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통화를 하는 남편의 들뜬 목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온다. 나는 침실에서 아기 옆에 눕힌 채 재우고 있는 중이었다. 아빠의 큰 목소리에 잠에 들려던 아이가 움찔하며 어깨를 들썩인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휴가’가 아니라 ‘육아휴직’ 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고 싶었지만 아기를 재우는 중에는 숨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나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육아휴직 며칠 전부터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는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남편은 출산직후 나의 산후조리를 돕기 위해 한 달간 육아휴직을 냈었다. 그 후로 사석에서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며 그 한 달을 평하기도 했다. 아이를 돌보고 아내를 위해 봉사할 수 있었다며 말이다. 평화롭게 함께 아침식사를 하며 시작하는 하루가 참 값지더라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자리에 있던 두 여자의 낯빛이 싸늘해지면서부터였다. 나에게 출산 후 한 달은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온몸은 아직 임신과 출산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데 수면부족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남편의 코로나 확진, 나와 아이의 열감기 그리고 젖몸살 등의 이벤트로 정말 하루하루를 견뎌온 시간이었다. 함께 있던 다른 이는 나보다 더 최근에 출산을 한 남편의 직장동료였다. 그녀는 지난밤에도 잠을 설친 듯 눈가에 다크서클을 길게 드리우곤 말했다.
“하하. 과연 네 부인도 너와 같은 생각일까…”
그날 저녁 아이를 재우고 부엌에서 이유식을 만들던 중 남편이 문을 슬쩍 열고 들어왔다. 남편은 며칠째 첫 가족 여행지를 찾던 중이었다. 그가 건네준 핸드폰 화면에는 전면 파노라마 창이 시원하게 뚫린 숙소가 보였는데 구석에 난로가 있는 아늑한 거실에 그 옆에 따로 달린 다이닝실,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마당까지 어딜 보나 완벽한 숙소였다. 심지어 위치는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스위스였지만 가격은 독일이나 이탈리아보다 저렴했다. 나는 다시 심드렁한 얼굴로 남편에게 핸드폰을 돌려줬다. 불안하니 다시 찾아보라는 무언의 눈짓과 함께 말이다. 그러고는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아기를 깨울까 다시 문을 닫으려는 찰나에 남편은 문사이로 다리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내가 후기도 다 읽어봤는데 이 사람 슈퍼호스트에다가 최근 후기도 일주일 전이였어.”
나는 문을 닫으려다 말고 남편을 다시 쳐다봤다. 숙소를 예약하려면 후기 중 나쁜 것부터 읽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평소 물건을 사도 후기를 잘 읽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래도 아기와 첫 휴가다 보니 나름 신경을 쓴 것 같았다. 평소 숙소 예약은 내 담당이었지만 이번만은 남편에게 맡겨보기로 한만큼 그를 믿어주기로 했다. 알겠다며 다시 문을 닫으려는데 문틈 사이로 남편의 말이 빠르게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어차피 외식하려고 해도 근처에 레스토랑도 별로 없어. 어디 산속에 있는 산장인 것 같거든. “
이건 휴가 가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내맘도 모르고 들뜬 남편을 보면 정말 이럴 땐 아무리 몇 년을 함께 살고 심지어 함께 아이를 낳아도 어쩔 수 없는 '남'이구나 싶다.
