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늦잠을 실컷 잔 후 뒤늦게 나갈 채비를 한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별생각 없이 단조로운 블랙 컬러 양말을 신으려던 찰나, 불현듯 대학생 때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여러분, 오늘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거든 본인들의 옷장을 한 번 열어보세요. 만약 여러분의 옷장이 컬러풀한 의류들로 채워져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충분히 다채로운 인생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매우 칙칙한 사람이다. 뒤꿈치까지 신다 만 양말을 뒤로하고 잠시 상상에 잠긴다. 지금 이 거무튀튀한 양말 말고, 조금은 더 스타일리시한 양말이 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상상 속 나는 시크한 무채색 룩에 화려한 도트 양말로 포인트를 더해 평소 관심 있던 그녀의 시선을 빼앗아 보기도 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원색 스트라이프가 교차되는 독특한 양말을 트리에 걸어 형제들 중 가장 크고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보기도 한다.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교양 수업의 한 구절이 떠오른 것도, 외출 준비를 하다 말고 시답잖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 것도 내가 데이비드 라샤펠과(David Lachapelle)이 참여한 해피삭스(Happy Socks) 광고를 봤기 때문인듯싶다.
해피삭스 광고 사진 ⓒ 해피삭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 세 명이 정면을 응시한 채 점프하고 있다. 아니, 양말은 신었으니 다행히 실오라기 하나 정도는 걸쳤다고 하는 게 맞겠다. 자칫 선정적인 캠페인에 당황하기 쉽지만,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직설적인 표현방식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을 것이다. 감상자들을 대개 그의 작품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관람하게 된다. 먼저, 선정적이거나 난해한 작품이 관람자의 시선을 빼앗는다. 그리고 시선을 빼앗긴 관람객은 작품 안에서 벌이지는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갖고, 이해의 단서를 찾기 위해 작품 곳곳을 살핀다. 끝내 감상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처음 들었던 남사스러운 생각과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제품 혹은 캐릭터만이 신선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기억된다. 강렬한 끌림과 묘한 흥미, 그리고 진한 여운. 세계적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라샤펠의 특유의 작품 표현이 만들어 낸 관람 방정식이다. 거기에 화려한 해피삭스 양말까지 신겨준 격이니, 헤르메스가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것 못지않은 착용감이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 광고 속 주인공들도 양말만 신은 채로 중력을 거스르며 훨훨 날고 있다.
해피삭스 광고 사진 ⓒ 해피삭스
해피삭스는 스웨덴의 양말 브랜드이다. 북유럽 디자인의 성지 스톡홀름에 본사로 두고 있다. 마리메꼬 특유의 색감과 패턴을 양말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으면서도, 양말 한 켤레마다 이케아의 쇼룸처럼 넘치는 개성을 갖고 있다. 해피삭스는 특히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디즈니, 비틀스, 스눕독 등 세대와 장르 불문한 콜라보들이 양말을 캔버스로 펼쳐진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출신의 팝아트 거장들 앤디 워홀과 키스 해링의 작품을 양말에 가득 담아냈던 프로젝트도 인상 깊은데, 이 정도면 콜라보를 위해 회사를 설립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데이비드 라 샤펠은 해피삭스의 창의와 도전이라는 정체성을 하나의 캠페인에 잘 버무렸다. 이번 데이비드와 콜라보는 총 아홉 장의 사진과 구 분짜리 단편영화로 펼쳐졌는데, 비교적 얌전한 사진은 차치하더라도 'Exorsocks-HappySocks'라는 제목의 9분짜리 영상은 속된 말로 야하고 잔인하다. 만약 해피삭스의 CEO가 이것마저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해피삭스는 예술이 주업이고, 양말은 부업인 브랜드임이 틀림없다.
데이비드 라샤펠, <Archangel Michael: And No Message Could have Been Any Cleare>, 2009
하와이의 외딴섬으로 홀로 들어간 예술가
데이비드 라 샤펠은 미국 동부 코네티컷 출신의 사진작가다. 코네티컷은 미국 사립학교의 모범생 룩으로 대표되는 프레피 룩이 시작된 곳으로, 열다섯에 학교를 떠난 그의 학창 시절의 무드와는 대비되는 동네 레퍼런스인 점이 흥미롭다. 그가 비록 교실에서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교실 밖 세계에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미술계 최고의 스타 앤디 워홀이 한눈에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그를 당시 유명 매체인 인터뷰 매거진(Interview Magazine)과 작업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었다. 더할 나위 없는 화려한 데뷔였다. 비슷한 시기 앤디의 또 다른 원픽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바스키아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두 명의 천재들이 써내가는 예술계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라샤펠이 데뷔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앤디 워홀도 세상을 등졌지만 처음 앤디 워홀이 데이비드에게 했던 한 문장의 조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그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되, 모두가 좋아 보이도록 만들면 된다."
데이비드 라샤펠, <Rebirth of Venus>, 2009 @ V&A
데이비드 라 샤펠의 작품에는 섹시함과 화려함, 경건함과 진지함처럼 이질적인 두 부류의 공존이 뿜어내는 묘한 쾌감이 있다. 더불어 초현실적인 설정에 더해진 풍자적 콘텐츠는 관람자를 사유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이 상업적 사진임에도 예술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다. 그는 언제나 의미 있는 화려함과 가치 있는 선정성을 추구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다소 과한 콘셉트에 거부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 활동이 대중적 호불호와는 별개로 강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관객의 시선을 뺏는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잡지 포스터를 넘어 잡지 기획, 뮤직비디오 감독,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등 과감하게 다양한 분야로 활동 범위를 넓혀감에도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한국에서도 2016년 말, 한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세계 전반을 훑는 대규모 특별전이 열렸고, 그의 인기에 힘입어 전시는 계획보다 석 달가량 연장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라샤펠, <Seismic shift>, 2012 @ Alex Daniels - Reflex Amsterdam
예술가의 성공에서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는 필수 불가결한 것일까. 2006년 라샤펠은 돌연 상업 예술 분야에서의 잠정 은퇴를 선언하고 하와이의 외딴섬으로 거처를 옮겼다. 건강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순수 예술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라샤펠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거나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에 집중한다. 성과와 스트레스를 저 멀리 미국 본토에 두고 자유롭게 활동하지만, 그러면서도 라샤펠 특유의 초현실적 화려함은 잃지는 않는 점이 흥미롭다. 그가 주류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주목받고 있는 이유이다. 성공을 이루고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하와이로 이주한 이 예술가를 보며 생각한다. 그는 아직 스스로를 스승 앤디 워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한낱 상업 사진작가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싶은 걸 하되 모두가 좋아 보이도록 만들려는 감각 넘치는 예술가의 계속되는 도전. 그의 삶의 방식이 그의 작품 세계만큼이나 개성 넘치기에 이를 지켜보는 팬들은 오늘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