 무감각을 새롭게 구현했다고 해야 할까. 그는 하늘에서 본 것을 기민하게 땅으로 옮겨 놓았고 관객들은 일종의 화이트아웃(white out)을 느끼게 된다.
"본다는 것은 감각적인 행위이다. 그것에는 달콤한 맛이 있다."라고 말하는 제임스터렐은 시각을 통해 감각을 부여하기도 하고, 그 감각을 앗아가기도 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보는지와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를 빛을 먹는 존재(light-eaters)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그는 빛 먹방계의 다이아버튼쯤 되는 인물일 것이다.
제임스 터렐 <퍼펙트 클리어(Perfectly Clear [Ganzfeld]>, 1991 @ Mass MoCA
그런 빛 성애자 제임스 터렐이 가장 오랜시간을 공을들이고 있는 작품이 있다. 1979년에 시작해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그의 마스터피스 로덴 크레이터(Roden Crater)다. 그는 이 땅을 쇼핑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너른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 외곽의 사화산 지대를 비행했다. 그는 이 곳에서 거대한 육안 관측소를 만들기 위해 수십년간 작업하고 있고, 이 작품으로 인해 그에게 건축가의 칭호마저 부여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로덴 크레이터 프로젝트로 인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에게 빛은 과연, 도대체 무엇일까? 뉴요커의 평론가 캘빈 톰킨스는 '그의 작품은 빛이나 빛의 기록이 아니라 빛이다.' 라고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설명했다. 제임스 터렐에게 빛은 그저 빛이었는데, 그저 빛이었을 뿐이었는데 너무 많은 사회적 요인과 배경을 토대로 그를 판단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라는 어린 장금이의 대사가 스쳐 지나간다. 이제 그를 더이상 의심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평생 빛만을 연구하고 꿈꿔왔던 제임스 터렐, 그의 하늘에 오늘도 따스한 빛이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