그렇게 우리는 스위스의 한 산장으로 이 주간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남편의 두 달간의 육아휴직이 시작된 후 일주일 만이었다. 육 개월 된 아기와 6시간 동안 차를 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차멀미가 심한 푸들도 함께였기 때문이다. 우선 세 시간을 달린 후 값싼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다시 세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 물론 스위스 국경을 넘기 전 독일에서 이주동안 어른 둘 그리고 아기에게 줄 이유식 재료 그리고 강아지의 사료와 간식까지 차가 터질 만큼 장을 본 후였다. 무릎 위까지 자란 풀숲을 가르며 도착한 숙소는 남편이 꿈에 그리던 곳이었다. 반경 1km 안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숲 속의 오두막집 말이다. 도시에서 자란 나에겐 소떼 때문에 파리가 끊이지 않고 마을 구멍가게라도 가려면 비탈길을 이십 분 넘게 내려가야 하는 오지와 같았지만 넷이서 함께라니 왠지 오붓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짐은 대충 숙소 구석에 펼쳐놓고 바로 외식을 하러 가거나 맥주를 한 캔 따곤 했겠지만 우리는 그새 부모가 되어버렸다. 도착한 후 운전하느라 찌뿌둥한 몸을 펴기도 전에 우선 남편은 이제 막 기기 시작하려는 아기를 위해 집안에 위험한 물건이 없는지 치워놓고 챙겨 온 아기 침대를 설치했다. 나는 그동안 집에서 바리바리 챙겨 온 이유식 도구들을 꺼내고 이유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공동육아가 시작된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해맑은 푸들만 스위스의 풍경을 만끽하며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래도 집을 떠나니 좋았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육아, 좋은 경치라도 보자 하며 떠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침식사를 함께하고 아기가 낮잠을 자는 동안에는 함께 앉아 따로 책을 읽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앞산과 뒷산을 산책하고, 날이 덥지 않으면 시내나 호숫가로 차를 타고 내려가 산책을 했다. 햇살이 내리쬐면 동네 작은 박물관으로 몸을 숨겼다. 구멍가게 같이 규모는 작았지만 입장료는 어느 국립박물관에 못지않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나름 재미를 찾기도 했다. 아이도 여행을 온 후 부쩍 빨리 자라는 듯했다. 분명 도착한 날 처음으로 네발기기를 시작했는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숙소를 사방으로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웃음도 부쩍 많아져 엄마 아빠만 봐도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남편도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기를 전보다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나에게 아이를 달래는 법이나 기저귀를 가는 팁을 전수해 줄 지경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육아는 육아였다. 매일매일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하는 일상은 스위스에서도 이어졌다. 아이가 새벽닭보다도 일찍 깨는 날이면 남편과 나는 누군가가 먼저 일어날 때까지 서로를 발로 흔들었다. 화장실을 간다며 아이를 맡기면 한동안 소식이 없는 상대방을 문 앞에서 애타게 부르며 재촉하기도 했다. 아이가 낮잠을 안 자고 보채면 누가 재울 건지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기저귀 샌 아기를 중간에 두고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간 범인이 누구냐며 서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행복이고 삶이었다. 아빠에게 안겨 나를 보며 환히 미소 짓는 아이를 보며 아홉 달 동안 아이를 품으며 바라왔던 바로 그 모습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그제야 모든 남중 가장 나의 ‘편’인 존재는 남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혼자서 아이를 돌보았던 지난 오 개월 동안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남편이었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그리고 산후도우미조차도 해줄 수 없는 것은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아빠의 빈자리는 그저 육아를 돕는 것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사랑해서 태어난 아이를 두 사람이 온전히 힘을 합쳐 돌보는 것, 그게 아빠의 자리이자 역할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것만큼 유토피아적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독일에서도 남편들이 한 달 이상 육아휴직을 내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운이 좋아서든 아니면 지내는 환경이 좋아서든 아니면 둘 다 인지는 몰라도 남편은 총 석 달간의 육아휴직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휴직기간 동안 급여가 나오지 않아 저축통장에는 구멍이 난 듯 돈이 줄줄 샜다. 그러나 정부지원금은 우리의 대출금과 식비를 감당할 정도였고 다행히도 남편은 일터에서 진급이 불가능해지거나 자리가 없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하러 가고 나는 하루종일 육아를 맡는다. 아이는 그동안 집고 서기를 시작했고 온 집안의 서랍을 열기 시작했다. 아빠가 집에 오면 강아지와 함께 재빠르게 기어서 아빠를 맞으러 간다. 우리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이런 삶이 평범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있는 모든 가정에 아빠가 있는 삶이 현실이 되기를 꿈꿔본다. 출산을 한 엄마 곁에 아빠가 있고 아기의 첫 걸음마를 아빠가 동영상이 아닌 실제로 보는 삶이 당연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빠가 잠든 아이의 얼굴만 봐야 하는 것이 아닌 한 시간 일찍 퇴근한 아빠와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이 가능한 일상이 대부분의 가정에 꿈이 아닌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순진하고 현실성이 없이 들려도 그냥 그렇게 꿈꿔본다. 모든 아내에게 남편이 남이 아닌 편일 수 있게 느껴지는 삶을 말이다. 아이와 함께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삶이 아닌 서툴러도 남편과 함께 하나부터 열까지 헤쳐나가는 삶 말이다.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모두들 단념하고 사는 그 평범한 삶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