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했던 지식인의 회한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대학에 입학했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시위가 벌어지면 경찰은 최루탄을 펑펑 쏘아댔다. 사복경찰들은 학교 안까지 진입해서 시위 참가자를 곤봉으로 사정없이 때리고 연행해 갔다. 시위가 있는 날은 교문에서 불온서적이나 유인물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책가방을 마음대로 뒤졌다. 인권이나 자유라는 말은 낯선 단어인 시절이었다.
어느 날 이학년 여자 선배가 강의실로 찾아왔다. (남자 선배가 안 오고 일부러 여자 선배가 온 거 같았다.) 몇 명을 불러내서는 학회에 들어오라고 했다. 뭔지도 모르고 가입신청을 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민족경제론’ 같은 책의 복사물을 나눠준 후 읽어 오라고 했다. 일주일 후 북한산 계곡에서 만나 교육을 받았다. 의식화 작업이었다. '파쇼니 매판자본이니 해방' 같은 말들이 계곡물 위로 떠다녔다.
알고 보니 선배들은 시골에서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신입생들만 학회에 가입시켰다. 가난해서 사회에 불만이 많고 잘 교육시키면 훌륭한 민족 해방 전사로 자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를 과대평가했다. 우리는 나약했고 투쟁이 무서웠다. 민족 통일, 민족 해방보다 취직이 중요했다. 육 개월도 안 되어서 하나 둘 학회를 탈퇴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배들이 고맙다.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교육도 시켜줬는데 일신의 성공을 위해 그들의 믿음을 배신했으니 미안한 마음도 크다. 당시 경험은 내게 세상을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일이었다. 이즈음 모교 정문에 우람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다. 천년이 훨씬 넘은 그 은행나무는 나의 젊은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