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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Oct 07. 2024

우아하진 않아도 이토록 경이로울 수도 없는

아이를 통해 만난 세계

좁쌀같이 작고 귀여운 이가 네 개째 나오자 우리는 아이의 양치질을 시작했다. 고무골무가 아닌 칫솔에 치약을 묻혀서 하는 제대로 된 양치를 아이는 제법 의젓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욕실에는 아빠 칫솔, 엄마 칫솔 그리고 아기칫솔까지 칫솔 세 개가 나란히 놓였다. 그렇게 귀여운 아기의 칫솔을 보는데 아주 잠시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다. 보통 칫솔을 두 달에 한 번은 바는데 이제 아이몫의 칫솔값이 늘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작년 겨울 태어난 아이는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사이 집안 곳곳 존재감을 늘려갔다. 부엌에는 아이그릇, 욕실에는 아이 수건과 칫솔, 거실에 있는 온갖 장난감들과 침실에 놓인 아기 침대까지 우리 집은 그야말로 아기에게 점령당한 꼴이 되었다. 물건이 늘어난 다는 것은 지출도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는 매일 입는 기저귀뿐만 아니라 철에 맞춰 새로운 옷이 필요했고 분기별로는 아이의 발달을 도와주는 장난감도 들여놓아야 했다. 그 외에도 이동할 때 필요한 카시트, 유모차, 잠잘 때 필요한 잠옷과 침대 그리고 침구까지 아이의 존재감은 우리 부부의 지갑사정에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아이가 우리에게 가장 많이 가져가는 것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그야말로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라는 존재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태어날 때까지 아기는 내 몸 안에 있다가 태어나서는 내 곁에서 하루 24시간을 머문다. 잠잘 때는 제외한다고 쳐도 자는 아이를 두고 외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우리는(최소한 부부 중 한 명은)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아기와 모든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우아함을 포기하는 것이다. 아마 부모가 된 모든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예전처럼 우아할 수 없었다. 주말 오후 차를 한잔 마시며 책을 볼 여유 따윈 없다. 저녁 늦게 팔짱을 끼고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바에서 마티니를 시키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깝다. 옷에 이유식이 묻은 채, 샤워를 언제 했는지 가물가물해도 아이가 자는 시간에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하루 여섯 시간 이상 아이가 깨지 않고 자는 날은 정말 신에게 감사를 드릴 정도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이 지금처럼 이토록 경이로웠던 적은 없었다.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건 없는 사랑이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아이는 온몸과 마음을 다해 나와 남편을 믿고 의존하사랑하고 있다. 이 작은 아이는 우리와 있는 시간을 진실로 행복해하고 우리의 존재만으로도 함박웃음을 지어준다. 아이는 내 몸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지만 오히려 나를 가르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나를 돌보는 일, 배우자와 소통하는 일 그리고 세상을 보는 법을 새로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통해 새로운 나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은 한마디로 ‘Wunder(경이로)’ 그 자체였다.


사랑을 알기 전과 후의 세상이 다르게 보이듯이 나는 아이를 통해 세상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이렇게 많은 아이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부모들이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도 이전에는 내게 이토록 생생하게 와닿지 않았다. 이 세상에는 태어난 사람들 만큼 많은 부모가 있다는 이 평범한 사실이 말이다. 그것은 작게는 이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던 기저귀 갈이대, 유모차와 휠체어를 위한 보행로, 저상 버스 그리고 레스토랑에 아기의자가 있다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임신과 출산을 바라보는 일, 아빠가 육아휴직을 내는 것 등이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봐온 또 다른 아이가 한 명 있다. 그것은 바로 남편의 큰 조카이다. 세 살 때 만난 작은 꼬마 아가씨가 이제는 열네 살이 되었다. 이제 제법 숙녀티가 나는 조카와 며칠 전 저녁식사를 하다 우리는 ‘아기’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중에 아이를 낳고 싶냐는 질문에 한참을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던 조카는 깊은 푸른색 눈동자를 빛내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반려자는 찾고 싶지만 아이는 굳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식탁에 있던 아이의 엄마, 아빠 우리를 포함한 가족 누구도 그런 아이의 대답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무렵 보이그룹 사진으로 방을 도배했던 나와 달리 조카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사진을 인화해 직접 액자를 걸어놓는 사랑스러운 아이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늘 가족을 이야기하는 이 소녀가 나중에 자식을 갖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사는 것이 나는 기쁘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과 인생에 대한 계획을 만들고 지켜갈 수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그래야 하니까, 모두들 그러니까 혹은 누가 그래야 한다고 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럴 수 있는 세상에서 앞으로도 조카와 내 아이가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세상은 쉽게 오지 않았고 또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은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최대한 늦게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서른 중반에 부모가 되어서 다행인 것은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아이가 없던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 목욕물이 든 욕조를 들다가 허리가 삐끗하고, 평생 느껴본 적 없던 무릎통증에 당황하며 우린 나이가 너무 많다며 한탄을 하다가도 한편으론 지금 아이가 찾아와서 너무 다행이라며 안도를 하곤 한다. 내 인생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을 때 찾아온 아이는 축복이었다. 아이가 생겨 행복하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반기를 들며 아이가 주는 행복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면서도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을 응원할 수 있는 것도 아마 우리 부부가 이 두 가지 모두를 겪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아이는 우리 곁에 평생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남편과 나는 종종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사실 앞으로 십 년이 거의 전부라고 이야기하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모보다는 친구들이 더 중해질 테고 우리와 얼굴을 마주대고 보내는 시간보다 학교나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가 되든 간에 이 아이는 우리의 품을 떠나 세상으로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지금은 한순간 한순간 결코 돌아오지 않을 우리 부부의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는 아이의 과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아이와 함께 보내는 매일매일은 나중에 아이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언젠가 자신의 기억 속 부모의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 엄마 아빠는 나와 늘 행복했어’로 기억하기를 바란다. 매 순간 우아하지는 못해도 경이로 가득했던 일상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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