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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Sep 23. 2024

여보, 나 나갔다 올게!

엄마가 글쓰는 시간

한 유튜브 강연에서 오은영 박사는 자신이 임신을 했을 때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론 일에 대한 걱정에 맘 놓고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사회 진출의 기회가 많아진 요즘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아직도 여성의 삶과 더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의 상황은 오은영 박사보다 조금 더, 아니 아주 많이 초라했다. 나는 당시 독일에서 석사 졸업 후 집에서 놀고 있는 말 그대로 ’백수‘였기 때문이다.


석사 논문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앞으로의 진로를 묻는 독일인 담당교수에게서 “자네는 좋은 한국회사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번아웃은 시작되었다. 독일에 온 후 지난 오 년가량 나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도서관에 가고 수업이 끝나도 남들보다 늦게 집에 가곤 했다. 용기를 내 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독일어 책을 달달 외우기도 했었다. 이 모든 건 뒤늦게 독일 유학을 선택한 무모한 나의 결정과 독일에서 나의 성과를 증명해내고자 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다음에 무엇이 있을지는 생각할 수 없었다. 지금을 해내지 못하면 그다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교수의 말은 나의 한계를 정해버렸다. 사실 그까짓 거! 하고 넘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 외국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여자로서 견뎌야 했던 설움과 당시 충만했던 자기 연민이 합쳐져 나는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동안은 다시 일어서려고도 해 봤다. 하지만 전화벨만 울려도 온몸이 경직되는 경험을 한 후 나는 그냥 주저앉아있기로 결심했다. 당시에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상황이 연일 악화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나는 온 세상이 우왕좌왕하던 그 시점에 집에 있는 게 혼자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만큼 가라앉아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남편이 다시 직장으로 나가자 나에겐 다른 강박이 생겼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강박적으로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세탁물이 쌓여있거나 설거지가 늘어져있으면 나는 쉬지도 책을 보지도 못했고, 쉬면서도 빨래가 언제 끝나나,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등을 생각하느라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도저도 아닌 생활을 보내며 마음 한편엔 자기혐오가 쌓여갔다. 독일에 유학까지 와서 결국 이렇게 돼버리다니, 결국 취집을 온 것 아닌가 하며 좌절을 하다가 요즘 같은 시대에 이민을 와 자신의 꿈을 펼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게 다 내 ‘노오력’이 부족해서였다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겼다.


물론 그동안 구직을 위한 노력을 제외하곤 다른 모든 것을 시도해 보기도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려 사업자등록도 내고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한두 푼이라도 벌어보고자 헐값에 사진과 그림이 팔리는 스톡이미지 사이트에도 그림을 팔기 시작했다. 일은 간간이 들어왔지만 매달 대출금을 갚고 생계를 꾸리며 외식을 할 수 있게 하는 남편의 월급에 비하면 개와 개벼룩만큼 차이가 컸고 그마저도 정기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백수는 시간으로 그 차이를 갚아야 했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는 전업주부로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면서 자발적으로 남편의 오분대기조 같은 삶을 살았다. 남편은 오히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독려해 주었지만 냉장고가 비어있거나 빨랫감이 쌓이는 것의 책임은 지지 않았다. 소설 쓰는 사람에겐 ‘미용티슈’가 아닌 ‘두루마리’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은 비단 소설뿐만 아니라 직업으로서 어떤 일에 매진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미용티슈 같은 시간을 뽑아쓰면서 이도저도 아닌 시간 조각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그동안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글쓰기를 통해 무겁게 가라앉대책없이 붕 뜨지 않고 바닥에 두발을 딛고 서는 법을 다시 배워갔고 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 원하는 만큼 일은 풀리지 않았지만 주변에 ‘파울랜서(’게으르다‘는 뜻의 독일어 faul과 ‘자영업자(freelancer)’의 합성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질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글쓰기를 취미로 말할 만큼 익숙해질 무렵 우리에겐 아이가 생겼다.




“그럼 나갔다 와.”


