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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Dec 27. 2022

부산, 계단식 골목의 온기


부산, 계획에 없던 일이다. 친정 언니들 중 한 언니가 송년회를 부산에서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날짜를 잡고 숙소를 잡았다. 언니들이 많다 보니 차로 운전해서 가기엔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KTX 기차로 가기로 했다. 나와 다섯 명의 언니. 인원이 많으니 당연히 기차비용도 컸다. 원래는 당일치기로 갔다 오려했지만 그 비용에 비해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2박 3일로 변경하고 떠나려 했지만 참석할 수 없는 언니들이 생겼고 결국 언니들의 여행은 취소되었다.


그로 인해 딸과 함께 둘이서 부산 여행을 가기로 했다.

광명역에서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했다. 우리는 자주 오지 못하는 곳이기에 2박 3일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해서 왔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숙소 근처의 동백섬, 불빛 축제가 한창인 해운대 밤거리, 소문난 돼지국밥, 먹거리가 많은 부평 깡통시장과 근접해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과 예술의 거리 그리고 감천문화마을을 돌아다녔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주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다녔지만 그것보다 부산의 교통편을 이용하면서 그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건물에서 품어져 나오는 이곳의 느낌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은 걸어 다니며 풍경을 눈으로 발로 느끼면서 걸었다. 2박 3일에 5만 보, 그동안 달성하지 못한 걸음 수다.      


부산 해운대 빛 축제

서울보다 화려한 마린시티와 다른 풍경을 가진 골목 마을들. 부평 깡통시장 근처 중심으로 주변의 헌책방 거리, 지하에 위치한 예술의 거리에서 그림을 구경하고 감천마을로 향했다. GPS지도상의 거리 시간은 30분. 그 정도는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곳을 향해 걸었다. 걷다 보니 추웠다. 남쪽의 겨울도 겨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카페에 들어갔다. 생각지 않게 들어간 작은 카페는 아담하고 따뜻했다. 직접 담근 차와 갓 구운 와플은 참으로 맛있었다. 다시 한번 먹고 싶은 맛이다. 앉아있다 보니 이곳은 젊은 사람들보다 중년의 여인들이 많았다. 마을 동네 사람들 같았다. 귀는 열려 있기에 그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부산의 사투리가 정겹게 들렸다. 그들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상태를 말하고 있었다. ‘누가 도착하네, 저 사람 성격 괜찮아, 그런데 저 두 사람 관계가 그래.’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다. 이 동네는 비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눈과 입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마을.      


카페에서 나와 감천마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걸었다. 찬 바람으로 인해 추웠지만 멀지 않기에 걸었다. 그런데 내비는 자꾸 이상한 곳으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 마을 골목을 지나가니 이제는 계단이 있는 골목으로 가라고 한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계단 골목은 가팔랐다. 예전에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곳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가 크고 넓은 집은 없었다. 담이라 할 수 있는 네 집과 내 집의 경계선은 쉽게 볼 수 없었다. 집과 집이 붙어 있다. 빽빽하게 붙어 있는 작은 집들이 비탈진 언덕에 줄지어 있다. 좁은 계단식 골목은 양쪽에서 현관문을 열면 서로 악수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이다. 올라가는  것이 조금은 힘들었지만 정겹게 느껴졌다. 하지만 계단의 경사로 인해 땀이 차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빠져나와 또다시 비가 가르쳐 준 두 번째 가파른 계단에 이르렀다. 이 길이 지름길인가. 지름길치고는 왠지 이상했다. 어떻게 이런 길을 알고 있고 계속에서 이런 길을 알려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마주한 가파른 계단 길. 망설였지만 어차피 걷기로 했기에 계단을 밟았다.      


그런데 아래 마을 계단 골목과는 느낌이 달랐다. 첫 번째 계단 골목은 인간의 온기가 나는 느낌이었다면 두 번째 계단 골목은 온기가 없는 서늘한 느낌이었다. 더 높은 윗동네라 그런 걸까. 그러고 보니 작은 집들의 현관문에 자물쇠가 걸려 있는 곳이 드문드문 보였다.  큰 물건을 짊어지고 온다고 해도 입구에서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계단. 택배 직원이 싫어할 것 같은 곳. 너무나 조용해 갑자기 누군가 집 문을 열고 나를 낚아채서 들어갈 것 같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


계단 사이로 또 다른 골목은 더 좁다. 창문 열어 마주 편 이웃에게 음식을 건네주는 상상을 한다. 사람들의 웃음과 말을 주고받으며 창문과 창문으로 건너가는 음식의 흰 연기와 냄새가 흘렀을 이 골목은 지금 찬 바람이 불고 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온기가 따뜻했을, 함께 힘이 되었을, 서로 보듬어 주었을 그 시절의 시간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곳의 찬 공기로 인해 생각을 접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감천문화마을

정상을 오르듯 힘들게 계단을 오르니 또 하나의 차도가 나왔다. 그리고 줄어든 시간은 2분. 평지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비의 시간은 잠시 멈춰 있는 듯했다. 이게 뭐지 하며 계속 걸어갈지 망설이다 골목에 위치한 마을 버스정류장에 조금 쉬기로 했다. 저 구불구불한 모퉁이를 지나 올라오는 마을버스 머리가 보인다. 우리는 고민도 하지 않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생각한 것은 감천문화마을까지 걸어가기는 결코 가깝지 않다는 것이다. 감천마을을 돌아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더더욱 알게 되었다. 왜 그렇게 올라가는 길이 힘들고 시간이 줄지 않았는지. 이곳은 언덕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렇다 보니 길은 뱀이 똬리를 감았다 풀었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고불고불한 길이었다. 아마 계속해서 걸어갔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 모른다. 생각한 것보다 더 뱀의 똬리 같은 길이었다. 깔끔하고 화려한 도시보다 이곳 계단식 골목은 우리의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가파른 계단식 마을은 서울, 통영, 여수, 그리고 강원도 어느 마을에도 있다. 지역과 장소에 따라 분위기는 다르다. 하지만 다른 계단식 마을에서 느끼지 못한 사람의 냄새가 그리워지는 곳이었다. 이곳의 역사는 잘 모른다. 다만 내가 이곳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무엇을 생각하고 좁은 계단식 골목을 지나가며 만났을 이들과 어떤 표정으로 인사했을지. 웃으며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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