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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May 17. 2021

Z - Zitrone (레몬)

아주 적절한 마무리

EP. 26

Z - Zitrone (레몬)


 

 논문 발표와 심사가 있기 얼마 전 담임 교수 M은 학과생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거센 바람을 뚫고 학교에 모인 학생들에게 주어진 토론 주제는 '졸업식을 어디서 할 것인가'였다. 대부분의 독일의 주립 대학교는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기 때문에, 행사에 쓸 수 있는 예산도 매우 적은 편이다. 말 그대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학과가 같은 사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 또한 같은 학교를 졸업했지만, 그의 학과는 학교에서 가장 촉망받는 <컴퓨터 과학(Informatik)>이었다. 그들의 졸업식은 별다른 논의도 없이 비스바덴에서 가장 화려한 '비브리히 성(Schloss Biebrich)'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학과는 사정이 다른 듯했다.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비브리히 성을 외쳤지만, 교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한 얼굴로 답했다.


"네, 물론 저도 그러고 싶어요.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우리 학과는 안타깝게도 예산이 부족해요. 물론 학생들이 조금씩 부담한다면 충분히 논의해 볼 수도 있지만..."


교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자리 학생들은 샐쭉한 표정을 짓는 동시에 입을 꽉 다물었다. 물론 나도 그날 입을 열지는 않았다. 사실 속으로 이미 졸업식에 불참하리라고 결정을 내린 후였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작년 여름에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바쁜 논문 일정에 제대로 된 신혼여행을 못 다녀왔었다. 유럽에 따듯한 봄이 찾아오는 4월에 맞춰 우리는 아일랜드 캠핑카 투어를 계획했는데, 공교롭게도 졸업식 또한 4월 중순에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도 대학교 졸업식을 한 번 가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서운한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를 꽉 물고 버텨온 대학원의 시간은 화려하게 기념할 만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물론 대학원에서도 졸업하고도 간혹 연락을 주고받을 인연들도 만들었지만, 대부분의 고행을 함께 헤쳐온 사람은 단연 남편이었다. 따라서 내 인생에서 대학원이라는 챕터에 마침표를 찍기에 가장 알맞은 마무리는 그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나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 가방 하나, 캐리어 두 개와 배낭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나와 남편이 떠난 곳은 아일랜드였다. <아일랜드>라는 이름은 ‘빛의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고대 켈트어 'Üppiges Land'(풍부한 나라)또는 '초록의 나라'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타깝게도 '빛의 여신'의 은총을 받지는 못했지만, 초록이 풍부한 나라의 면모는 톡톡히 보았다. 아일랜드는 독일보다 사람보다 초록이 더 많은 곳이었고 사람의 빈자리는 바람이 가득 채워 주었다. 우리는 꼬박 이주 동안 처음 몰아보는 캠핑카를 타고 아일랜드의 중부와 남부를 여행했다. 아일랜드의 첫인상은 여느 유럽의 나라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다른 점을 굳이 꼽자면, 영국처럼 자동차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는 정도였다. 수도인 더블린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타고 도심을 벗어날수록 도로는 점차 좁아져 갔고 구불구불한 국도가 나오면서부터는 목초지로 덮인 전원풍경이 펼쳐졌다. 해변가에는 이 차선 도로가 산비탈길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나 있었다. 도로의 한쪽에는 드넓은 들판이, 다른 쪽에는 끝없는 푸른 대서양이 펼쳐져 있는 모습은 마치 광고 속에서 본 어느 장면을 연상시켰다. 묵직한 캠핑카를 몰고 달리는 이차선 도로 위에는 종종 숙련된 운전자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 차를 추월해 지나가기도 했지만, 대게 시야에 보이는 것들은 푸른 들판 위의 염소, 산양 그리고 사슴들이었다. 거센 바람을 뚫고 몇 시간을 달리다 하루가 저 물을 때면 우리는 캠핑장을 찾아다녔다. 지정된 자리에 캠핑카를 주차하고 나면, 우리는 바닷가 바위들과 두런두런 모여 앉아 파도의 모노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와 허공을 가르는 갈매기만이 우리 둘의 감각을 간질이는 곳에서는, 애써 소리 높이지 않아도 사랑을 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바닷가의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관중 삼아, 불어오는 바람을 벗 삼아, 그리고 쏟아지는 별들을 꽃 삼아 지난 시간의 마지막과 새롭게 다가올 시간의 시작을 조용히 환호했다.






 

 나의 독일 ABC 26편의 글에는 필자가 독일에서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만 했던 지난 4년 8개월간의 시간을 담았습니다. 지나온 모든 것들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지금에 비하면 길게 채운 글이지만, 당시의 겪었던 모든 일과 감정들 담기에는 택도 없이 짧게만 느껴집니다.

Gibt Dir das Leben Zitrone, dann mach Limonade daraus!
인생이 네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이 문구는 버지니아 유워 울프라는(<댈러웨이 부인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미국 여류작가의 책 제목으로 처음 쓰였지만, 독일에서는 작가를 모르더라도 널리 알려져 속담처럼 사용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생이 쓰더라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훌륭하고 멋들어진 명언들을 끊임없이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이 문구는 그다지 특출 난 인상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글귀가 제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는, 아마 독일에서의 삶이 ‘신맛’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모양과 소리가 모두 다른 언어를 짧은 시간에 겨우 익히면 이 낯선 땅의 문화에 맞게 다시 뱉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제 혀끝에서 나는 소리가 조금만 달라도 엄한 선생님이 되곤 했습니다. 개중에는 인사를 하지 않거나 무시를 함으로써 굳이 저의 잘못을 상기시키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 많은 곳에서 큰소리로 서툰 저의 언어를 지적하는 이도 있었지요. 때로는 그들과 나 사이의 유리 벽이 너무나 두껍게 느껴져 그 견고한 벽을 깰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이 덮쳐오는 때도 있었습니다. 머리 위로 자루째 쏟아지는 레몬에 파묻혀 시큰한 콧방울을 두 손으로 겨우 부여잡은 채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날들은 글에 모두 남기엔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레몬에 짓눌려 그대로 질식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을 혼자만의 힘으로 해낼 수 없었습니다. 어학원 선생님은 레몬에서 헤엄치는 법을, 이웃의 키오스크 주인아저씨는 레몬으로 저글링을 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대학원 동기는 레몬으로 잼을 만드는 비법을 전해주기도 했지요. 사랑하는 독일의 친구들과 제 인생의 동반자 남편은 레모네이드를 함께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가령 망쳐버려도 그저 주저앉게 저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머리 위의 레몬들은 점점 견뎌야 할 짐이 아닌 유용한 재료가 되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소박한 꿈은 그 언어로 학문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타향살이의 서러움은 타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배짱을 길러주었습니다. 고향의 친구들을 그리워하던 시간은 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해 주었고, 가족의 곁에 없어 괴로워하던 마음은 새로운 가족이 큰 부분을 채워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한반도 작은 나라에서 온 제가 지구 반대편 서유럽의 중심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열매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이야기는 제 인생의 한 조각입니다. 앞으로도 인생은 저에게 크고 작은 레몬들을 던져주겠지만 이제 제 손에는 레모네이드 말고도 수없이 많은 레시피가 들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레시피가 기대됩니다.  


나의 독일 ABC

(끝)




글: vivaJain - https://brunch.co.kr/@vivajain

그림: Soorimm - https://www.instagram.com/soorimmki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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