출산 후 집에만 있는 게 지겨워 불만을 토로하면 남편이 늘 내게 했던 말이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남편은 자주 ‘나갔다’ 왔다. 퇴근 후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캠핑을 하고는 들어왔다. 하지만 출산 후 내게 혼자서 자유롭게 ’나갔다 오는‘것은 어쩐지 남편만큼 쉽지가 않았다. 일단 운전을 할 수 없기에 대중교통을 타야 했고 몸이 아직 전만큼 회복되지 않아 체력이 쉽게 떨어졌다. 게다가 모유수유 중인지라 아기의 밥때에 맞춰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마음의 장벽이 너무 컸다. 아직 엄마가 된 지 반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엄마라는 이름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일을 해도, 일을 하지 않아도, 밥을 먹고 길을 걸을 때도 나는 엄마였다. 엄마라는 이 간단한 단어에는 모든 것을 짊어지라는, 아이 때문에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는 그리고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리라는 무언의 기대감이 함께 실려있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엄마라는 이 역할을 정말 잘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아닌 나'를 점차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결국 그 장벽을 허물만큼 마음이 미어터질 듯 답답한 날이 왔다. 그렇게 큰 맘을 먹고 남편에게 나갔다 오겠다며 재킷을 걸치고 문 앞에 선 내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가슴팍엔 아이 매지 않고 기저귀 가방도 들지 않은 채 그저 한 손에 아이패드와 키보드 그리고 노트 한 권이 든 가방만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서려는데 어쩐지 덜컥 겁이 났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혼자서 거리를 걷는 그 당연한 행위들이 두려웠다. 그러나 나는 나가야 했다. 그것도 혼자서 야했다. 남편과 아이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섰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영영 그 이름에 갇힐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찾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선 후 버스를 타고 세정거장 떨어진 집 근처 카페에서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멀리 가지 못했다) 두 시간가량 글을 썼다. 출산 후 아이와 이렇게 오랫동안 또 멀리 떨어진 것도 처음이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고는 배경화면에 아이 사진을 보고 순간 놀랐다. 출산 후 처음으로 이 두 시간 동안 스스로가 엄마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그 후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아이가 너무 반가웠고 지긋지긋했던 집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그날 매주 한 번씩 ‘나갔다 올 것’을 선언했다.




하지만 엄마의 시간은 늘 뺏기기 쉽다. 특히 사회에서 인정받는 일을 하지 않는 엄마의 시간은 아주 쉬운 먹잇감이다. 아이의 병원 예약, 집수리, 남편의 주말 업무 등 특별한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뺏기는 것은 나의 시간이다. 미용실이나 치과 예약을 했다가 취소한 적도 부지기수이다. 그렇게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운동에 가지 못했고, 저번주에는 글을 쓸 시간을 뺏겼다. 시간을 보장받는 것은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과 같다. 엄마는 직업이 아니고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엄마의 글쓰기는 존중받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힘을 내서 내 시간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나를 지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커리어라는 단어는 ‘경주를 달리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커리어는 일생에 걸쳐 나아가는 ‘경로’ 또는 ‘진행’을 의미하며 그것은 생애에서 어느 정도 지속되는 것을 뜻한다. 게다가 커리어는 단지 고용 상태에 있는 것만이 아닌 ‘더 높이 올라가는 것’과 ‘지속적인 노력’의 개념이 포함된다고 한다**. 엄마라는 커리어는 없다. ‘지속적인 노력’에 대해서는 엄마만 한 일이 없지만 엄마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고 해서 엄마가 커리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이 엄마의 커리어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시간이 글로서 모이면 그것은 빼앗긴 시간의 파편이 아니라 돌보고, 느끼고, 교감하고, 사랑하는 시간이 모인 창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엄마는 가끔은 나가야 하고 혼자가 되었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여보, 나 나갔다 올게!”





* 돌봄과 작업 2, 김유담, 정아은 외


** 커리어 그리고 가정, 클라우디아 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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