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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 May 19. 2022

자신의 길. 자신의 색감. 자신의 향기

자신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본질을 잃으면 자신을 잃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아 사람들은 어디론가 헤맨다. 어차피 사는 거 막살아도 시간은 간다고 생각하면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것도 자신의 색깔이라고 하면 그것도 용인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자신이 사는 인생이고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 사는 게 자신에게만 막사는 인생이 되어야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막사는 삶이란 그건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아닐까! 막사는 인생이 자신의 색깔을 내고 자신의 본질이 이렇다고 하면 어쩔 수 없으나 절대로 그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삶이라면 자신의 삶이라는 표현으로 감싸줄 수 없는 삶이다.



많은 사람들은 늘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을 한다.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기간 동안 늘 존재한다. 어디를 가야 하고 어떤 것들을 선택해야 할지에 따라 가는 길이 달라지고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가는 길에 누구를 만나는지도 달라진다. 자신의 색깔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멋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색깔을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의 옹졸한 고집과 아집, 그리고 고정관념 속에 있는 나를 자랑스럽게 자신의 색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그것이 오래 굳어지고 세월이 흘러가면 그 사람의 색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런데 그 향기와 색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자신만 편해지는 그런 낡은 색과 향이 된다면 그것이 멋있을까? 어찌 보면 색과 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가 있어져야 한다. 그리고 향과 색은 시간이 갈수록 은은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야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철학이 있고 멋이 있다. 편안하게 느껴지고 오랜 흔적들이 있지만 그것만의 향과 색이 조화롭게 있어 자신을 대변해주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향수를 선택한다.


 향수는 여러 가지의 조합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갖는다. 그 향기를 찾기까지는 굉장한 시간이 걸린다. 프랑스 소설 향수에서 사람의 피부를 벗기고 살인을 통해 이 세상에 가장 좋은 향수를 만드는 조향사를 이야기한다. 향기는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하고 뇌를 자극하여 자신이 그 향수의 주인이 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향기는 향수일 뿐 자신의 향기는 아니다. 진짜  자신의 향기와 색이 만들어지는 것은 많은 시간과 자신이 걸어온 길의 흔적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잘 났다고 주변에 자랑을 해도 그것을 주변에서 그 사람의 가치와 오래된 향수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사람은 그런 놈이야. 그런 사람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 단지 돈이 많다는 거지 뭐. 그렇게 살아라.라는 주변의 시선들이 존재한다. 이 세상 가장 외로울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이다. 혼자 살아가고 혼자 생활을 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결국은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을 인정해주고 자신을 이해해 주는 주변인이 없으면 외롭고 힘들어진다. 이 말은 결국 자신의 시간이 자신의 색감을 만들고 향기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고 나의 향기로 주변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며 시간의 축적으로 자신의 색감과 향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걸어가는 길에 늘 장애물은 존재하고 나라는 존재를 이해 못 하며 당신의 길에서 다른 길로 가라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인생이 그렇다. 늘 안정적으로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간다면 자신의 본질적 색감과 향기를 만들어 갈 수 없다. 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시간도 자신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자신의 색감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아무 문제없이 아무 탈없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혼자서만 외롭게 살아가다 그냥 이 세상을 잊고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고 색감과 향기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걸어오고 걸어가야 할 길이 어려움이 있을 때 600년 이상 살아온 고목들을 생각했으면 한다. 그 고목이 진짜 고목이 된 것은 수없이 많은 비바람과 천둥, 폭풍을 거치고 줄기가 휘어지고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부러지며 지금의 고목의 향기와 모습을 형성한 것이다. 그 고목이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누가 그 고목을 욕하고 막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우리의 삶은 고작 100살도 안 된다.


 어린 시절은 아무것도 모르고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살아간다. 그 시절이 지나고 자신이 독립하고 살아가야 할 시간은 많지 않다. 그리고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걷지고 눕지도 그리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시점이 올 수도 있다. 그럼 결국 우리가 우리의 온전한 힘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짧다. 그 시간들이 모여 자신의 본질을 만들고 색감과 향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600년 이상 넘은 고목은 될 수 없다. 법정스님처럼 자신의 힘든 길을 걸으면 작은 글과 자연의 느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며 철학을 이야기해 오신 분처럼 되기도 쉽지 않다. 이어령 교수처럼 평생을 문학과 세상의 이치, 변화를 이야기하며 사회, 문화에 이바지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길을 잘 잡고 묵묵히 걸어가며 시간의 가치를 자신의 색감과 향기로 수놓고 그것이 다수의 사람이 아니라도 자신의 주변분들에게 의미 있고 편안한 모습으로 다가가 자신의 삶이 허투루 살아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그것에는 기본적으로 오픈된 생각과 새로움을 수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가는 길이 옳은 길이여야 할 것이다.



당신은 막 살아가고 싶은가? 아니면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향기와 색감으로 주변인들에게 의미를 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나만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이전 15화 떠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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