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낯섦의 의미
불안을 없애려면 불안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불안과 대면해야 한다. 불안을 조장하는 원인과 사회적 압력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삶의 의지를 꺾는 것들의 실제를 규명할 수 있고 무엇이 참된 인생인지를 분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쇼생크탈출에서 주인공 앤디 곁을 지켜준 30년 가까이 복역 중인 레드가 말한다. "이 담벼락이 참 웃기지. 처음엔 다들 증오해. 그러다가 차츰 길들여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 없어. 그리고 어느 순간 의지하게 되지. 그게 바로 길들여지는 거야. <나는 길들여지는 것에 반대한다. 이창준 저>
새로운 곳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언제나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하는 법입니다. 익숙한 풍경이 사라지고, 귀에 낯선 말들이 오가며, 손끝에 닿는 사물조차 낯설게 느껴질 때,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경계합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이고,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조차 이곳의 질서와 부합하는지 의심스러워집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낯선 환경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일상입니다. 나에게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이 거리와 건물, 사람들의 태도와 언어가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일 터. 결국 낯섦이란, 나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지 환경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낯선 상황 속에서 조급해집니다. 마치 빨리 이곳에 동화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실수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처럼 마음이 급해지고 행동이 서툴러집니다.
그러나 그런 조급함이야말로 가장 불필요한 것입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사람 역시 환경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성급히 익숙해지려 하지 말고, 주변을 관찰하며 그것이 자연스레 스며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간조차 부담스럽습니다. 상황이 급하게 돌아갈 때는 기다림이 부적응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이곳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되면 처음에는 당황스럽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어떤 행동으로 그 상황들을 대응해야 할지 걱정도 많아집니다. 마음이 급해지고 실수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선 낯선 환경은 기존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환경입니다. 새롭게 찾아온 사람에게 낯설 뿐입니다.
과거의 히스토리를 알 수도 없고 지금 처해있는 분위기도 어떤지 파악해야 합니다. 주변의 사람들도 낯설고 어색합니다. 모든 환경들이 낯설 뿐입니다. 그렇다고 낯섦에 무대응은 안 됩니다. 낯섦에 따라 자신의 행동도 변해야 합니다.
자신의 지조가 변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들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에게나 낯선 환경은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낯선 환경을 거부하면 변화도 성장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늘 익숙한 곳에서 나오는 생각들과 그에 따른 행동들이 비슷하면서도 사람들은 다른 결과를 얻고 싶어 합니다. 생각과 행동은 머물러 있는데 결과물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원합니다. 분명 운이라는 변수에 의해 변화도 없고 생각과 행동도 달라지지 않았는 데 환경이 달라지며 결과물이 더 큰 수확으로 돌아올 수는 있으나 그럴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결국 낯섦에 대한 생각을 새로운 도전이고 새로운 결과물을 얻기 위한 변화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낯설고 새로움을 그다지 편안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익숙했던 환경에 노출되면 모든 것들이 편안하고 고민들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뇌는 복잡하기보다 생존이라는 본능에 따르고 싶어 합니다. 뇌 속에 가소성이라는 속성이 있어서 새로운 생각을 하고 도전을 하면 새로운 생각의 길들이 생기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뇌는 익숙한 것에만 집중하면 그 길만 활성화되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회사를 다니며 벌써 13번의 이직을 합니다. 같은 회사이지만 업무로 따지면 13번의 이직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직이 갖는 의미는 변화이고 낯설음입니다. 다른 부서로의 이동 시점에는 낯섦의 강도가 극대가 되고 낯선 환경과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신경이 쓰이게 됩니다. 업무 파악에도 집중을 하며 스터디를 해 나가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업무 파악에 집중해야 하며 상사의 질문이나 요청사항에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합니다. 기존의 전후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떨어지는 질문과 요청에 엉뚱한 방향으로 응대가 될 경우 한참 부족하다는 현타가 오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들이 지나고 낯선 환경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뇌의 길이 생기고 마인드에 새로운 근육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13번을 하게 되었지만 늘 낯섦에 대한 설렘보다는 낯섦에 대한 부담이 존재합니다. 특히 타이트한 분위기와 위기상황에서의 보직 변경은 더더욱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지금까지 12번의 이직을 잘해 왔습니다. 다행히도 낯선 환경에서 생존하며 잘 적응해 왔습니다. 많은 변화들을 겪으면서 단단해지고 성장도 했습니다.
부닥치며 상처받기도 하고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도 해 왔지만 잘 걸어왔습니다. 지나치게 남의 눈치만 보지도 않고 꾸준히 터벅터벅 걸어온 듯합니다.
지금까지의 길도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만큼 나이가 들어갑니다.
떠난다는 것이 인생을 마무리가 아닌 넥스트의 삶으로 길을 걷게 될 시점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길도 낯선 길이고 험난한 길일 수는 있으나 13번의 이직을 통해 많은 부분들이 단단해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섦은 많은 부분들이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그만큼 적응하는 기간들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삶에는 늘 변수와 변화들이 존재합니다. 타의든 자의든 우린 낯선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추운 겨울에 단단히 옷을 입고 나가지만 차가운 바람이 불면 춥습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우리는 견뎌내야 합니다. 겨울은 또 봄으로 바뀝니다. 두터웠던 옷이 얇아지고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익숙했던 환경에서 다시 낯선 환경으로 변하고, 그 변화에 당황보다는 스며들어가게 됩니다.
다양한 변화들 속에서 스스로가 단단해지고 변화에 도전하게 됩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섦에 긴장의 끈이 당겨집니다. 그런 긴장의 끈 속에 자신의 마음 근육들이 더 강해지게 됩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을 걸어갑니다. 실패는 그런 도전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익숙해지길 기다리는 행동입니다. 당당히 그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단단한 마음 근육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당장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넥스트의 삶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익숙했던 곳과 사람들이 그립기는 하지만, 과거의 환경에 빠져서 살 수는 없기에 현재의 상황을 빠르게 흡수하려 합니다.
도심의 복잡함과 날카로운 경쟁들이 오고 가는 환경에 다시 주눅 들지 않고 단단하게 걸어가려 합니다. 13번의 이직이 준 의미는 낯선 환경을 즐기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변화의 힘을 키우고 그곳에서 당신의 넥스트의 힘을 성장시켜 나가라는 의미입니다.
당신은 익숙함 속에 편안함의 매너리즘에 혹시 빠져 있지는 않은지요? 낯섦을 거부하며 무엇인지 모르는 힘에 길들여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면 익숙함에 벗어나 낯섦에 도전하고 새로움에 단단해져야 합니다.
13번의 이직이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 주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