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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Aug 30. 2022

딸과 춘천행



브런치 글을 읽다 닭그림을 보았다. 강렬한 오방색과 닭의 신체 부분을 강조한 재미난 그림이었다. 이승철 작가의 <<제왕 수탉>>이 보고 싶어졌다. 직접 가서 닭 그림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집에 키우는 애완 닭의 영향이라 하겠다. 집에서 키우는 청계는 가족에게 관심의 대상이며 약간의 소통이 되는 친숙한 동물이다. 그렇다 보니 닭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기에 자연스럽게 가게 되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춘천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새벽 잠결에 빗소리가 들린다. 어제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우산을 쓰고 서둘러 출발했다. 이상하게 조급한 마음과 함께 시간이 지체되었다. 밤사이 잠을 설치고 꿈자리도 그리 좋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여하튼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상태로 용산역에 도착해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주로 승용차를 이용해 여행을 하지만 이번에는 기차를 타고 싶었다. 짧은 거리는 걸어 다니고 먼 거리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기차는 참 오랜만이다. 기차 안에서 미리 산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봤다. 그제야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춘천역에 내려 춘천 명동거리 쪽으로 걸어갔다. 적은 양의 비는 계속해서 내렸다. 오붓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25분 정도의 시간도 몇 분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점을 먹기로 했다. 이른 점심부터 춘천 닭갈비를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춘천 막국수를 먹고 싶었지만 딸은 싫다고 한다. 여기저기 20분 이상 머리를 내밀며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본죽 가게에 들어가 죽을 주문 했다. 단호박죽과 통영 굴 버섯죽. 춘천까지 와서 죽을 먹다니 웃음이 나왔다. 


생각 외로 죽은 맛있었다. 기성품 음식이기에 똑같은 맛이라 생각했지만 지역의 느낌과 요리하는 사람의 온도가 들어가서 그럴까 훨씬 맛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배부르게 먹고 원래의 목적지 ‘춘천 미술관’으로 향했다. 바로 그 근처여서 주변의 집들을 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가는 길에 돌담이 높은 곳에 몇 집이 보였다. 아마도 산을 깎아 그 지형에 맞게 집을 지어 담이 높아졌을 것이다. 담은 8미터 정도 높이의 돌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낡은 벽과 떨어져 가는 지붕 안의 구조물은 보며 긴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서 왠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아쉬움을 감추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도착한 미술관의 첫 느낌은 작은 성당 같았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 건물의 역사는 알 수 없지만 느낌상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처럼 보였다. 작은 정보를 찾아보니 교회를 리모델링한 건물이라 한다. 안으로 들어가 설치된 제왕 수탉의 그림을 둘러보았다. 직접 보니 더욱더 그림이 멋있었다. 강력한 색깔, 팝아트적인 느낌, 수탉의 왕관 같은 벼슬, 눈, 다리 등을 강조해 힘을 표현한 느낌. 무엇보다 즐겁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수탉의 포즈와 표정이었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우리는 1,2층을 둘러보며 즐겁게 관람했다.


이승철 작가의  <제왕 수탉>


작가와의 만남 시간 또한 좋았다. 이승철 작가의 말 중 내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말이 있었다. 

"창작을 할 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요. 의미를 너무 부여하고자 하면 즐겁고 재밌게 창작하기 어려워요."

 그때 나를 생각했다. 나의 글이 멈추는 것은 아마도 글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전체적인 구성을 보고 분석하기 때문에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무엇보다 꾸준함이 중요하다. 


운 좋게 드로잉 작품과 또 하나의 작품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집은 진짜 닭(보름)과 닭 그림이 거실과 방을 자치하게 되었다.      

이승철 작가의 작품

미술관을 나오니 비는 그쳐 있었다.  우리는 육림랜드로 갔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딸로 인해 자연스럽게 육림랜드를 가서 많지는 않지만 몇몇 동물을 보고 먹이도 주었다. 이곳 또한 세월의 흔적들이 보였다.  멈춰있는 듯한 녹슨 놀이 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는 많은 아이들이 웃음 지며 탔을 것이다. 손안에 쥐어진 색색의 풍선들이 여기저기 이동했던 공간. 지금은 한산한 이곳에서 딸과 나는 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반가워.”

“안녕, 안녕.”

“안녕, 눈이 참 이쁘게 생겼구나.”

“안녕, 다음에 다시 올게.”     


 저녁에 다시 집으로 가야 했기에 서둘러 저녁밥을 먹으러 갔다. 평점이 높은 닭갈비 식당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분은 우리가 가려던 식당보다 다른 곳의 음식의 장단점을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원래 정했던 곳이 아닌 다른 식당으로 들어갔다. 앉자마자 딸아이는 나의 등 뒤를 향해 눈을 크게 뜨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뭐지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내 뒤 몇 시간 전에 만났던 이승철 작가가 우리를 보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딸과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냈다. 얼마 후 식사를 마친 작가와 또다시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우리는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또 만나다니. 


기차를 타기 위해 춘천역으로 향했다. 달리는 택시 창밖으로는 철교와 아파트 조명이 소양강 물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었다. 어두워지는 밤하늘에 하나 둘 별이 빛나고 있다. 춘천에서 또 하나의 시간과 추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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