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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고, 때로는 조금 타버린, 그래서 더 사람다운 삶

by 밤하늘 읽는 시간

불 앞에 서서 제육볶음을 만들다 보면, 종종 고기가 조금 타버리기도 한다. 불 조절이 순간 늦거나, 양념이 팬에 눌어붙으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흔적이다. 하지만 그 탄 자국이 밉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쌉싸름한 맛이 제육 특유의 감칠맛을 더 진하게 끌어올려준다. 매끄럽고 완벽한 것보다, 어딘가 조금 상처 난 듯한 고기가 더 오래 입 안에 남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삶에서는 그런 흔적을 미워할까. 왜 조금 타버린 순간을 실패라 부르며 지우려 드는 걸까. 계획에서 벗어난 일, 길게 돌아간 성장, 불완전한 관계와 서툰 말들… 그런 것들을 우리는 자꾸 덜 된 인생이라 여기고,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정작 사람 냄새나는 삶은, 그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난다.

삶은 언제나 뜻대로만 흐르지 않는다. 실패한 선택, 아팠던 기억, 잘 안 풀렸던 시도들. 그것들을 돌아볼 때면, 마치 타버린 고기처럼 그 순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쉬움과 동시에, 왠지 모를 애정을 느낀다. 분명히 실수였지만, 그 실수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그 흔적은 지워야 할 오점이 아니라 나를 이루는 한 조각이다.


우리는 종종 그런 흔적을 삶에서 도려내려 한다. 타버린 고기를 접시 밖으로 밀어내듯, 부끄러운 기억을 마음에서 지워버리려 한다. 하지만 그 실패조차 내 삶의 맛을 만들어주는 재료라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품는 쪽이 더 용기 있는 일이 아닐까. 타버린 고기도 볶음 속에서 제 몫을 하듯, 내 삶의 실수도 결국 나라는 사람을 완성하는 데 기여한다.


실패는 때로 쓰다. 하지만 그 쓴맛이 있어야 단맛도 제자리를 찾는다. 중요한 건, 타는 순간조차도 ‘나’였다는 사실이다. 흔적을 없애기보다는 그 위에 이야기를 덧입어고, 그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품는 것. 그게 나를 받아들이는 태도고, ‘제육처럼’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조금 타고, 조금 엉키고, 때때로 양념이 너무 매워 눈물이 날 만큼 아픈 순간이 있어도 그래서 더 진하고, 그래서 더 나다운 삶.


삶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완성작’이 아니라,
나만의 입맛에 딱 맞는 한 접시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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