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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May 10. 2021

Y - Yin und Yang (음과 양)

결코 섞일 수 없는 존재

EP. 25

Y - Yin und Yang



 다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 봤을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예상치 못한 말을 듣거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부딪혔을 때, 시야가 흐려지고 머리가 멍해지는 경험 말이다. 그 이유는 난처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겪어서 있수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잠시 판단력이 흐려져서 일 수도 있다.


스물둘, 생에 처음으로 인턴십을 하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원래 전공인 디자인 대신에 마케팅 부서에 지원을 했다. 전공과 달라 지원부터 어려움은 있었지만 다른 이들과 동등한 시험과 면접을 거쳐 마침내 마케팅 부서의 업무를 경험할  있게 되었다.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룰  안다는 이유로 종종 부서와 맞지 않는 일을 떠맡게  적도 있었지만, 내가 속한 곳은 마케팅 부서임이 틀림없었고 주요 업무 또한 부서의 이름과 걸맞은 일들이었다. 정해진 근무 기간의 절반이 지나자 처음엔 서툴러서 진땀을 흘려야만 했던 업무에도 익숙해졌고, 낯설었던 회사는 이제 곳곳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회사에는 '사수-부사수' 문화가 있었는데, 사수는 보통  명에서  명의 인턴십 학생들을 '부사수' 두고 있었다. 당시 나의 사수는  말고도 다른 부사수를 하나 두고 있었는데, 같은 남자에 심지어 동문이었고 전공도 마케팅이었다. 업무  틈틈이 나의 사수가 그를 보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는 서둘러 담배를 챙겨 사수를 따라나섰다.


광화문의 벚꽃과 목련이 모두 지고, 초록색 이파리들이 하늘을 빽빽이 메울 무렵 나의 사수는 나와 다른 부사수 T  곳에 불러 모았다. 회사에서 입찰할 프로젝트가 생겼는데 이번에 부사수 둘이서  기획서의 초안을 직접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일을 하기 시작한 후로 처음으로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그동안의 업무는 사실 주로 사수의 잡일을 맡아하는 정도에 그쳤었기 때문이다. 물론 원래 하던 잡일도 이어가야 했지만 드디어  손으로  기획서를 만들어   있다는 생각에 절로 힘이 났다. 마감 기한을 얼마 남기지 않고 주어진 업무였기에 나와 T 휴일에도 회사에 출근하며 정성을 다했다. T 마케팅 전공자였기에 공모전 참가 경력도 있어 기획서를 작성하는데 익숙해 보였다. 반면 나에게는  기획서였다. 하지만 방향과 양식은 달라도 디자인과에서도 수많은 기획서를 작성한다. 초고를 만들고  안을 채울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데 나는 결코 T 뒤처지지 않았다. 둘이서 아이데이션을 마치고, T 기획서의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을 때면 나는 기획서 디자인을 도맡아 했다. 사실 나와 T 지난  개월간 별다른 대화도 해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서먹한 사이였다. 하지만 이번 기획서를 둘이 맡아 진행하는 동안 우리 둘은 상당히 좋은 팀이었다.


정해진 일주일이 지나 제출일이 다가왔다. 제출하기 직전 사수는 우리가 만든 기획서를 검토해보고는  가지 수정 사항을 알려주었지만, 우리가 만든 기획서의  틀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짧은 기간임에도 기획서를  만들었다며 우리 둘을 칭찬했다. 사수는 내게 디자인도  되었다며 따로 칭찬의 말을 건넸지만, 별로 감흥은 없었다. 나에게는 디자인은 부수적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마케팅부 소속 인턴으로서  기획서를 제출하게   자체가 나에게는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오탈자를 수정하고 기획서를 인쇄해 퀵으로 보내면 끝이었다. 기획서는 마지막으로  팀원의 퇴고를 거쳤다.  자리에는 사수와 T 그리고  이외에도 우리 팀의 팀장과 과장이 함께였다. 둘이 작성했다 해도 회사의 이름으로 제출되는 기획서였기에 작성자는 담당 직원인 사수와 팀장, 그리고 과장의 이름으로 쓰였다. 사수는 본인의 이름을 적고는 마지막으로 부사수 T 이름을 함께 적었다. 하지만 나의 이름은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다. 사수는 인턴 이름이 둘이나 실릴 필요가 없다고 이유를 댔지만,  하나가 내가 아닌 T 되어야 하는 이유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사수에게 제출할  나와 T 우리의 이름을 마지막에 적어냈었다. 조금 전까지 뚜렷하게 기획서에 적혀있던 나의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평소와 달리 사수는 나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허공을 응시하며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나처럼 의문을 갖던 T 또한 이내  시선을 피하려는  모니터만 바라봤다.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떳떳하지 못했던 그들의 눈빛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입찰에 성공했고, 그것을 맡게 된 이는 나의 사수와 T 단둘이었다. 나의 이름과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제인 양, 들어오세요."


K 교수의 호출에 들어선 강의실 안에는 K 교수와 부교수 둘 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미소는 보통 좋은 뜻이다. 몇 분 전 열성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제인 양, 정말 인상적인 발표였어요. 발표 준비를 정말 열심히 했군요! 물론, 우리가 이전에 이메일로 이미 이야기를 했듯 충분한 인터뷰 대상자를 구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인터뷰를 성실히 수행했고, 그로부터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했다는 것은 당신의 발표를 통해 잘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당신은 질의시간에 우리가 던진 모든 질문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주었어요."


K 교수가 속사포처럼 칭찬의 말을 내뱉는 동안 옆에 앉은 부교수는 미소 띤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논문 심사를 끝내지 못해 종합 점수를 알려줄 수는 없지만, 오늘 당신의 논문 발표 점수는 1.3(독일 대학에서 1에서 1.3까지는 최고점을 뜻한다.)이에요! 축하해요. 제인 양!"


발표를 마쳤을 때 후회는 없었지만, 이렇게 좋은 결과와 반응은 꿈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 높은 점수보다 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K교수의 웃는 얼굴이었다. 심지어 그의 칭찬이 끊이지 않는 바람에 나는 연달아 “고맙습니다(Vielen Dank)”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이어 나의 논문 성적표에 서명을 했다. 성적표를 건네받기 위해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 독일에 온 후 사 년간의 풍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독일어를 처음 배우고, 어학 시험을 보기 위해 낯선 도시를 여행하고, 수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묵묵히 독일어를 익혔던 지난날들. 그리고 여러 곳에 입학 면접을 보고 기다림 끝에 들어간 대학원, 매일같이 울면서도 끈질기게 버텼던 첫 학기, 첫 리포트, 첫 프로젝트... 그리고 논문 주제를 정하고, 작성하고, 단 한 번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견딘 거절과 기다림의 시간. 그 모든 시간이 마치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있어 왔던 것처럼 느껴졌다.


K 교수는 서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제인 양 그러면 이제 졸업 후 진로는 정했나요? 취업하고 싶은 분야나 회사가 있나요?"

"아... 아니요. 아직 찾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취업하려고 하는데, 이번에 논문을 쓰면서 박람회 분야에 관심이 커져서 그쪽으로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선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아요.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서요."


나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래요. 며칠간 쉬면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제인 양은 독일의 한국 회사에서 분명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순간 다시 시야가 뿌예지면서 머리가 멍해졌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독일어로 진행된 모든 대학원의 커리큘럼을 마치고 독일어로 논문을 작성하고 독일어로 논문 발표까지 좋은 성적으로 마친 참이었다. 나는 그가 왜 내가 독일의 '한국 회사'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한편으로는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은 그런 생각과 마주하지 않을 것이다.




 동양 철학의 중요한 개념인 '음양 사상' 흑백 사고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상반되는 개념이다. 흑백 사상이 세상을 양분해 '선과 ', '흑과 ' 혹은 '천국과 지옥'처럼 상반된 것들을 서로 경쟁 관계에 놓는다면, 음양 사상은  둘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집중한다. '남과 ', '백인과 흑인', '외국인과 내국인', '전공자와 비전공자', '적과 '처럼 이분화된 세상에서는 이득을 보는 사람만큼 소외당하여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생긴다. 물론 내가 한번 이편에 속해 이익을 본다고 해서 영영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있는 곳이나 편을 가르는 척도가 조금만 바뀌어도 오늘의 승자는 내일의 패자가   있고, 오늘의 다수는 내일의 소수가   있다.  세상 어느 곳에도 유토피아는 없다. 오지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있는 곳을 바꿔야만 우리는  영원한 치킨게임에서 벗어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양심에서 온다고 믿는다.


조금 굳은 얼굴로 강의실을 벗어났다. K 교수의 서명이 담긴 성적표를 가방 속에 꾸겨 넣었다. 터덜터덜 캠퍼스를 따라 걷는 동안에는 기쁨보다는 끝없는 피로감만이 몰려왔다. 그때 앞쪽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남편이었다. 회사에 있을  알았던 그가 꽃다발을 들고 나를 데리러  것이었다. 매일같이 보던 남편의 얼굴이 조금 낯설게 보였다. 밝은 갈색머리의 녹색 눈동자의 남자가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의 여자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걸었고  중간에서 서로를 끌어안았다. 태어난 , 자라오며 경험했던 환경 그리고 생김새까지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우리 둘은 손을 마주 잡고 우리의 집으로 향했다.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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